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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내용의 왜 신자에게 끝까지 견뎌야 하는가? 에 대한 답변인 동시에 또 다른 현재적 삶에서 신자는 견디는 것과 더불어 어떠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먼저 40절 말씀을 봅시다. 40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이 구절은 단순한 휴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갑작스런 분리가 일어날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때에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시를 말합니다. 이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은 남성을 의미합니다. 즉 두 남자가 밭에 있었습니다. 있었다는 말은 그들이 서있는 장소적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상의 일을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같은 밭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겉으로 들어난 어떠한 구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에 이 둘 사이에는 겉으로 들어난 어떤 차이가 아닌 내면의 차이로 인하여 엄청난 구별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데려감과 버려짐이란 두 동사는 모두 수동형입니다. 즉 이 분리는 이 두 사람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둘을 분리시키는 분이 계십니다. 그때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이며 그때에 갑작스런 분리가 일어나기에 주님이 바로 그 주체이심을 알게 됩니다.

   41절을 보면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여기에서도 앞 절과 똑같은 분리가 일어납니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습니다. 매를 갈고 있다는 것은 맷돌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분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고 무서운 것인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 이 둘이 한 맷돌을 함께 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여기에도 어떤 외면적 차이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내면적 차이가 이러한 갑작스러운 분리를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40절과 41절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갑작스런 분리 이외에 데려감을 당한 자들이 버려둠을 당한 자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종말론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일들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림의 시기에 데려감을 당한 자들은 버려진 자들과 전혀 다른 어떤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데려감을 당한 것은 일의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다름이며 그들의 속 사람의 다름입니다. 종말의 때에 특정한 일을 강요하거나 두렵게 하여 일상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이 두 부류에 대한 행동은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같은 일에 종사하며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점은 한 부류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에 대하여 깨닫고 있는 자이고 버려짐을 당한 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39절에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노아의 홍수를 예로 드시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였다는 말은 알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파멸되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들은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생활하는 것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자였으며 준비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이 데려감을 당한 자들이 버려진자들과 다른 점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압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며 그날을 기억하며 기다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올 것이며 그날이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예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의 재림을 준비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신자의 삶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어지는 주님의 명령이 42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2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갑작스러운 분리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깨어 있는 이유는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 주가 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시는 그분이 누구신가를 나타내는데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세상을 심판하러 임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그의 종된 자들은 그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다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주의하여 그날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현재형으로 지속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세속에 빠지지 않고 그날을 잊지 않고 임박한 진노를 감각이 없는 자처럼 무시하지 말고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정신적이며 의식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깨어 있음은 적극적 행동 가운데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깨어 있음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는 구절은 데살로니가 전서 5 11-15절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항상 선을 좇으라 

   43절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명령은 너희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빠진 것과 잘못 해석된 부분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라는 구절이 42절로 옮겨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 앞에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빠져있으며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는 말은 직설법이나 명령형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여기서는 너희가 알아야 한다는 명령형 문구입니다. 이것을 명심하라는 것인데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밤 몇시에 올 줄 알았다면 깨어 있어서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즉 여기서 명심하고 알아야 하는 것은 도적이 오는 것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명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재림 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넉 놓고 있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며 게으름과 무감각함으로 그날을 준비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너희가 모르지만 그러나 명심할 것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적이 오는 밤중 어느 때에 올지 모르는 것처럼 주님의 재림도 이와 같기 때문에 늘 우리의 삶이 깨어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4절은 세 번째 주님의 명령입니다. 44절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러므로라는 말은 다른 말로 이 때문에 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너희는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계속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2절에 알지 못하고 43절에 알았더라면 44절에 생각지 않은 날에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일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라는 날짜를 모른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안에 벌어지는 문제가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과 잊어버림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인해 우리는 깨어 있어야만 하는 우리의 현재적 삶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 명심해라, 준비하라 이 세 개의 주님의 명령은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현재적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내용입니다. 알지 못하는 날에, 생각지 않은 날에 같은 일터에서 일하던 사람들 가운데 갑작스럽고 놀라운 분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날에 버려짐을 당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며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 시대는 사랑이 식어지고 불법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마치 노아의 시대와 같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경히 여기지 마십시오. 말씀에 깨어 있으십시다. 우리의 내면을 변화하고 새롭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말씀밖에 없음을 알고 더욱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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