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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6.05.26 16:26

듣기는 속히 하라의 의미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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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CRfH20B6khE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하여 듣는 다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야고보서 1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첫번째로 야고보는 너희가 알거니와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너희가 알고 있다는 과거적 표현이기 보다는 너희가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혹은 여러분들은 알아 두어야 합니다. 라는 의미로 기억하며 주목해야 할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가 흩어진 성도들이 알아야 하고 주목해서 명심해야 할 말씀은 모두 세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첫 번째는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듣기 말하기 분노 참기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이 듣기 말하기 분노 참기를 말하고 있다고 해서 이것을 바로 개인의 삶에 적용하여 듣는 것을 잘하자 말하는 것을 조심하자 화가 일어나는 것을 잘 참자 라고 한다면 이것은 본문을 반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무엇에 대하여 듣기 말하기 분노 참기를 해야 되는 것이냐 하는 물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더욱 좋은 인격을 가진 자로 보이게 하거나 고급한 사람인 것인 야 드러내기 위해서거나 격식 있고 고상하며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인정 받기 위한 것으로서 듣기 말하기 분노 참기란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과 거리가 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본문이 어떠한 상황이며 어디에 목적을 두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20절입니다. [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because human anger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that God desires. 원문에는 이 구절의 첫 단어가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즉 이 구절은 종속절로 19절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19절의 세가지 내용 가운데 20절은 마지막인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말에 연결이 됩니다. 성내기를 더디 하라 왜냐하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을 내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냅니까?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이거나 혹은 자신의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거나 수준 없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히 듣기 말하기 분노 참기는 인격에 관한 더 좋은 성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 즉 하나님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증거를 보면 이것이 좀더 신앙 즉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22절과 23절입니다. [ 1:22-23]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Anyone who listens to the word but does not do what it says is like someone who looks at his face in a mirror 본문은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듣는 다는 것이 무엇에 연결이 되어 있는가 하면 말씀을 행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음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또한 23절에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이라는 말속에서도 듣는 다는 것이 말씀과 연결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 라는 것을 말하고 있음으로 우리는 듣고 말하고 분노 참고 하는 것이 신앙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듣는 것과 말하는 것과 분노를 참는 것이 무엇과 관련된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19절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19절에서 듣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야고보는 듣기는 속히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듣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원문을 살펴보아도 단어적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빠르게 들어라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빠르게 듣는 것이 어떻게 듣는 것입니까? 어떠한 특정한 신체적 자세나 방법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빠르게 들어야 하니까? 남들보다 가까이 가라는 말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그런 신체적이며 육체적인 어떠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속히 듣는 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어떤 특정한 방법이나 태도가 아니라 내면적인 어떤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왜냐하면 만약 듣는 다는 것이 육체적이거나 신체의 특정한 방법과 태도와 자세의 문제라면 22절과 23절에서 [ 1:22-23]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Anyone who listens to the word but does not do what it says is like someone who looks at his face in a mirror 듣는 다는 것을 행함이라는 것과 연결시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듣는 것이 행함이라는 것과 연결이 된다는 것은 복종이나 순종에 관련된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야고보가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은 듣는 것을 실천하며 행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을 22절에서는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듣기만 하며 그것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의 하십시오. 자기를 속인다는 말은 계산이나 생각을 잘못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계산이나 생각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듣는 것에 대하여 입니다. 듣기는 듣지만 그 듣는 것을 스스로 잘못 생각하고 잘못 계산하여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못 생각하고 잘못 계산하여 망쳐진 인생을 산 사람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수도 없이 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성경을 펴고 몇 장을 넘기지 않아 스스로 잘못 생각하고 잘못 계산하여 망친 인생을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예입니다. 창세기 216-17절을 보면 [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from it you will certainly die."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명하신 내용입니다. 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임의 먹되 라는 말은 같은 동사로 먹고 먹되 라는 의미로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강조는 다음 구절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정녕 죽으리라는 말은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이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즉 죽고 죽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더욱 실감 있고 분명하게 아담에게 들어오는 이유는 먹고 먹으리라 라는 단어의 이중적 사용으로 강조하였듯이 죽고 죽으리라는 단어의 이중적 사용을 통하여 잊지 않도록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먹고 먹으라 라고 하실 만큼 충족히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왜곡이 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 33절입니다. [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God did say, 'You must not eat fruit from the tree that is in the middle of the garden, and you must not touch it, or you will die.'" 이 말씀은 뱀의 말에 대한 하와의 대답입니다. 하와의 대답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말이 더해지는 것을 봅니다. 너희는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와의 생각이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의 계산일 뿐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라는 말씀은 반드시 죽는 다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으려거든 이라는 의미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라는 뉘앙스를 나타냅니다. 