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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6.01.14 17:00

생명은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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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SjDa4qZf_rw


오늘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 속에는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삶을 비유의 중요한 내용을 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비유 속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이며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직접적인 대상이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절을 보면 [ 12: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Meanwhile, when a crowd of many thousands had gathered, so that they were trampling on one another, Jesus began to speak first to his disciples, saying: "Be on your guard against the yeast of the Pharisees, which is hypocrisy.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라는 말로 가르침을 주시고 계심을 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된 자들이 따르며 교훈을 삼아야 할 제자도의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누가복음 1215절을 보면 [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Then he said to them, "Watch out! Be on your guard against all kinds of greed; life does not consist in an abundance of possessions."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그들은 제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주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13절을 보면 [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Someone in the crowd said to him, "Teacher, tell my brother to divide the inheritance with me."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그 요구는 자신의 형에게 명하여 유산을 자신과 나누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인지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의 상황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이 사람에게 형이 있고 그 형이 유산을 다 차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요구에 대하여 14절을 보면 [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Jesus replied, "Man, who appointed me a judge or an arbiter between you?"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는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먼저 이 사람아 라고 호격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라고 그를 칭하신 것은 꾸짖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드럽고 따스한 호칭들을 보게 되지만 여기서는 꾸짖으며 호통을 치는 의미입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런 일들을 위해서 세우심을 입은 분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의 이 사람아 라고 부르며 꾸짖으며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이 사람은 예수님을 랍비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랍비 즉 선생들은 이런 일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물건 나누는 자로 세우려 하는 것에 대하여 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 청함에 대하여 화를 내시며 금하시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재물을 나누는 사역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재물을 나누는 문제에 있어서 이 사람의 마음에 탐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탐심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용하시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있어야 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주시는 분이신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누라, 저렇게 나누라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무시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한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라는 부탁에 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 15절을 보면 [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Then he said to them, "Watch out! Be on your guard against all kinds of greed; life does not consist in an abundance of possessions." 예수님께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유산 분할을 요구하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이 탐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5절의 내용은 13절의 한 사람의 요구에 대한 결론인 셈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이 말을 살펴보면 삼가라는 말은 주의하라는 말로 명령입니다. 예수님을 탐심에 대하여 주의하라고 합니다. 탐심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죄로 분류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바울 또한 교회에 편지하면서 온갖 탐심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탐심이란 말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 이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기에 탐심이라는 말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탐심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단순히 필요한 것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탐심은 필요한 것에 대한 욕구가 아닙니다. 탐심이란 이미 필요한 것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구이며 마음의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탐심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6절을 보면 [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And he told them this parable: "The ground of a certain rich man yielded an abundant harvest.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해에 이 사람은 농사를 지은 것이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소출이 풍성하매 라는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농사꾼이 가장 행복할 때가 추수할 때 입니다. 자신이 수고하여 가꾼 농작물이 열매를 맺음이 기쁨이고 행복이지만 이 사람은 기대 이상의 열매를 얻게 되었습니다. 풍성하매 라는 말은 결실을 많이 하다란 뜻입니다. 그는 많은 결실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한 첫 번째 서술어를 보면 이 사람은 이미 부자인 것입니다. 이미 그는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해에 풍년이 들어 엄청난 양의 곡물을 거두어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론 할 수 있는 근거는 17절에 이 사람이 그해 수확한 곡물이 얼마나 많은지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17절은 이 사람에게 근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17절을 봅시다. [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7 He thought to himself, 'What shall I do? I have no place to store my crops.' 이 사람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곡식을 넣어 둘 창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보관 장소가 없어서의 고민이 아니라 보관 장소의 협소함으로 인한 고민입니다. 이 고민에 대한 해결 책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18절에서 그 해결책을 발견하고 시행에 옮깁니다. 18절을 봅시다. [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Then he said, 'This is what I'll do. I will tear down my barns and build bigger ones, and there I will store my surplus grain. 이 사람의 결심이 무엇입니까? 내가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결심은 세 개의 동사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헐고, 짓고, 쌓아 둔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개의 동사 중에 가장 중요한 동사는 쌓아 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의 헐고, 짓는 것은 쌓아 두기 위한 앞선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8절에서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이 사람의 속 마음과 결심을 보면 이 사람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은 철저한 자기 중심주의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 만을 알며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표현 속에 등장하는 이 사람은 내가 내 곡간을 내 모든 곡식 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오직 자신 밖에 모르며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인시켜주는 것이 19절입니다. [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And I'll say to myself, "You have plenty of grain laid up for many years. Take life easy; eat, drink and be merry."' 이 사람이 자신의 영혼에게 말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네 개의 동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입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위해 창고를 헐고, 짓고 쌓아 두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 사람에게 즐거움이 됩니까.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평안한 쉼은 물건을 많이 쌓아 논 것이며, 이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근거 또한 많이 쌓아 놓은 물건 때문입니다. 결국 이 쌓아 놓은 물건에서 이 사람은 안식을 누리며 평안을 얻으며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물건이 이 사람을 지키며 이 사람을 보호하며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부자에 대한 비유를 주시는 목적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비유의 목적은 탐심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이 탐심입니까? 물질에 의존하며 물질로 평안과 만족을 누리며 행복을 얻으며 기쁨을 만끽하려는 그 모든 마음의 상태입니다. 성경이 탐심에 대하여 정의 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봅시다. 골로새서 35절을 보면 [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Put to death, therefore, whatever belongs to your earthly nature: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evil desires and greed, which is idolatry. 바울이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단순한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 왜 이것이 우상 숭배가 됩니까? 예수님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한 부자가 보여주는 것이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물질을 의지하며 물질을 신뢰하며 물질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물질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4-5절을 보면 [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mage. You shall not bow down to them or worship them;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너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일하다, 봉사하다 라는 것입니다. 탐심이 왜 우상 숭배가 되는가 하면 물질을 섬기며 물질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수고하며 그것들을 더 소유하기 위해 일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위해 일하며 수고하는 것은 물질을 숭배하는 것이기에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거부하며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시 누가복음 1215절을 보면 [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Then he said to them, "Watch out! Be on your guard against all kinds of greed; life does not consist in an abundance of possessions." 예수님께서는 삼가하고 물리치라고 두 개의 명령어를 사용하여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삼가라는 말이 주의하라 입니다. 물리치라는 말 또한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탐심에 대하여 주의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절에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생명이란 물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소유 즉 물질이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며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물질은 결코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질 자체가 우리의 생명을 보장하거나 영생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탐심을 주의 하며 경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이 마치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물질에 매여 삽니다. 물질이 부족하며 두려워하며 근심하며 마치 곧 망하거나 죽을 것처럼 의지를 잃고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물질이 많으면 힘을 얻고 생기가 있고 살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물질이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대도 말입니다.

