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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요약 https://youtu.be/uaR-9U5gsi0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가 겪는 마음의 고통에 대하여 입니다. 시편 7316절을 보면 원문에서 생각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깊이 생각하는 것을 넘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골똘히 몰두하는 것입니다. 온 신경을 다 하여 머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풀고 쉽고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은데 안되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그것이 매일 그의 눈 앞에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며 자신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믿음과 관련이 되어 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과 관련이 되어 있고, 자신의 인생 전체와 관련이 되어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삽의 고통의 문제가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놀라게 되는데 하나님에 대한 이해 불가한 그분의 행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내가 아는 것과 다르게 행하실 때에 신자는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 731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아삽은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 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참으로 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로 확실히 라는 뜻으로 분명하고 명확하며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이 확실하게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정결한 자라는 표현과 이스라엘 중에서 라고 제한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 가운데 마음이 정결하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이 없으며, 하나님의 법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원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하시다 라는 뜻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좋게 대하시며, 그분의 선하심을 나누어 주시며, 그분의 선에 참여하도록 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아삽이 확신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인을 대하는 것에서 큰 충격을 가지며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2절부터 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먼저 2-3절을 보면 2절은 앞 절과는 반대를 이루는 단어가 맨 앞에 나오는데 나 입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경우에 하나님은 이러하신 분이시라는 나의 경우에는 이라는 의미로 그러나 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같은 의미의 반복으로 거의 라는 표현 속에서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넘어지고 미끄러진다는 의미가 담고 있는 것은 신앙에서와 믿음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3절에서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이란 죄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있는 자 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상관없이 사는 자입니다. 오만한 자란 정신 없이 마음대로 지껄이는 자라는 의미로 자신의 잘못이나 불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높이며, 자랑하며, 거리낌 없이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즉 이둘 모두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형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통이란 모든 일들이 잘 되고 있으며, 걱정이나 근심없이 풍족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아삽은 옆에서 지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들이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징계나 책망을 받지 않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며 그의 마음에 질투가 나기 시작하고, 부러워하기 까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4-5절을 보면 아삽이 그들의 삶을 지켜 볼 때에 그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며 이해할 수 없고,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아삽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정의와 공의를 행하셔야 하는데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이 죽습니다. 또한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 없는 것을 본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재앙도 없는 것을 본 것입니다. 아삽이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가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게 하는 또 다른 문제들은 7절을 보면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났다고 하는데 이는 그들의 눈이 탐욕에 눈멀고 그것에 집착하며, 욕심을 채우는데 눈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아삽은 이것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11-12절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히는 말을 하는데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며 조롱하며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하신 하나님은 그냥 보고 계신 것입니다. 악인들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 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삽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은 흔들리며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면 13절의 첫 단어가 실로 헛되도다 라는 말입니다. 쓸데 없는 짓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제껏 한 것이 의미없이 되었으며, 헛된 것이 되었다고 자조하며 한탄하는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자신의 손을 씻어 무죄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마음에 죄악이 들어오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며 그분 앞에서 그의 손을 씻으며, 깨끗하게 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온 것입니다. 왜 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분이시며,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분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인이 형통하고 악인이 힘을 얻으며,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얻으며, 하나님을 비난하며, 조롱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 내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온갖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며, 번성하며, 그들의 자녀들 또한 더욱 잘 되어 부러울 만큼 번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고, 내가 하나님께 열심을 낸 결과가 무엇인가를 따지게 됩니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고 살고 있음에도 내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빠지는 함정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증명해 내기를 원합니다. 내가 그들보다 의롭다는 더 낫다는 증명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옳음에 대한 증명을 기대합니다. 내가 더욱 정의롭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내가 더욱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요구합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합니까? 악인이 망하는 것으로 증명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보다 더욱 잘 되는 것으로 증명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 보다는 더 부유함이나, 더 성공함으로 증명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며, 아삽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증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신앙이 흔들리고 믿음에서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왜 하나님은 침묵하십니까? 이에 대하여 아삽이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1-22절을 보면 아삽은 내 마음이 산란하였다고 합니다. 산란하다 라는 의미는 쓰라리다 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쓰라리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양심이 찔렸다고 합니다. 양심이란 단어는 신장을 의미하는데 그곳을 깊이 찔린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지, 자신이 마음에 품은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마치 이성 없는 짐승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앞서 그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시기하며 질투하였던 모든 그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며, 정결하게 산 것을 헛된 것이라고 한 것이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무지한 자의 행동이었는지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삽으로 하여금 다시 그의 신앙과 믿음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까? 그 답이 17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소는 복수형으로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야 라는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지혜를 얻게 된 후에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주신 말씀을 들을 때에야 그는 악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삽은 하나님으로부터 깨우침을 받은 후에 악인들의 종말을 보게 되는데 18-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실 것이며, 파멸에 던지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파멸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이 땅에서는 평안하게 살고, 어려움 없이 만족하며, 즐기며 살지 모르지만 결국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의 죽음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어 황폐하게 되며,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황폐하게 되었다는 표현과 놀랄 정도로 전멸하였다는 의미는 먼저 황폐하다 는 의미는 경악하여 넋을 잃어버리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자신들이 처할 상태에 대하여 경악하며 넋을 잃어버리는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은 놀랄 정도로 전멸하다는 의미는 전율할 공포에 휩싸여 철저하게 파멸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들이 받게 될 형벌로 인하여 바들 바들 떨며, 옴짝달싹 못한 채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삽이 하나님으로부터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결코 이 땅에 어떻게 사는 것으로 우리를 증명시키지 않으시며, 그분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십니다. 때론 특별하게 악인을 멸하시고 심판을 직접 행하시기도 하시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모두가 회개하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의 믿음과 경건에 대한 대가를 증명의 도구로 요구하며, 우리의 선함의 증명의 증표로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이러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분이 직접 지금 당장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그분이 계시며, 그분은 장래에 자신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낼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경건과 거룩한 삶이 매일 말씀으로 자신을 징계하며 채찍질 함이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얻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하여 더욱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교회 고전 1장 2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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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진리를 옳게 분별하십시오 디모데후서 2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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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교회 안에서 망령되이 사용되는 하나님의 말씀들 예레미야 23장 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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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로마서 강해 118강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어떻게 하는가 로마서 8장 5-8절

  9. 사단의 유혹의 방법과 목적 창세기 3장 4절과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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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강해 115강 죄로 말미암아 그리고 죄를 정하사 라는 말의 의미는? 로마서 8장 3-4절

  15.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마태복음 25장 1절부터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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