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이사야의 소명 자원함 사 6장 5절부터 8절까지

by 박경호목사 posted Oct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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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억지로 하거나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데 있어서 때론 우리의 믿음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할 때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마지 못해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억지로나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원함의 차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 어떻게 이런 자원함의 차원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자원함이 어디에서 나오게 되는가를 자세히 알게 해주는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때에 내가 이르러 라고 한글 성경에 나옵니다. 원문을 보면 그리고 내가 말했다 라는 뜻인데 이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자 마자 지체 없이 바로 튀어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말은 사실 그냥 대답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머뭇거리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나밖에 없구나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 마지못하거나 억지로가 아닙니다. 여기서 내가 말했다는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내가 소리를 계속 질렀다는 의미입니다.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뭐라고 지르는가 하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원문을 좀더 맛을 살려 직역하면 나를 보세요 나를 보세요 하나님 나 여기 있어요 나를 보세요 라는 외침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소서 라는 마지막 말은 제발 나를 보내세요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의 사역은 쉽지 않은 사역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리를 지릅니다. 나를 보세요 나를 보세요 나를 보내세요 제발 나를 보내세요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사야 입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선지자의 길을 가겠노라고 내가 가겠노라고 내를 보내 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어리석어서 그렇습니까? 만약 이사야가 어리석거나 일시적인 감상적인 감정에 의해서 선지자로의 부름에 응답하였고 그 사역을 시작한 것이라면 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장기간의 사역 기간 입니다. 그는 무려 약 50년간이나 힘든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선지자 사역이 억지나 마지못함이나 감정적 결정이었다면 그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선지자로써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자원함의 근거는 5절부터 시작됩니다. 그가 이상 중에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느낀 것이 무엇이냐면 자신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말을 공동 번역 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정말 정확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단어의 동사 시제가 완료형입니다. 이제 자신은 죽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생각한 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의 가슴을 때리며 그로 하여금 죽음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자신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 모두의 동일한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죄인이라 아니라 바로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스랍 중 하나가 제단에 핀 숯을 가지고 그의 입에 대어 그의 부정한 입술을 정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의미가 바로 죄를 사함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후에 바로 이사야의 소명이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왜 이사야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세요 하나님 나를 보세요. 제발 나를 보내주세요 라고 외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 있어야 할 사람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이 죽음의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그분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망이며 열정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억지로 혹은 마지못함은 아직 우리가 그분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와 같은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감격과 기쁨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