   그럼 물질이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우리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20절을 보면 [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But God said to him, 'You fool! This very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from you. Then who will get what you have prepared for yourself?'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영혼 곧 생명의 주인 되신다고 하십니다. 20절은 그러나 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부자는 자신의 영혼아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라고 물질의 숭배하며 생명이 영원할 줄 알지만 그러나 그 생명의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자의 영혼을 도로 찾으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도로 찾는다는 말은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 분이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 주신 생명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찾으시는 날이 언제입니까? 오늘 밤입니다. 자신이 쌓아 놓은 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자신이 얻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오늘 밤입니다. 그가 그토록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며 평안과 즐거움을 얻고자 했던 물질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부르시는 그날 밤에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1221절을 보면 [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This is how it will be with whoever stores up things for themselves but is not rich toward God." 탐심이란 21절의 말씀처럼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을 위해 일하며 봉사하며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에 생명을 두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었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 자가 된 것입니다.

21절의 예수님의 결론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라 헌금을 많이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이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해서 천국을 보장 받거나 혹은 하나님이 복을 보장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하여 라는 말은 재물을 자신에게 유익하게 하며, 자신을 안전하게 하며,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자리에 올려 놓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2절을 보면 [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And if you have not been trustworthy with someone else's property, who will give you property of your own? 이 말씀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라고 할 때에 물질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물질을 남의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물질은 모두다 인간 개인이 소유한 소유물이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만물은 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의 것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남의 것을 가지고 친구를 만든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소유물은 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519절을 보면 [ 5: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Moreover, when God gives someone wealth and possessions, and the ability to enjoy them, to accept their lot and be happy in their toil-this is a gift of God.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재물은 남의 것, 즉 하나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 재물을 가지고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을 위하여 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드리지 않아 하나님이 가난해 지시고 무엇인가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부요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부요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하여 즉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하는 방식에 있어서 부요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뿐만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 유익하게 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탐심을 억제하며, 이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신 것에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만 기뻐하기로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분량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에 더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한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에 재물이 사용되록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생명은 소유의 넉넉한 것에 의존하지 않고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만 의존하기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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