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yKj3w1SQ0yE
시편 78편 12절부터 시인은
과거에 있어서 출애굽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다를 갈라 육지로 만드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또한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서 물을 내어 강물 같이 흐르게 하시고 물을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출애굽시에 그리고 광야에서 행하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언급한 시인은 시편 78편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
78: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But they
continued to sin against him, rebelling in the wilderness against the Most High.
이 구절의 첫 구절에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12절부터 16절까지 출애굽과 그 후의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 에 대하여 말한 후에
그러나 라는 접속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반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셨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가? 시인은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하였습니다. 범죄하였다는 말은 죄를 범하였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계속하여 라는 말이 더하여 있음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연속으로, 멈춤이 없이, 지속적으로 죄를 짓고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범죄하는 것이 심각한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계속해서 범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심각하게 변질되고 훼손된 단어가운데 하나가 죄 입니다. 죄란
미안한 마음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 큰 아들이 동생을 괴롭혔을 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 미안해 라고 대답합니다. 미안해 라는 말이 진심을 담았느냐 아니면 영혼 없는 말이냐 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죄에 대한 생각은 단순히 미안 정도의 의미 밖에 지니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죄에 대하여 내린 정의는 죄란 반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거역하는 것이며 심지어는 대적하는 것입니다. 죄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반역하며 대적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신자가 하나님 안에서 누려야 할 친밀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이 낯설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만날 때 멀찍이 떨어져 앉거나 등을 돌리고
앉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자가 신자로써의 삶의 모든 능력은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어떻게 신자로써의 바른 삶을 살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죄를
멀리해야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없습니다. 죄를 멀리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죄를
대적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18절부터 시인은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78편 18절과 19절을 보겠습니다. [시
78:18-19]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They willfully put God to the test by
demanding the food they craved. They spoke against God; they said, "Can
God really spread a table in the wilderness?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을 구하였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을 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음식이 없기 때문에 음식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을
구할 때 어떠한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그렇게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구하는데 탐욕대로 구한
것입니다. 탐욕이라는 충동적 욕심이나 욕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레나프샴'(לְנַפְשָׁם)**입니다. 이 단어의 원형은
그 유명한 **'네페쉬'(נֶפֶשׁ)**입니다. 탐욕이라는 단어는 영혼을 뜻하는 네페쉬 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목구명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욕구, 식욕, 갈망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영혼은 몸과 분리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느끼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생생한 욕망의 주체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탐욕대로 라는 말은 단순히 배를 채우려는 생존 본능을 넘어,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 즉 목구멍을 만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요구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목구멍을 위해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여기서 시험하다는 말은 특별하게 사용되었는데 히브리어에서
피엘형은 동작의 집중성이나 강도를 높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단순히 실수로 하나님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능력이 있는지 한번 보자는 식의 도전적인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심중에 라는 표현은 그들의 불신앙과 탐욕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 이미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보다 마음의 동기를 보신다는 맥락을
강화합니다. 이들이 구하여 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당연히 내놓으라는 식의 강압적인 요구를 문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보듯이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의 자리에 놓은 것입니다. 시험하다
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에게 하나님 자신이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며,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던져 놓고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며, 해결하시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믿지 않게 노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마치 성경적인
방식인 것처럼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그러한 가르침을 합니다. 사사기 6장 39절을 보면 [삿 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Then Gideon said to God, "Do not be angry with me. Let me
make just one more request. Allow me one more test with the fleece, but this
time make the fleece dry and let the ground be covered with dew."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드온은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라고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기드온도
그렇게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특별한 허용을 일반화 시키는 오류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토록 지킬 명령으로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다 지켜야 할 말씀들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내용들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을 통하여 동일한 응답이 주어지는 일반적인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의 경우에는 특별한 사건이며, 특별한
허용인 것입니다. 겁쟁이 기드온을 위한 그의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인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절을 보면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Some time later God tested
Abraham. He said to him, "Abraham!" "Here I am," he
replied.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다고 합니다. 그의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요구는
아브라함에게만 하신 특별한 시험인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화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아들과 같은 가치의 것을
바치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하신
일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그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는 히브리서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은 자에서 다시 살려 내실 것을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활의 믿음이며 우리 또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로 그가 믿은 믿음처럼 동일한
부활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너도 아들을 바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16절을
보면 [신 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Do not put the Lord your God to the test as you did at Massah. 이 말씀은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사단을 물리치실 때에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입니까?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재판장의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그분에 대하여 불신하는 것이며, 오만함의
죄인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6절에서 하지 말고 라는 부정어는 영원한 규례로서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78편
1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광야게서 식탁을 낼 수 있는가? 그분이 그러한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고기를 주십니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의 근거는 민수기 11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장 32절을
