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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QMzunvI_KgA


오늘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빌립보서 212-13절의 말씀 속에서 신자의 신앙 성숙과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려고 합니다. 빌립보서 212절은 신자가 성화의 책임자로써 그리고 주체자로써 말하고 있지만 반대로 빌립보서 213절은 인간이 성화의 주체자 즉 책임자로써 성화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의 공급처가 어디인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원문에서 13절의 첫 구절이 왜냐하면으로 시작되는 것은 13절이 12절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신자들 안에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성화에 책임자로써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기서 뜻이라는 단어는 목적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그분 스스로의 목적을 위하여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 안에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가 만족하실 목적이 성취되기 위하여 이시신데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화의 지향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신자가 성화된다는 것은 더욱 윤리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신자가 성화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신자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 자신의 기뻐하시는 목적을 위해서라는 것은 신자의 삶 자체가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 이기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을 자기 만족이나 이익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에베소서 1 5-6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에베소서 1 5-6절을 보면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이유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기쁘신 뜻대로에서 그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는 누구의 은혜입니까? 바로 성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엉뚱하게 이해하며,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세상의 것으로 행복하며,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다음 구절을 봅시다. 에베소서 2 10절을 보면 이 구절은 우리를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 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 입니다. 신자는 자기 만족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며,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신자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서 불러내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신자 안에서 이루어 내시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말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본문에서 소원을 두는 자 즉 소원을 가지는 것은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자 안에 소원을 두시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보면 예를 들어 요셉의 성공 비결에 대하여 요셉의 별명이 꿈 꾸는 자라는 별명을 형들이 그에게 지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꿈을 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꿈은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비전 또는 목표나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도전을 하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을 위해서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고 하며,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 노예로서 생활을 하는 것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며,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어 옥살이를 하는 것도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꿈 즉 인생의 성공을 위한 비전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만 비전이 이루어지고 꿈이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꿈을 자신이 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꾸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요셉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예로 팔려 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 때문에 형들의 시기로 간신히 면하고 노예로 팔려간 것입니다. 그가 노예 생활을 하는 것도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참고 견딘 것이 아닙니다. 또한 감옥에 갇혀서 옥살이를 한 것도 그가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도망치고 싶었고 오히려 그는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4014절을 보면 그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애걸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 40: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라고 합니다. 그는 빌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시편 10517-19절을 보면 [ 105:17-19]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는데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자 하는 비전을 품고 애굽으로 간 것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팔린 것입니다. 그의 발은 차꼬에 차이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단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인데 그는 도망치고 싶은 것이며,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의 몸이라는 단어는 영혼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의 영혼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그를 단련할 때까지 그러한 상태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자 비전을 가지자 라는 것이 거짓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이지 그가 꿈을 꾸고 비전을 가져서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나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있어서나 여전히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도록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 성장의 방식과 방법에 대하여 다시 빌립보서 213절을 보면 [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하는데 여기서 소원이라는 말은 바라는 것을 뜻하며 단어의 의미는 무엇을 선택하거나 결정해서 하려고 하는 자율적 의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신자들 안에 자신이 기뻐하시는 목적과 뜻이 성취되게 하는가를 생각할 때 자신의 백성들 안에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결정하며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지를 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신자들 안에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신자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자들 안에 역사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들에게는 전혀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일들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헛되게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구원 즉 신앙 성장과 성숙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인격체로써의 능력 즉 제한 되기는 하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결정하여 그 목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잘못 사용하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이루라 라는 말은 구약에서 경작하다 라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경작하다 라는 말은 땅을 일구어 밭을 만들고 곡식을 심어 가꾸어 결실을 맺게 하는 농사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밭을 일구거나 가꾸는 일에 게으른 농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농부는 한시도 자신의 밭에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농부는 밭에 나가기를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룰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밭을 사랑하지 않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농부는 수시로 밭에 있는 돌을 걷어 내며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를 뽑아냅니다. 그러나 게으른 농부는 자신의 밭이 잡초로 무성해도 내일 하지 하면서 무시하고 방치하며 그대로 둡니다. 결국에는 무엇이 잡초고 곡식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때를 알아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매일 날씨를 살펴 비가 올 때를 준비하고 빗물을 받아 가뭄의 때를 대비할 뿐만 아니라 곡식들이 자라도록 비료를 주며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합니다. 게으른 농부는 준비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준비하지 못하기에 그냥 흘러 보내 곡식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뭄의 때도 예비하지 못해 곡식들이 타 들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하늘만 원망하고 있는 자입니다. 곡식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분별하지 못함으로 때를 따라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해 그의 곡식은 나날이 야위어 가고 쭉정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땅만 원망합니다. 결국 부지런한 농부는 많은 결실을 얻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지만 게으른 농부는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과 무능함은 알지 못한 체 하늘과 땅만을 원망합니다. 결국 그의 땅은 어떤 곡식도 자랄 수 없는 불모지가 되어버릴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농부입니까? 여러분의 구원을 어떻게 경작하고 계십니까? 게으른 농부입니까? 아니면 부지런한 농부입니까? 여러분의 밭을 사랑하십니까? 그 밭을 잘 가꾸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은혜의 빗 줄기와 햇빛과 풍성하고 기름진 토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아무런 곡식이 열리지 않는 다면 그것은 게으른 농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밭이 메말라 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밭에 잡초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발 걸음이 매일 밭으로 향하지 않는 다면 여러분들의 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랍니다. 신앙도 여러분들의 발소리를 듣고 자랍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발소리가 어디에서 들립니까? 영혼을 위한 길에서 아니면 육신을 위한 길에서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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