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HeZoeRKoC4w
성경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사건을 가지고 각기 다른 원인들이 발생하였다고 증언 하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읽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고민하지 않게 되는 부분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생각도 안해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던져 보지 않고 무조건 믿습니다, 옳습니다 라고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며, 성경에 대하여 잘못된 자세와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과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연구하고 탐구하며, 그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요셉의 인생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는 사건에 대하여 입니다. 그러나 정작 요셉에게 일어난 애굽으로 가는 사건에 대하여 성경이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원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왜 그런가를 따져 보거나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질문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성경은 서로 다른 원인으로 이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
사건에 대하여 다른 원인으로 말씀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들을 던져야 우리는 그 해답 속에서 이 한 사건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고 그 해답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요셉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첫번째 원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의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아들입니다. 창세기 37장 3-4절을 보면 [창 37:3-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며 야곱이 사랑하였던 아내 라헬의 첫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여러 아들들 보다 더 사랑합니다. 이러한 야곱의 요셉에 대한 특별한 사랑은 형들의 시기심을
자극하게 되었고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게 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할 수 없었다 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야콜이라는 단어로 이는 단순한
신체적 불능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도저히 감당하거나 내킬 수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친절하거나 평안한 말을 건넬 마음의 여유나 도덕적 의지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는가 하면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다 단어가 피엘 즉 강조형으로 사용되어
단순히 한두 마디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지속하다, 상호 작용을 하며 논의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형들은 요셉과 대화 자체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그를 거부했습니다. 어떠한 말을 하지 못하는가 하면 편안하게 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샬롬이라는
단어 입니다. 히브리 문화에서 샬롬은 고대의 가장 일상적인 인삿말인 샬롬 알레이헴으로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을 의미합니다. 중동 문화권에서 타인에게 샬롬이라고 인사하는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안부를 넘어
나는 당신에게 호의와 선의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의 안녕을 빕니다라는 관계의 승인을 뜻합니다. 이러한 원어가 전하는 실제적인 뜻으로 문장을 직역하면 그들은 그에게 샬롬(평안)의 인사를 건넬 수조차 없었다가 됩니다. 형제들은 길에서 요셉을 마주쳐도
아침 인사나 기본적인 상호 관계상의 안부조차 전하지 않았습니다. 동방 문화에서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은 관계의 파탄, 혹은 잠재적 적대 상태(전쟁 상태)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야곱의 편애로 시작된 시기심과 증오는 형들로 하여금 요셉에게 최소한의
예의나 호의 어린 단어 한마디조차 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구절은 단순히 형들이 요셉에게
투덜거렸다는 뜻이 아니라, 형제로서의 최소한의 인격적 관계와 평화적 대화가 완전히 파탄 난 상태를 적나라
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형들의 요셉에 대한 미움이 더 커지는 계기가 발생하는데 요셉에게 주어진 두번의
꿈은 그것을 형들에게 요셉이 말함으로 더욱 자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요셉을 죽이려고 모의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창세기 37장 20절을 보면 [창 37: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Come now, let's kill him and throw him into one of these
cisterns and say that a ferocious animal devoured him. Then we'll see what
comes of his dreams." 형들이 요셉이 자신들을 찾으러 오는
것을 보고 함께 모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고 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말하는 것이 그의 꿈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형들이 요셉을 죽였다면 그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막아선 자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가장 큰 형이자
야곱의 첫째 아들인 르우벤이 자신들의 동생들에게 죽이지 말자고 합니다. 사실 르우벤은 요셉을 빼돌려
자신의 아버지에게 돌려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에 대하여 어떻게 할까 결정하기에 앞서 형들은
자신들을 찾아 온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았습니다. 이때까지 아직 형들은 요셉을 죽일 생각을 포기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큰 형인 르우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았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은 요셉에 대한 분노가 식지 않은 상태라 여전히 요셉을 죽이고자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형제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다른 형제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바로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입니다. 창세기 37장 26-27절을 보면 [창 37: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안을 하는데 요셉을 팔자는 것입니다. 요셉을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 버리는 것이 우리가 손을 대어 죄를 짓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의해서 다른 형제들 또한 동의하게 되고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버립니다. 그 후에 미디안 상인들은 요셉의 애굽의 바로 왕의 시위 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아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분명히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
버린 것이 형들이며, 요셉을 산 상인은 요셉을 애굽에 팔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애굽에 가게 된 원인은 바로 형들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 애굽에 가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원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있다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게 되고 이에 격분한
아내가 거짓을 고하여 노예인 애굽은 보디발의 집 지하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바로 왕의 떡 맡은 관원과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며 그 꿈을 위한 대비까지 알고 있는 요셉은 하루
아침에 애굽의 국무총리 격인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후 바로의 꿈 대로 7년의
풍년의 시기가 지나고 7년의 흉년의 시기에 형들이 애굽에 양식을 사로 오게 되어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 총리가 될 줄은 꿈에 생각하지 못한 형제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나 요셉은 형들을 알아
보게 되나 자신을 숨기다 결국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게 되어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됩니다. 이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들에 대하여 요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창세기 45장 5절을
