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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SsV782OqrSM


오늘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죽음에 대하여 두번째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단어는 마음으로부터 정해진 금기어에 해당하여, 깊게 생각하거나 고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죽음은 장례식장에서 가서 타인의 장례에 참여하여 조의를 표할 때에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해결하거나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민한다고 해서,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한 회피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예외 없이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인 죽음에 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가 하는 것은 살펴보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죽음에 대하여 살펴보며, 위안과 위로를 얻으려 합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살펴볼 중요한 핵심 내용들은 죽음이 신자나 불신자에게 무엇인가? 하는 것과 왜 신자에게 육체의 죽음이 여전히 유효한가? 에 대한 답변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창세기 319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since from it you were taken;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 이 말씀의 배경은 하나님과 행위 언약을 맺었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배반하는 죄를 지은 후에 그들이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을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흙으로부터 취함을 입었기에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로써 죽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 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첫째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은 죽으며, 죽는 다는 것이 죄의 결과라면 결국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삼단 논법이 확증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범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범죄자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증거가 있는데 바로 자신이 언젠가 죽는 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앞에 범법자이며,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한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들의 죽음은 단순히 늙거나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결과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이라는 결과가 늙어 기력이 쇠하거나,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죽음은 내면에는 이미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죽음의 속성이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은 죄로 인한 저주 아래 있으며, 그 저주에서 결코 벗어 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또 죽음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데 이 부분은 죽음의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죽는다는 것이 어떻게 긍정적인 것일까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죄의 영향력과 힘과 그 부패성을 깊이 깨닫게 되면 죽음에 대하여 긍정적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 창세기 322절을 보면 [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the Lord God said, "The man has now become like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He must not be allowed to reach out his hand and take also from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이 구절 하반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영생할 것이 대하여 염려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들이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일으키는 무서운 죄악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가 인간의 마음에서 일으키는 부패의 능력은 매우 심각한데 바로 아담과 하와의 첫번째 아들인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는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창세기 47-8절을 보면 [ 4:7-8]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는 선을 행하지 않았고 죄가 문에 엎드려져 죄가 그를 넘어뜨리려고 원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은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죄를 다스려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경고에도 가인은 아벨을 아무도 없는 들로 불러 그를 쳐죽입니다. 즉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죄의 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여 죄가 죄악으로 나타나도록 영과 몸 모두를 죄의 의지에 묶어 두어 살인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심각한 부패성과 힘의 강도는 극심하여 하나님께서 땅을 물로 심판하는 홍수 심판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세상을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무법천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죄의 힘과 능력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인간이 영생을 한다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러한 지옥과 같은 삶을 영원히 살아내야 한다는 더 큰 저주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생명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영생을 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불행이 아니라 인간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며, 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죽음의 지배아래 있게 되고 벗어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게 복음이 예비 되었으며, 이 복음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복음이라는 복된 소식으로 인간을 복되게 하는 소식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을 보면 [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Since the children have flesh and blood, he too shared in their humanity so that by his death he might break the power of him who holds the power of death-that is, the devil- and free those who all their lives were held in slavery by their fear of death. 예수님께서는 혈과 육을 지니신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유는 같은 모양으로 인간들이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의 목적은 바로 자신을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죽음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들이 들어야 하며, 받아야 하는 복된 소식인 것은 벗어날 수 없으며, 해결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10절은 이러한 내용을 좀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 사망이 폐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바로 생명과 썩지 아니함을 드러내어 보이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신 것이 복음이며,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시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은 예수를 믿어 죽음에서 벗어나야 하며,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망의 권세 잡은 자가 멸망하였고, 그러므로 더 이상 죽음이 신자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를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죽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죽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죽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이 찾아 오며, 죽음에 이릅니다. 왜 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먼저 로마서 823절을 보면 [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Not only so,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our adoption to sonship,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우리가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속으로 탄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이며, 왜 우리 몸의 속량 즉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앞에서 죽음이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며 이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되어야 하는 것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 즉 죄책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이들은 죽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책은 이미 주님에 의해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죄의 오염으로 인한 죄의 세력이 남아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신자는 죄가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죄에서 벗어나서 죄와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이며, 죄와 원수가 된 자들입니다. 불신자는 죄의 지배아래 있으며, 죄의 영향력과 힘을 거부할 수 없는 자인 것입니다.

        신자는 죄와 싸우며, 죄와 대적하는 존재이지만 여전히 죄의 오염으로 인해 죄의 충동과 유혹에 마음이 이끌리게 되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신자는 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고, 죄로 인하여 마음이 괴롭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더 이상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며, 죄가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슬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탄식하며, 몸의 속량 즉 구원을 속히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몸이 속량 받기를 원한다는 것인데 죄는 우리의 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몸이란 단순히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결합되어 있는 욕망과 욕구를 가리키며 성경은 이것을 육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은 이러한 신자의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For the flesh desires what is contrary to the Spirit, and the Spirit what is contrary to the flesh. They are in conflict with each other, so that you are not to do whatever you want. 라고 합니다. 육체는 단순이 물질인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가진 존재를 말하며 이것을 육체의 소욕 즉 욕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자 안에서는 육체의 소욕 만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 또한 가지고 있어서 이 둘이 서로 대적하는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속히 벗어나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 신자의 상태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신자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왜 여전히 신자는 죽는가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원인이 되는 죄가 죽었는데 말입니다. 불신자의 죽음의 이유는 그들이 지은 죄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받지 않고 믿지 않음으로 여전히 범죄한 상태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죽음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의 죽음은 우리 죄를 위한 보상이 아니라 죄에 대해 죽는 것이요 영생에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 만이 죄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죄에 대한 보상이나 형벌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육체의 죽음으로 이제 죄와 완전히 단절되며 죄와 완전히 분리되기에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바로 성경 말씀으로부터 주어진 것인데 고린도전서 1552-53절을 보면 [고전 15:52-53]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in a flash,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For the perishable must clothe itself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나팔 소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 즉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다 변화되는데 이 썩을 것 즉 우리의 현재의 몸이 반드시 썩지 않을 것을 입게 되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 몸은 반드시 죽을 것인데 왜 죽어야 하는가 하면 바로 죄의 오염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몸이 죽어 반드시 죽지 않게 될 새로운 몸을 입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죽음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죽음은 죄와 완전히 분리되며, 더 이상 죄가 없으며, 죄를 지을 수도 없는 새로운 몸을 덧입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신자의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바라는 것이며, 기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시며, 더 이상 육신에 이끌려 살지 않게 되는 복됨이 바로 죽음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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