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성경이 말하는 죄 2 신자 안에 살아 있는 죄 로마서 7장 23절

by YC posted Aug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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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bJAu04gS4Mw



오늘은 성경이 말하는 죄에 대하여 두번째의 내용은 왜 죄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지에 대하여 시작점을 삼으려 합니다. 첫째는 고린도전서 926-27절을 보면 이 말씀에서 바울은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한다고 합니다. 또한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방향성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목적과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방향성과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신앙의 온전함을 위하여 달리고 싸우는 것 중에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온전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 안에서 이루어가는 일에 있어서 신자에게 있어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며, 어떤 의미에서 신자가 싸우는 영적 전쟁의 가장 치열한 싸움이며, 중요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친다는 뜻의 단어적 의미를 보면 친다라는 단어는 눈 밑의 얼굴 부위를 때리다 라는 뜻입니다. 또한 복종하게 한다 라는 단어는 노예를 삼는 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3-14절을 보면 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입니다. 신자임에도 육신 대로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기 위하여 영으로써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즉 신자는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기 전의 예전의 삶과 같이 죄를 따라 살며 사망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이란 하나님의 법과 뜻에 어긋난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법이란 이미 주신 십계명을 비롯하여 우리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에 벗어난 것들을 추구하며, 쫓으며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신자 안에는 죄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죄가 우리 몸을 예전과 같이 지배하기를 원하며,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721-2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3절에서 내 마음의 법이란 이미 중생하여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속사람으로 불리는 마음입니다. 이 법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 안에 다른 법이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으며, 이 법은 자신이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악을 행하도록 이끄는 법인 것입니다. 이 둘이 자신 안에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내 지체 속에 있는 다른 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죄의 법이라고 합니다. 이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로잡다는 것은 포로로 삼는 것입니다. 즉 노예로 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바울이 사용하는 중요한 용어를 설명해 드려야겠습니다. 바울이 마음의 법이라고 하고 죄의 법이라고 할 때에 법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죄의 법이라고 표현한 이 의미는 살아 역사하는 힘이나 능력으로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지배하고 이끌며, 굴복시키고,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자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은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지만 죄의 힘이 여전히 신자 안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무능력한 신자가 되고 있는지, 왜 믿음이 없는 것처럼 살게 되는지, 왜 나는 구원에 확신도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지 않는지, 나는 왜 신자답게 살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바로 죄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죄를 짓고 회개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는 일들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스스로도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움으로 가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 여전히 죄를 짓고,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며, 순결하게 살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여전히 자신은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보지 못하며,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으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에 아멘으로 확신하였던 그 마음이 쉬이 사라지며, 여전히 세상 일에 걱정이 떠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신자 안에 역사하는 죄로 말미암아 마음의 법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신자인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만 여전히 죄 또한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의 힘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힘이 나를 날마다 사로잡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며,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왜 여전히 육신을 쫓으며,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며, 그것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보다 세상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더 신뢰가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더욱 의지하고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의 목표는 신자를 쓰러뜨리며,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와 심판을 당하게 하여, 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611-12절을 보면 [ 6:11-12]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우리는 완전히 죽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는 죄의 오염 가운데 있는 이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 죽는 날 즉 우리의 육체가 이 육신과 함께 죽게 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죄에 대하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절대로 우리에 대하여 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에 주입하며, 의지를 불태우고, 마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신의 마음의 생각에 깊이 각인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죄가 우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며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즉 죄의 노예로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부끄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게 되며, 구원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는 일에 사용되어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 죽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 신자의 신앙 생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