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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본문의 3절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말하는 자는 성령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구원을 얻은 자라고 단정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값싼 은혜 거짓, 복음이 말하는 것은 예수를 입술로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종을 앞둔 이에게 예수를 믿는 다고 고백하게 하고 또한 전도 집회에서 예수를 믿기 원하는 사람은 일어나서 자신을 따라 기도하게 하고 이제 구원을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며 구원이 이렇게 주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라고 합니다. 여기서 알게 한다는 의미는 이해시킨다는 뜻으로 잘못된 것을 바르게 교정하여 온전한 이해를 가지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서에 나오는 바울의 말들의 대부분이 이런 교정에 목적을 두고 있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는 안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바르게 행하고 있으며 바른 신자로써 하나님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앎이 잘못되었음이 증명됩니까? 그들이 맺는 열매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그들을 바른 진리를 알게 함으로 그들을 교정하려고 합니다. 그 바르게 함의 내용은 두 개의 설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내용은 모두 부정형입니다. 부정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긍정형으로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주시라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두 개의 진술은 그 진술이 진술되지 않게 혹은 진술 되게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표현되었고 두 번째에서는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분이시라는 의도가 있으며 성령 즉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 속에서는 그분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말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저주할 자라는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예수는 저주 받은 자이다 라는 뜻과 또 다른 의미는 예수에게 저주를 하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둘 모두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저주 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뜻하며 이는 단순히 신에게 바쳐진 물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 파괴당하고 저주 아래 놓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 파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주 아래 놓여진 자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말해지는 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하였던 것입니다. 21:23절에서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였으며 그렇기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은 꺼리는 것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분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에도 예수를 저주 받은 자라고 말하는 자들은 예수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는 자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를 위함임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의 당하신 고통이 나의 죄를 인함임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고백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는 거룩한 영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는 바울이 말이 오늘날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를 주라고 하는 말은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 시대에 예수를 주라고 말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상황에서 이 말은 예수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절대 단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신자들을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이방 종교 제의에 참여하는 이들과 갈라놓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고백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교도들은 그들의 제의에서 여러 이방신들을 주인들이 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것은 황제 숭배를 거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황제의 상이 놓여 있고 모든 이들은 그 상 앞에서 경배를 드렸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며 사회에서 고립되며 삶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저주 받은 자 혹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자로 또는 많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사람들 가운데 의로운 자로 밖에 여길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의로운 자일 뿐이며 불쌍한 분일 뿐이며 성자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자신의 주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이 현재의 고난과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영이 그들의 내면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더 크고 무서움을 알기에 결코 죄악 속에서 잠깐 낙을 누리는 삶을 기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환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섬기며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주라고 말하는 자 모두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나 표현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라는 고백은 오늘날 더 이상 입에서 나오는 말 밖에 의미는 없습니다. 정말 예수가 주라는 고백하는 자는 입술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합니다. 예수를 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을 높이고 있습니까? 예수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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