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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지만 아직 살펴보지 않은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30절 마지막에 기록된 돌아가시니라 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시니라 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을 알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누가 예수님을 죽게 했는가? 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래야 이 부분이 더욱 이해가 됩니다. 먼저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가룟 유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판 장본인 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을 위한 희생양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만약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의 배반이 결코 미화되거나 정당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요 12:4-6절과 마 26:15에서 그는 자신의 탐욕과 욕심의 죄에 스스로를 팔아 죄의 종이 됨으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조금의 거룩함이나 순결함이나 희생적 정신이나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가룟 유다만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아닙니다. 유다로부터 예수님의 목숨을 산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대제사장들을 위시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목숨을 원했습니다. 이들은 어떤 연유에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까? 이들의 동기는 시기심과 질투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잘못된 종교적 허세와 위선을 꼬집었으며 책망하셨습니다. 또한 이들의 가르침과 교훈을 비웃으셨으며 거짓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거짓된 스승이며 선생이요 양의 탈을 쓴 이리 때였고 독사의 자식들이었으며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과 훈계는 이들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을 뿐더러 백성들로부터의 영적 권위와 존경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분개하였고 자신들의 백성들을 향한 권위와 영광과 존경과 지배력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웠던 그 빼앗긴 것들을 되찾으려는 마음에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타올랐고 결국 눈이 멀어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은 마지막 예수님의 죽으심에 결정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었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세번이나 예수님을 무죄로 선언하려했던 그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것은 그의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선택이었을 뿐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자였으며 교활하며 기회주의 자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분명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알면서도 폭동으로 인하여 황제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예수님을 내어주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쳐올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죄 없으신 그분을 넘겨준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만든 또 한 부류가 있습니다.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며 거부하며 대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죄입니다. 우리는 비록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을 당하실 때 그리고 군병들에게 조롱을 당하실 때와 극심한 매질을 당하실 때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자리에 육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죄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대적하며 대항하여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고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넣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못박으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죄 또한 그분을 향해 십자가에 못박으로서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그분의 피와 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피와 살이 아니고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 날 수가 없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아직 우리가 살펴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예수님을 죽게 했는가? 에 대한 또 다른 이해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유다와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빌라도에 의해서 그리고 우리의 죄가 그를 죽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이 죽음은 예수님 스스로의 자발적 선택이며 스스로를 내어 주심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17-18절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마지막에 머리를 숙이고 돌아가시니라 라는 말에서 돌아가시니라 라는 말은 내어 준다는 뜻과 넘겨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 준 것입니다. 누군가에서 빼앗긴 것이 아니라 억지로가 아니라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분은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말할 수 없는 은혜인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의 자발적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그의 은혜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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