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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com/live/MUifeMRu9WY


믿음이란 신자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며 확실히 해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유는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을 믿느냐와 어떻게 믿느냐는 우리의 신앙의 자세와 모습을 다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대하여 자세히 살피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창15 6절을 보면 [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Abram believed the Lord, and he credi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이 의심과 불신이 있음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어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는 자기 최면이나 주문이나 신념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에 기인한 것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을 아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분의 인격과 성품에 근거한 신뢰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본 것은 눅17 1-10절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이 양이나 크기 즉 외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가지는 능력을 통하여 이것이 참 믿음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며 믿음은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 큰 능력을 가능하게 하고 불가능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는 믿음 자체가 능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조종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그분께 순종하며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또 다른 관점에서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서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잠깐 설명하면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지역은 바벨론 지역입니다. 이유는 바벨론의 왕인 느브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와서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로로 끌려왔지만 노예 상태로 산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다니엘과 함께 왕의 은총을 입어 높은 관직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들을 시기하던 갈대아 사람들이 왕에게 이들을 고발하게 됩니다. 이유는 왕의 명령을 어긴 것인데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황금을 입힌 큰 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크기는 높이가 30미터에 이르고 넓이는 3미터 정도로 아주 큰 상이었습니다. 다니엘서 31절을 보면 [ 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King Nebuchadnezzar made an image of gold, sixty cubits high and six cubits wide, and set it up on the plain of Dura in the province of Babylon. 이것을 두라 평지라는 곳에 세우고 온갖 악기들의 연주 소리가 나면 모든 사람들은 이 신상 앞에 절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서 35-6절을 보면 [ 3:5-6]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엄한 왕의 명령에도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입니다. 평상시에 이들에 대하여 시기심을 가지고 있던 갈대아인들이 왕에게 나아와 이 사실을 고발한 것입니다. 다니엘서 311-12절을 보면 [ 3:11-12]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그들의 고소 내용은 왕이 그들을 존중해서 그들에게 높은 직책을 맡기셨음에도 이들은 오히려 왕을 높이지 아니하고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도 절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풀무불에 넣어 벌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자신 앞으로 불렀습니다. 왕은 이들을 불러 이들을 고소한 자들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였습니다. 확인 결과 이들을 고소한 자들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이런 제안은 이들에 대한 왕의 관심과 애정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서 315절을 보면 [ 3: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이제라도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기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너희가 악기들의 소리를 들으면 신상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너희를 던져 넣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왕의 제안과 배려와 애정과 또 다른 살수 있는 기회에 대하여 세 명의 사람들의 반응은 왕의 기대를 한번에 무너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 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Shadrach, Meshach and Abednego replied to him, "King Nebuchadnezzar, we do not need to defend ourselves before you in this matter. 세 사람이 동일한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일 즉 왕의 제안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들은 이미 마음에 자신들의 뜻을 결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제안이 와도 어떠한 회유가 와도 그것에 연연해 하거나 타협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왕의 요청에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라는 대답은 짧지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17절과 18절에서 더욱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 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세 사람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글 성경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라고 번역한 부분이 계실 수도 있고 안 계실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도록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3:17 if we are thrown into the blazing furnace, the God we serve is able to deliver us from it, and he will deliver us from Your Majesty's hand.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는 만약 우리가 풀무불에 던져진다면 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라고 의미와 전혀 다른 번역입니다. 이 번역이 낫습니다. 만약 우리가 풀무불에 던져진다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것으로부터 건져 내실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다니엘서 317-18절을 보면 [ 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기서 우리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들은 신앙으로 이미 똘똘 뭉쳐있음을 보게 됩니다. 서로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된 신앙으로 왕을 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서로가 신앙의 동역자요 신앙의 협력자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같은 신앙의 색깔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 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가 만남의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와 어울리며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신앙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신앙의 동역자를 만나셔야 합니다. 신앙이 부정적이며 불평하는 자를 만나면 불평하게 됩니다. 늘 말씀을 배우기를 즐겨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를 만나면 자신도 따라 가게 됩니다. 신앙의 동역자는 기쁠 때에 보다 오히려 힘들 때에 힘이 되고 의지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나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속과 겉이 달라서 무서운 사람도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을 보고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본문의 또 다른 단어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들이 표현하면서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문장이 가지는 의미는 이들의 신앙을 대변해 주는 말로 이들이 지속적으로 끊임 없이 섬겨온 하나님이라는 표현입니다. 전체의 문맥 속에서 이 말은 이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늠하게 해줍니다. 그렇기에 이 말은 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며 어떻게 이러한 고백들이 가능한 가를 설명해 줍니다. 왕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에게서 나온 담력이 아닙니다. 자신을 어찌하지 못할 거야라는 자신감도 아닙니다. 그 근거가 바로 이들이 여태껏 섬겨온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입니다.

        이들이 섬겨온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그분은 능히 자신들을 건져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분이 능히 건져내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과 그분은 우리를 능히 건져내실 것이다 라는 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와 그분이 우리가 원하거나 바라는 것을 이루신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이것입니다. 그들이 섬겨온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풀무불에서 건져내시는 것은 그분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는 것은 그분에게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들의 말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풀무불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기대와 바람과 소망에 하나님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나의 바라고 원하는 것을 꼭 해주셔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나의 요구나 바람이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실 수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나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시고 이루셔야만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18절의 고백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의 소망과 바람과 기대에 하나님을 제안하거나 묶는 것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 신뢰는 그분의 인격과 성품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분은 믿을 만 하며 신뢰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죄인된 우리를 벌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궁휼을 베푸시며 우리의 죄악에 대가를 우리에게 쏟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 없으신 예수님께 쏟으셨습니다. 인간의 끝임 없는 거역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우리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취소하거나 멈추지 않으시고 그것을 기어이 성취하셨습니다. 너무나 거룩한 분이시기에 악을 용납할 수 없는 분이시면서도 끊임 없이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여전히 악한 우리를 자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수 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셔야만 하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도 않고 그분의 성품이나 인격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셔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요구에 응답하셔야 하는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우리의 시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에 이들은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앙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을 찌라도 나는 그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뢰를 접거나 던져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나를 구원하신다고 해서 그분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며 그분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신다 해서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를 돕던지 아니 돕던지 여전히 그분의 변함없으신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요청하는 자리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거나 하지 않으심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내가 잘되거나 잘못됨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내가 병들거나 건강함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조건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편에서의 나를 위한 어떤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나의 충성과 복종입니다. 조건이나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분에 대한 변함없는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충성이요 복종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만 신뢰하게 다는 선언이요 고백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지킨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세 사람이 풀무불이라는 죽음 앞에서도 순종과 복종과 충성을 지키는 그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315절에서 왕이 말합니다. [ 3: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이 질문에 이들이 지목하는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신뢰할 만한 분이며 우리의 목숨을 다하여서 사랑할 만 분이시고 그분을 위해 죽는 것도 아까울 것이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것을 왕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당신은 아시게 될 것입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은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이들이 자신들을 죽음에 몰아 넣을 수 있고 타고 있는 풀무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믿고 있는 그 하나님이 그것들 보다 더욱 두려운 분이시며 생명보다 더욱 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어느 정도 신뢰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의 원함과 바램대로 가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까?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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