보겠습니다. [민 11: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All that day and night and all the next day the people went out and
gathered quail. No one gathered less than ten homers. Then they spread them out
all around the camp.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며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에게 죄가 됩니다. 그들이 탐욕으로 음식을 구한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 토록 메추라기를 모았습니다. 그래서 적게 모은 자가 십 호멜입니다. 호멜이란 당나귀 한마리가
짊어 지고 갈 수 있는 부피이며 무게 입니다.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한 호멜은 60겔론이며 230리터 정도입니다.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면 당나귀 열 마리가 짊어 지고 갈 만큼의 양을 거두어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적게 모은 자가 그렇고 많이 모은 자는 도대체 얼마나 모은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을 정말 엄청나게 주셨구나 배터지게 먹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왜 진노하셨는지에 초점을 맞추셔야 합니다. 32절에 백성이 종일 종야 주었다고 합니다. 종일 종야란 낮과 밤새도록 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음날 종일토록
입니다. 미친 것입니다. 메추라기에 미쳐서 이들은 오직 메추라기만
쫓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틀
동안 잠 안자고 미치도록 메추라기를 쫓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내일을 하나님께 의탁하지 않는 불신이 있습니다. 오늘 메추라기를 주셨으면 그 하나님은 내일도 메추라기를 주실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보장하기 위한 탐욕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며 불신하여 탐욕을 쫓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 우리는 그 복에 우리의 탐욕을 부려 하나님을 버리고 그것을
쫓아 갑니다. 부유하게 되고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버리며 하나님을
더 이상 의지 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눈에 보이는 것에 미치며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부유하며 더 많이 잘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풍족하게
하지 않는 것이 복일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만약 하나님을 버린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내게
저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 안에 탐욕이 지배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려 합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를 요구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시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요구와 기대에 응답해 주실 것인가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신자들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그분이 하나님되심이 자신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 할 때야 하나님임을 인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탐욕으로 하나님으로 시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였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으시며 그런 요구는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하여 음식을 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편 78편 19절을
보면 [시 78: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They spoke against God; they said, "Can God really spread a
table in the wilderness?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이
말은 부정적으로 그럴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식탁을 준비하는데 식탁이라는 말은 음식상 즉 잔치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잔치 상을 능히 준비할 수 있을까? 라는 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여 불신의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만약 능력이 있다면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면 당신 스스로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모욕은 도를 넘습니다. [시 78:20]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True,
he struck the rock, and water gushed out, streams flowed abundantly, but can he
also give us bread? Can he supply meat for his people?"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셔서 시내가 넘쳤다고 해서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 떡과 고기를 준비하실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22절이 그것을 증명하는데 22절을 보면 [시
78: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 for they
did not believe in God or trust in his deliverance.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자신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물을 주셨지만 그 물이 시내가 되어 넘쳤지만 떡과 고기는 주지 못하실걸요? 만약
능력이 있다면 광야에서 우리에게 잔치상을 준비해 보시지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은 오늘날 신자들의
마음속에도 동일하게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갈 때에 드는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이 만약 진짜 하나님이시라면 살아계시다면 이것을 들어주세요? 이것이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을 자신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도록 요구하며 그렇게 해 주셔야 우리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찬양합니다. 만약 우리의 기대와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낙심하여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멈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간구가 시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시인하려고 하는가 하면 내가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 그리고 내가 기대하는 것의 성취로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자신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내 요구에 응답하시고 내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심으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셔도
내가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나의 기대에 반한다 해도 여전히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수준으로 나아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라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하나님 만이 나의 주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변명하거나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12절입니다. [시 78: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그들의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He did miracles in the
sight of their ancestors in the land of Egypt, in the region of Zoan.애굽
땅 소안 들에서 일어난 기이한 일들은 무엇에 대한 것입니까? 출애굽시에 하나님께서 바로와 애굽 백성에게
행하신 일들입니다. 그 놀라운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의 주인이었던 바로를 굴복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더
이상 무슨 다른 증명이 필요하며 다른 확증이 필요합니까? 부인할 수 없는 유월절의 밤을 지낸 이들에게
다른 어떤 증명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나님이 증명이 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심과 부활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심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다른 어떤 것이 더욱 입증 자료로 요구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들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으신다면 그분의 부활을 믿으신다면 그것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더 무엇이 있습니까? 롬 8장 32을 보겠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how
will he not also, along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그렇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 주신 그분이 우리를 버리시겠습니까? 우리를 부족하게 하기겠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충만함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탐욕으로 우리의 욕망과 육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세상적인 것을 더욱 원하며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려고 안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치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는 자처럼 불평하며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과 위로를 얻으려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불행을 자초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탐욕으로 하나님 아닌 것을 구하다 그것을 쫓다가 망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종일 종야 그리고 하루
종일 탐욕으로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탐욕에 눈멀어 살다 그것도 누려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상의 것을
쫓지 말고 하나님으로 만족하십시오. 세상 것을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셔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을 삼고 기쁨을 삼으시고 그분으로 인한 행복을 누리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