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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iHDVxuEMi2A


모든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표시하는 표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평생 동안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불리우고, 그 이름으로 그가 누구인지가 정의됩니다. 평생 동안 자신을 정의하고, 이상하고 어떤 면에서 기이해 보이는 평생 자신의 신분으로 소유하고 있는 이름이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어떤 이들은 태어나기 전에, 어떤 이들은 태어난 후에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이름이 결정되고 그 이름에 의해서 자신이 불려지고 정의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내 것인데 나의 어떠한 동의도 없이 정해지고 규정 되어진 채 불려지는 우리의 이름, 생각해 보면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이름을 짓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조부모나 작명소에서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름은 이 땅에 태어난 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없는 아담은 누가 그의 이름을 지었습니까? 창세기 52절을 보면 [ 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He created them male and female and blessed them. And he named them "Mankind" when they were created.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즉 사람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이라는 이름이 아담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가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지으신 인간을 사람 즉 아담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아담의 원어적 의미는 붉다는 뜻의 '아돔' 혹은 '/'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유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신 것은 인간이 땅의 먼지로 만들어진 피조물임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대리 통치자로서의 직분을 수여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좀더 설명을 드리면 고대 세계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명칭을 붙이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존재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선포하는 법정적 행위였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19절을 보면 [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Now the Lord God had formed out of the ground all the wild animals and all the birds in the sky.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하나님께서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하나님의 아담에 대한 호기심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담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흥미로운 이름 붙임의 사건이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을 정하여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받는 대상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이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아담이 온갖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창세기 127절을 보면 [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God blessed them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Rule over the fish in the sea and the birds in the sky and over every living creature that moves on the ground."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명령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바로 아담이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음으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엇인가에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반려 동물을 기를 때에 그것에 이름을 부여 합니다. 그 이유는 소유권이 나에게 있음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다스림이 나에게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기초는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다"라는 고백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이름을 지으시고, 언약 백성들의 이름을 바꾸시는 것은, 그들의 인생이 이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 속으로 편입되었음을 뜻합니다.

        성경이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한 그 의미를 몇가지 중요한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름을 직접 지으신 행위는 성경적,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과 주권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인의 관습에서 이름은 반드시 그 대상에 대해 주권과 소유권을 가진 자가 붙여주게 되어 있으며, 이름을 지어 이를 공포하는 것은 그 대상이 자신에게 속해 있음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신 것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소유권과 통치권이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3절을 보면 [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The ox knows its master, the donkey its owner's manger, but Israel does not know, my people do not understand."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짐승들은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압니다. 자신에게 때마다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을 돌보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의 주인을 모르며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42-3절을 보면 [ 14: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The Lord looks down from heaven on all mankind to see if there are any who understand, any who seek God. All have turned away, all have become corrupt;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not even one.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모든 인생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생을 살펴 보신 이유는 그들 중에 지각이 있어서 하나님을 찾는 가 있는가 보려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그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그 소유권이 있으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셔서 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름을 지으신 둘째 이유는 인간의 본질과 사명을 규명하며 복을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호칭을 정하는 것을 넘어, 그 대상의 내면적 본질과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을 직접 지어 주심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임을 확증하고, 그들이 피조 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과 사명을 부여하며 복을 주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5절을 보면 [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first day.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고 합니다. 빛을 낮이라 이름을 지으신 것이며, 어둠을 밤이라 이름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소유권과 통치권을 의미하며, 낮과 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왜 낮과 밤이 지속될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구의 자전에 의해서 낮과 밤이 바뀐다고 과학적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자연 법칙에 속한 것으로 자연 스스로가 이러한 법칙을 유지하며 지켜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고 부르셨고 어두움을 밤이라고 부르신 일을 통하여 그 기능들이 시작되게 되었고, 지금도 지구의 자전으로 낮과 밤이 지속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왜 지구가 24시간이라는 시간과 1년 이라는 365일의 날들로 구성되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우연입니다. 우주의 기원 조차도 지구와 같은 행성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자연의 우연한 섭리에 의해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며 분명한 대답을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그의 크신 능력으로 온 우주에 빛을 주셨고 지구는 낮과 밤이 반복되도록 지으셨으며, 이 기능이 여전히 유지되도록 지금도 역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 이름을 짓는다는 의미 속에 담겨진 뜻입니다. 그가 이름을 지으신 것은 그가 지으신 것에 대한 본질과 사명을 규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과 사명을 다하도록 복을 주셔서 낮은 낮의 역할을 그리고 밤은 밤의 역할을 지금도 순종하여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름을 지으신 것에 복을 주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인간의 이름을 주어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As some of your own poets have said, 'We are his offspring.'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인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방식은 그들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는 것을 보니 그가 복을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지 못하며 움직이지 못하며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이 인간의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의 이름을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각종 짐승의 이름을 짓는 권한은 인간에게 위임하여 인간이 자연 만물보다 우월한 지위(지배권)를 가졌음을 보여주셨으나, 인간의 이름만은 직접 지으셨습니다. 이는 모든 생물은 인간의 다스림 아래 있을지라도, 정작 인간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분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의존적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넷째로 이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인간 창조의 과정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협의와 숙고를 거치셨으며, 이름을 직접 명명하심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걸작품이자 특별한 사랑의 대상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 24-6을 보면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의 지구의 모습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의 지구는 초목이나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지면을 적셨습니다. 참으로 인간이 출현하 기전 지구는 혼돈하고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기 직전 이러한 지구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 하시고 인간이 아무런 문제 없이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조성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 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히브리서 216절을 보면 [ 2: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For surely it is not angels he helps, but Abraham's descendants.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확실히 즉 분명하고 명확한데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아니라고 합니까? 예수님께서 사람과 같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붙들어 주다는 말은 취득하다, 얻다, 소유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은 타락한 천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기로 결정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사들도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못한 인간들을 위하여는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유에 대하여 다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아는 것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 그 이름을 다시 회복하도록 더욱 거룩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는 오직 그분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다스림을 받기를 원하며, 그분의 통치 아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분은 반드시 그 이름에 걸맞도록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실 것이며, 모든 복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그 이름에 걸맞는 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성도로 부르신 이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이 우리에게 합당하게 불려지도록 우리의 삶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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