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YC
조회 수 4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0z9Ljqjo8dE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야보고서 119-20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 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because human anger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that God desires. 야고보는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가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이며, 둘째는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것이며, 셋째는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하여 우리가 이미 앞서 살펴보았던 것은 이것이 개인의 인격 고양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격고양이란 자신의 도덕적, 정신적 품성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또는 인격 수양 즉 올바른 도덕적 가치관과 성품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 마음가짐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과정을 가르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자꾸만 신앙 생활을 인격고양이나, 인격 수양의 문제로 접근하며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을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타인으로부터 특히 불신자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네가 교회에 다닌다면서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이나 네가 그리스도인이라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은연중에 그리스도인은 착한 사람이어야 되며, 그리스도인은 정직한 사람이며, 약속을 잘 지키는 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빠져 있는 중요한 것이 왜 그러한 사람들로 기대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착해야 합니까?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정직하며, 약속을 잘 지키는 자여야 합니까? 왜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선하게 살려고 다짐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착해지려고 결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중생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백성 답게 살아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그들의 행위는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결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일 뿐 그들 안에서 스스로 나온 행위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주목하여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입니다. 어떠한 선행이나 옳은 일에도 자신이 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고백할 뿐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119-20절 말씀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의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지 한 인간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여 인격 고양에 이르게 되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 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온전히 들으라는 것입니다. 너의 개인적 입장에서 듣지 말고, 너의 편견적 시선으로 듣지 말고 말씀 그대로를 바르게 듣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하기를 더디 하라 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너는 잠잠하여 말씀을 들을 때에 즉각적으로 반론하건, 또는 네 생각을 입밖에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주장과 네 입장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버리고 가벼이, 생각없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말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듯이 거짓없이 온전하며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성내기도 더디 하라에 대하여 이 말씀의 의미 또한 이와 같습니다. 단순히 화를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쉽게 성내는 성급한 사람으로 다른 이에게 비추어 져서 가벼운 사람으로 인식되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으로 인격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비춰 질까 두려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말씀은 더디 라는 말은 속도를 늦춘다는 뜻입니다. 이는 통제하고 제어하기 위함으로 성내기를 통제하고 제어하라는 말입니다. 성내다 라는 단어는 오르게 라는 단어로 단순한 순간의 폭발보다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여 가라앉아 있는 독한 감정이나 적대감을 뜻합니다.

        우리는 듣기와 말하기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문맥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관련되어 듣기와 말하기를 말하고 이제 따로 성냄에 대하여 다른 주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내기도 더디하라 라는 말씀에서 이는 말하기는 더디 하라와 연결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더욱 명확한 것이 야고보서 118절을 보면 [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He chose to give us birth through the word of truth, that we might be a kind of firstfruits of all he created.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19절에서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말씀과 연관되어 있는 말씀이 18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성내는 문제도 말씀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관련된 것입니다.