보면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And now, do not be distressed and do not be
angry with yourselves for selling me here, because it was to save lives that
God sent me ahead of you.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며 한탄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근심하다는 말은 마음이 마구 찢어지다 라는 의미로
자신의 과거 죄책감과 중압감에 짓눌려 스스로 마음을 찢어발기며 괴로워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요셉은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죄책감의 고통 속에 자신을 내던지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탄하지 말라는 말은 직역하면 당신들의 눈에 불을 켜지 마소서 또는
당신들 자신에게 분노를 터뜨리지 마소서 라는 뜻으로 이 문맥에서는 자신을 향한 자책과 격분을 의미합니다.분하고
억울하고 한심해서 견딜 수 없어 자기 자신을 향해 맹렬히 화를 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셉이 이 두
단어를 연속해서 언급하며 다독인 것은, 그 순간 형들의 심리 상태가 세 가지 거대한 감정의 폭풍 속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1) 극심한 죄책감과 스스로를 향한 분노
(Self-loathing) 2) 뼛속까지 파고드는 정죄감과 심리적 파탄 3)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악 자신들이 죽이려 했고 종으로 팔았던 요셉이 이제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제국의 총리가 되어 눈앞에 서 있으니, 복수당할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이런 형들에게 요셉은 뜻밖의 말을 하는데 형들이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형들이 나를 팔아
내가 애굽에 오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즉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식구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 나를 앞서 먼저 애굽에 보낸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8절을 보면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So then,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He made me father to Pharaoh, lord of his entire household and
ruler of all Egypt.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결과가 잘 되었기 때문에 단지 형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진심으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문법 구조를 보면 요셉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욱
분명해지는데 이 문장에는 한글 성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not, but 이 사용되어
그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당신들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시다 라는 강한 대조와 단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애굽에 오게 된 사건의 진짜 주체가 누구인지를 단호하게 선언하는 기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어 동사 형태 안에는 이미 당신들이라는 주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독립인칭대명사 당신들이란 단어를 별도로 따로 사용한 것은 형제들의 행위나 역할을 강하게
강조하는 동시에, 바로 그 주체를 즉 형들의 행위를 전면 부정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보낸이라는 단어는 쫓아내다, 팔다 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
단어가 이 문맥 안에서 가지는 의미는 특정한 목적과 사명을 부여하여 파견하다 라는 뜻을 가진 공식적인 파견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즉 요셉은 자신을 누가 애굽으로 보냈었는가? 하는 것과 왜 자신을 애굽에 보냈는가? 하는 두 개의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에 의해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여기까지 오게 된 모든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결과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게 되는 질문은 하나님이 요셉을 향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형들로 하여금 요셉을 미워하게 하신 것인가? 형들이 요셉에게 범죄하도록 그들의
죄를 조장하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대한 바른 이해는 하나님은 결코 죄의 원인이 아니시며, 인간에게 죄를 짓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점은 성경이 강조하며, 우리가
믿는 바 입니다. 첫째로 요셉이 애굽에 간 사건은 형제들의 죄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다가 노예로 판 것은 누군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부패한 본성과 시기심에서 나온 자발적인 악행이며, 따라서
그 책임은 전적으로 형들에게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형들의 자발적 범죄에 대하여 거룩한 허용을
하셨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허용적 작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형들의 악한 마음을 직접 창조하거나 강요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행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허용은 방관이나 수동적 방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악행이 어디로 흘러갈지 정확히 알고 계셨으며, 그 범위와 한계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애굽에 간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여 행할 수 있습니다. 형들의 목적은 요셉을 제거하고, 그의 꿈을 짓밟고, 자신들의 시기심을 채우는 것 악한 목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 믿음의 씨인 야곱과 그의 후손들과 열방을 대기근에서 구원하고
언약을 이어가는 선하 목적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목적이지만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형들의 악한 의도를 거룩하고 선한 목적의 도구로 승화시키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운 악의로 행동하지만,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애굽으로 간 사건은 역사 안에는 제1 원인이 계시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주권자 이십니다. 또한 제2 원인자
있는데 피조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 법칙이나 인간의 선택과 행동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사건의
제2원인에 불과하며, 그 모든 과정을 뒤에서 주관하시고 작정을
성취하신 진짜 원인인 제1원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제2원인인 형들의 악행을 억압하거나 파괴하지 않으시면서도, 당신의
제1원인을 완벽하게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바로 창세기 50장 20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을 보면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You intended to harm me, but God intended it for good to accomplish
what is now being done, the saving of many lives. 당신들
즉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은 것이며,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제2원인인
인간의 죄된 행위가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취소되거나, 파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2원인인
인간의 행위는 제1원인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교정되며, 선하게
사용 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인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주변 환경과 상황을 통제하시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악이 우리를 향하여 계획되고, 시행될 때에 그 악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통제하시며, 그
일이 결국 우리에게 선이 되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누구에게 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그들의 모든 주변의 상황과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믿음을 지키도록 역사하시며, 하나님을 붙들도록
역사하시며,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도록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보호하사 영원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심을 믿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