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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12.06.01 04:14

말씀은 앞섬입니다. 눅10:38-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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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마을은 베다니일 가능성 큽니다. 왜냐하면 마르다가 살고 있던 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르다가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합니다. 39절은 마르다의 집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 가운데는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의미는 지속적인 말씀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다른 아무것에도 주의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행22:3절에 바울이 자신은 가말리엘 가문에서 수학하였다는 진술과 같은 말로 누구의 제자로써 수학하는 모습이 바로 발 아래에 앉아 말씀을 듣다 라는 문장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는 마치 예수님의 제자로써 받아 들여진 모습이며 스승에게 말씀을 훈련 받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당시의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마리아가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랍비들은 여자들을 제자로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여자들과 말하는 것 조차 수치로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로써 말씀을 듣고 있는 모습은 놀라운 일이며 당시의 사회적 관습과 문화와 전통을 뒤엎는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라는 말에서 앉아라는 단어가 수동형이라는 것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동형이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앉혀졌다는 의미로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누가 예수님의 발아래 마리아 앉는 것을 허락 혹은 말했는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작해 보면 당시의 사회적 관습과 문화를 뛰어 넘어 복음을 전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이해할 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말씀이 사회적 관습의 장벽을 넘고 남녀의 장벽을 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꼭 듣고 훈련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시의 소외계층이며 지식으로 부터 멀어졌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써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말씀을 훈련하고 배우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허용된 것이며 필요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내용을 보면 마르다가 혼자 고군 분투하며 애쓰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마르다는 자신이 초대한 예수님과 그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마음이 분주하였다고 합니다. 분주하다는 의미는 사방에서 잡아 당긴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마르다의 마음은 사방에서 잡아당겨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아 마음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돕는 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생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있고 혼자 고군분투하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도록 버려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라고 말하며 내 동생에게 명하여 나를 도우라고 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요청에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 부릅니다. 두 번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는 마리아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의 연민이 담긴 표현입니다. 그리고 마르다의 마음 상태를 예수님께서 말하십니다. 많은 일로 마르다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2절 말씀은 본 이야기의 핵심이자 난해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라고 시작하며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에서 몇 가지만 하든을 마르다가 준비하며 분주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음식의 종류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 음식 준비하지 말고 한가지 음식을 준비하라고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유는 그 다음에 원문에 그러나 라는 말로 마르아는 제게 좋은 편을 선택하였다 라는 말에서 음식의 종류가 아닌 다른 일들에 관한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2절을 의역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니라 라는 의미입니다. 마르다는 여러가지 일에 마음이 나뉘어 분주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마리아는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문이 이해되는 것은 이 본문 앞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말씀이 먼저 임을 말하는 본문이 들어감으로 행함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먼저 되어져야 제대로 된 행함이 되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선 순위인가 하면 말씀입니다. 마르다의 섬김은 말씀으로 훈련된 후에 되어져야 바른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행위는 말씀 후에 되어져야 합니다. 말씀 보다 앞서는 섬김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훈련되어진 후의 섬김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은 언제나 앞섬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믿음의 내용 2 로마서 10장 9절부터 10절까지

  2. 믿음의 내용 로마서 10장 9절부터 10절까지

  3.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사도행전 7장 59절부터 60절까지

  4. 그리스도의 빛 고린도후서 4장 6절

  5. 좁은 문과 좁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부터 14절까지

  6. 하나님의 나라를 보다 요한복음 3장 1절부터 15절까지

  7. 다하는 사랑 마가복음 12장 28절부터 34절까지

  8. 속지 말라 야고보서 1장 16절

  9. 죽어 있는 인간 에베소서 2장 1절

  10. 기도의 정석 에베소서 2장 18절

  11.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마태복음 26장 36절부터 45절까지

  12. 미신적 신앙 사사기 17장 1절부터 6절까지

  13. 이율배반 사사기 17장 1절부터 6절까지

  14. 온전한 사람 야고보서 3장 2절

  15. 내 버리라 야고보서 1장 19절 21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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