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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_gsE9YmnU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의 대단원인 다락방 강화라고 일컬어지는 예수님의 설교 가운데 제자들과의 연합과 공동체의 운명을 다루는 구속사적 요절입니다. 특히 본문 2절의 "제하여 버리신다"는 선언은 신자들에게 구원의 탈락이라는 영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신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쟁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단순히 농경적 은유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근원과 신자 사이의 유기적 결속, 그리고 농부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선포합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그리스도와 신자의 참된 연합과 외형적 가식 사이의 준엄한 구분을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구절의 핵심 동사인 '아이레이'에 대한 엄밀한 원어 분석을 시작으로, 이 구절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순결성을 보위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

요한복음 15장 2절을 보면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He cuts off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 fruit, while every branch that does bear fruit he prunes so that it will be even more fruitful.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먼저 다룰 내용은 제해 버리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가지 가운데 제해 버리는 가지가 있는데 어떤 가지인가 하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입니다. 이 가지를 아버지께서 즉 하나님께서 제해 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왜 이 부분이 해석적인 문제로 대두되는가 하면 2절의 첫 부분에 시작되는 말씀인 무릇 내게 있어 라는 말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즉 이 가지가 어떤 가지인가 하면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해 집니다.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가운데에서도 제해지는 자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자들 가운데서 과실이 없는 자들은 제해질 수 있다면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 하고 받아 들이냐에 따라 구원에 관한 이해가 달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분명하게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가지는 제해집니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를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혹은 예수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이 취소되거나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신약 성경의 다른 본문과 반대가 되는 주장이기에 어렵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을 보면 [요 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I give them eternal life, and they shall never perish; no one will snatch them out of my hand. My Father, who has given them to me, is greater than all; no one can snatch them out of my Father's hand. 라는 말씀은 대표적인 우리의 구원이 취소될 수 없음을 증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또한 엡 1장 4절의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는 말씀도 동일합니다.

이런 구절과 본문은 대치가 되기 때문에 다른 해석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제하다라는 단어는 아이로 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들어 올리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브루스 월킨스라는 목사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하다 즉 잘라내다 혹은 버리다는 뜻이 아니라 들어 올린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들어 올린다는 의미는 포도나무 가지가 과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지게 땅에 떨어지게 되어 흙탕 물이나 혹은 흙에 덮여 썩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 가지를 들어 올림으로 가지가 썩거나 상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제한 다는 것은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려 가지가 열매 맺게 하기 위한 농부의 노력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런 해석은 참으로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아이로 라는 단어는 들어 올린다는 뜻이 중심이나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잘라 낸다는 뜻입니다. 버린다는 의미 또한 있기에 본문에서 이 단어를 들어 올린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맥 상에도 예수님께서는 반어적 의미로 제한다는 말과 깨끗케 한다는 말을 서로 사용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문맥을 볼 때에 요한복음 15장 6절을 보면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If you do not remain in me, you are like a branch that is thrown away and withers; such branches are picked up, thrown into the fire and burned. "밖으로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가지가 최종적으로 '불사름'의 심판에 처해진다는 점은 2절의 '아이레이'가 단순한 세척이나 교정이 아닌, 단호한 심판적 제거임을 확증합니다. 이는 포도나무의 거룩함과 건강을 유지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결단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의미 그대로 잘라 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그 조금 잘못하거나 과실을 맺지 못한다면 버려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지 않고 늘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게 되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런 주제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본문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 본문은 신자가 믿음에서 떨어지거나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반역하여 세상으로 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주는 본문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입니다. [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비췸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을 뿐더러 성령에 참예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신자의 타락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며 신자 또한 구원이 취소되며 구원은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 이 본문은 마치 요 15:2절 말씀을 지지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번 비췸을 얻고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비췸이란 수동형으로 비추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비추다 라는 것은 무엇인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감추어진 어떤 것에 대하여 보여지고 깨달아진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에 대한 깨달아진 것이며 알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췸이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단회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일시적으로 깨달을 수 있으나 그것이 지속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이끌어 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구원 얻은 신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고 합니다. 하늘의 은사라는 것은 어떤 신비한 능력이나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경험하게 된 어떤 것입니다. 이것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맛보았다는 것은 먹지 않고 맛만 보았다는(존 오웬의 해석) 의미가 아닙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친숙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로이드 존스의 해석) 체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사람들은 하늘의 은사에 대하여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이 친숙하고 신앙 생활이 친숙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성령에 참예 하다라는 말에서 참예 하다라는 말은 무엇을 따라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뜻은 참석자 혹은 함께 나누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동업자나 파트너 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사울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사울도 선지자냐 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발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돈을 위하여 예언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어떤 능력이 주어졌던 사람입니다. 즉 성령에 참예하다 라는 의미는 성령께서 어떤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그를 동업자로 삼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은 결국에는 참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신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을 보면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Many will say to me on that day, 'Lord, Lord,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and in your name drive out demons and in your name perform many miracles?' 