즉 하나님의 분명하신 심판을 약하게 하며 희석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하게 됩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잘못 계산한 것입니다. 이것을 야고보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과 계산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들이 무엇에 대하여 스스로 속이는가 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은 안전하다고 하는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으며 보호하심 속에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잘못 생각하고 계산하는 것입니다. 매주 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천국에 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기적인 종교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자신을 신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편의 대로 신앙을 저울질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과 자신들의 계산대로 판단하고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재앙이 그의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다른 성경의 예를 살펴봅시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 듣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며 잘못 생각하는 것이 인생을 망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엘상 15 1절입니다. [삼상 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Samuel said to Saul, "I am the one the Lord sent to anoint you king over his people Israel; so listen now to the message from the Lord.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시는 말씀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둡니다. 사무엘 상 1514절을 봅시다. [삼상 15: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But Samuel said, "What then is this bleating of sheep in my ears? What is this lowing of cattle that I hear?" 본문에서 듣는 것과 관련하여 네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귀라는 청각 기관 그리고 들려옴과 두 번의 소리라는 단어 입니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는 의도는 사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19절을 보면 [삼상 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Why did you not obey the Lord? Why did you pounce on the plunder and do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라고 사무엘이 사울의 본심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울의 문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은 것입니다. 듣지 않았다는 것이 단순히 청각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님을 압니다. 듣는 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의 기관을 사용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무엘 상 1520절은 사울의 반론입니다. [삼상 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But I did obey the Lord," Saul said. "I went on the mission the Lord assigned me. I completely destroyed the Amalekites and brought back Agag their king. 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신은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실로란 사실 그대로란 말로 자신은 그렇게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다고 합니다. 사무엘은 듣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울은 들었다고 합니다. 누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 사무엘 상 1521절을 보면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The soldiers took sheep and cattle from the plunder, the best of what was devoted to God, in order to sacrifice them to the Lord your God at Gilgal." 앞 절에 첫 등장하는 단어가 다만 입니다. 이 말은 완전함이 아닌 무엇인가 약간의 다름이 있다는 표현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사울은 약간의 수정이나 약간의 틀림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사울 스스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잘못 계산한 것입니다. 즉 스스로 속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지 라는 자신을 속이는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입니다. 그 결과 사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고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무엇이 스스로 속이는 일을 하는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타락으로 인한 죄의 오염은 여전히 우리를 바르지 못하게 모든 것을 왜곡되게 듣게 하고 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와나 사울과 같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지 않고 스스로 속여서 받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한 주간 하나님 없이도 살며 죄를 지어도 전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기에 별일 없을 것이며 내 신앙에 별탈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기도하지 않는다고 내 신앙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우리는 스스로 확신합니다. 오늘 성경을 읽지 않고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확신합니다. 누가 주는 확신이며 누구에서 온 확신입니까? 신자가 하나님이 없이 하루를 살수 있다고 누가 말합니까? 신자가 기도하지 않고 살수 있다고 누가 말합니까? 신자가 말씀 없이 살수 있다고 누가 확신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애쓰지도 않으면서 구원 받은 자라는 확신을 누가 보장해 주셨습니까?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매일 하나님을 붙들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신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의지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는 발버둥이 없으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속이지 마십시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착각하며 자신들의 하나님의 바르게 섬기고 있노라고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바르게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입맛 대로 재 해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편의에 따라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과 무관심을 절대로 합리화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아시겠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자는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 가지고 있으니까 되겠지 하지 마십시오. 행하지 않는 마음은 죽은 것이며 아무런 의미 없으며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며 느낌이 아닙니다. 신앙은 행함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듣기를 속히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의적 해석이란 자기 중심적인 해석이며 이해입니다. 신앙이 자기 중심적이 된다는 것은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이해하며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것이 그 예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 다고 하는데 그는 죽지 않으려면 이라고 하나님의 강한 심판을 왜곡합니다. 즉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잘못된 계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신의 편의 대로 해석하며 이해합니다. 하와는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그의 말에서 엿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지지도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먹지만 않으면 되지 만지지도 못하게 하실 것 까진 없잖아 라는 불평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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