        더욱 명확한 것은 야고보서 120-21절 말씀을 통하여 입니다. 야고보서 120-21절 말씀을 보면 [ 1:20-21]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because human anger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that God desires. Therefore, get rid of all moral filth and the evil that is so prevalent and humbly accept the word planted in you, which can save you.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에 대하여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 위해서 즉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너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냄이 무엇과 연결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지 못하는 것과 연결되며,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성냄이 말씀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성냄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이제 구체적으로 이 말씀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야고보서 119절 말씀을 보면 [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합니다.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성을 전혀 내지 말라는 성냄에 대한 완전한 금지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불의에 대하여 마가복음 35절을 보면 [ 3: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He looked around at them in anger and, deeply distressed at their stubborn hearts, said to the man, "Stretch out your hand." He stretched it out, and his hand was completely restored.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보시고 노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 올게는 야고보서 119절과 20절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닌 이유는 성경 속 예수님의 분노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때, 종교가 권력화되어 약자를 착취할 때,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사랑 없이 완악해질 때 나타나며 이것은 죄가 아닌 바른 성냄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냄에 대하여 죄를 지을 수 있으며, 바른 성냄이 아닌 잘못된 성냄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26절을 보면 [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In your anger do not sin": Do not let the sun go down while you are still angry, 분을 내어도 라고 합니다. 이는 분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오염으로 인하여 바른 성냄 즉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하여, 또는 타인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때는 성내지 않고 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분을 내는 일반적인 경우는 자신의 유익을 위할 때입니다. 즉 죄를 짓는 분을 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비록 불의에 대해 일어난 정당한 분노라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적인 증오나 복수심, 혹은 상대방을 파멸시키려는 거친 말과 행동으로 이어지면 그 순간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디 성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분노는 조급함과 결합하여 이성을 잃기 쉽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완전히 지배당해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의분이 아니라 죄의 수단이 됩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야고보서 120절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120절을 보면 [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because human anger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that God desires.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는 앞에서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명령이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성냄 이라고 합니다. NIV에서는 사람의 성냄과 대조되는 것이 하나님의 바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냄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성냄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유익을 위하여 하는 성냄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 스스로 내는 성이기 때문에 사람의 성냄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을 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성을 냅니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한 성냄은 결코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루다 라는 단어는 일하다, 생산하다, 성취하다 라는 뜻으로 문법적으로 헬라어에서 '현재 시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법칙이나 상태'를 나타냅니다. , 인간의 분노는 어쩌다 한 번 하나님의 의를 못 이루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결코 하나님의 의를 생산해 낼 수 없다 는 것입니다. 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말합니다.

        인간의 성냄이 지속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란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할 때에 주로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인 칭의를 뜻한다면, 야고보서에서의 하나님의 의는 실천적이고 관계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삶의 태도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고 승인하시는 '의로운 삶과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NIV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라는 번역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생한 자들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의로운 삶과 성품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신자의 삶에서 계속해서 맺히는 열매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의 삶의 열매를 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성냄 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하는 것입니다. 성냄과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성냄의 상태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야고보서 120-21절 말씀을 보면 [ 1:20-21]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because human anger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that God desires. Therefore, get rid of all moral filth and the evil that is so prevalent and humbly accept the word planted in you, which can save you. 인간의 성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자로서의 삶의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성냄의 상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이며, 죄를 짓게 되는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냄은 자신의 개인적인 증오나 복수심, 혹은 상대방을 파멸시키려는 거친 말과 행동이기 때문에 내 자신의 감정과 고집을 붙들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냄은 반드시 하나님의 올바른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왜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나의 성냄은 반드시 하나님의 올바른 다스림과 통치를 받아야 하며,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에만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수
» 주일말씀 성내기도 더디하라의 의미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new 2026.07.22 4
816 주일말씀 음식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update 2026.07.14 394
815 주일말씀 기도 외에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는 이유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update 2026.07.07 2190
814 주일말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update 2026.06.30 3169
813 주일말씀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update 2026.06.24 3540
812 주일말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라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update 2026.06.17 3807
811 주일말씀 하나님만을 신뢰하라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update 2026.06.08 5065
810 주일말씀 말하기는 더디하라 2026.06.03 5347
809 주일말씀 듣기는 속히 하라의 의미 2026.05.26 7045
808 주일말씀 교회 연합 운동의 문제 2026.05.20 6811
807 주일말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인 2026.05.12 7219
806 주일말씀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의미 2026.05.06 9148
805 주일말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랑하는 믿음 2026.04.28 10585
804 주일말씀 누가 우리의 인생을 채우는가 2026.04.22 12418
803 주일말씀 부자 청년의 문제 2026.04.13 13425
802 주일말씀 부활을 통하여 무엇이 입증되는가 2026.04.08 14323
801 주일말씀 나의 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 2026.03.31 16074
800 주일말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 2026.03.17 20057
799 주일말씀 구속 언약 2026.03.10 19719
798 주일말씀 고요하고 평안 하기를 힘쓰라 2026.03.03 1993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차타누가 열린교회 CHATTANOOGA YEOLIN PRESBYTERIAN CHURCH
1622 HICKORY VALLEY RD. CHATTANOOGA, TN 37421
담임 : 박경호 목사 Ph : 423-645-7910 Email : pkrain1@gmail.com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