교회 안에 있지만,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지만 이들은 구원을 얻은 신자들이 아니라 그것에 단지 일시적으로 참여하고 일시적으로 고백하며 일시적으로 신앙 생활을 경험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구원이 취소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구절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또한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5:2절에서 내게 있어 라는 말씀 속에서 제하여 지는 가지가 참된 신자일 수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15장 2절을 보면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He cuts off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 fruit, while every branch that does bear fruit he prunes so that it will be even more fruitful. 이런 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은 구원을 받지 않았어도 내가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지 않아도 그럼에도 신자처럼 그리고 구원 얻은 것처럼 행동하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있어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마치 주님 안에 있는 자 같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구별이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나 그렇지 않고 한번 비췸을 얻은 자나 똑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행위에 구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또한 성령에 참예하여 마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헌신된 모습으로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성령에 참예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거룩한 말을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말하며 진리를 옹호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발람이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과 그리고 그분이 말씀해 주시는 것에만 집중하였던 것과 같은 모습이 나온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결과적으로 다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실을 맺는 것이 다릅니다. 본문에서는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못하는 자들이 제하여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과실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과실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왜 과실을 맺지 못한다고 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과실은 포도나무의 열매입니다. 즉 앞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예수의 열매가 아니라 자신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주님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합니다. 일하면서 다툽니다. 봉사하면서 싸웁니다. 시기하며 질투하며 남을 멸시하기도 합니다. 전혀 사랑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일에 예수님의 인격이 드러나지 않고 자신의 욕심과 탐욕과 자신이 높아지며 사람들 위에 자신의 이름이 칭찬 받기를 원하는 모든 것은 잘못된 열매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자신의 냄새를 나게 하지 않습니다 일해 놓고 자신은 그 영광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수고해 놓고 자신은 슬그머니 그 수고의 칭찬에서 빠집니다. 오직 주님이 영광을 받고 주님께 기뻐하심을 얻는 것을 더욱 좋은 것으로 알아 자신을 낮추며 타인을 높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다른 것은 과실을 맺는 가지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를 제하시지만 과실을 맺는 가지를 아끼고 사랑하시며 돌보시며 궁휼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그런 과실을 맺는 가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아끼시며 사랑하시는 가지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단어를 영어 성경들은 가지를 친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가지치기란 가지에 붙어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즉 열매를 맺는 일에 적합하도록 방해되는 것이나 낭비를 일으키는 것이나 쓸모 없는 것들을 잘라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것은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그래서 가지가 바른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바른 가지게 되는 것은 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지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위해 가지 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가지를 친다는 것은 가지에게 이로운 것이고 가지가 그 가치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에도 가지에게는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의 어떤 것을 잘라는 내는 것이 쉬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닮지 못한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다듬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이 어려운 것이 이것입니다. 신자의 삶이 만만치 않은 것이 이것입니다. 신자라는 것이 그냥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인내하라는 말이나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나 십자가에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신자의 삶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맞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신자는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매일 자신을 깍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매일 힘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남편을 통하여 내가 깍입니다. 내일은 자녀들 때문에 내가 잘려집니다. 내 이웃 때문에 친구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깍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참아내는 것이 그리고 인내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자신이 무시를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견뎌야 하는 상황들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님의 인격 가운데 온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온유라는 것은 부드러움이나 착함이나 수줍음이나 부끄러움 등의 의미가 아닙니다. 온유라는 것은 자기를 변호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요구하지 않으며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 자신의 요구나 주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신자는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제 생각과 제 뜻에 개의치 마십시요 라는 말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생각과 내 뜻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어떻게 참된 신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매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깍고 다듬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깍으시도록 문질러 대시도록 잘라내도록 자신을 드리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매일 자신의 바꾸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는 매일 자신을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신의 변화와 새롭게 됨을 조금씩이나마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될 부담감과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압감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하여질 가지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며 깍아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지도 않고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교제도 없고 교통 또한 없으면서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이 슬프지도 않을 뿐더러 괴롭지도 않고 아무런 감흥이 없을 뿐더러 하나님을 만나려는 의지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큰일 나겠구나 라는 두려움마저도 없어 자신의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살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구원 받지 못한 자의 마음이며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깨끗하게 하고 계십니까?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며 순종함으로 자신을 변하시키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을 향한 열심도 수고도 자신을 부인하며 드리는 헌신도 없음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자각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고민하셔야 합니다. 정말 내가 예수를 믿고 있는가 생각 보셔야 합니다. 정말 내가 구원을 받았는가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신자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 수 없으며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며 그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민해 보셔야 합니다. 다시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간절함과 부르짖음과 통회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리셔야 합니다. 한번 비췸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통이 있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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