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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d_YqFo5EbJE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주심에 대하여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화목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먼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을 직접적으로는 175, 간접적으로는 더 많이 언급합니다. 이 숫자 자체도 압도적이고 놀라운 일이며, 신약 성경이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복음서 하나 하나가 비교적 짧은 책이지만 놀랍게도 각각의 책은 삼분의 일을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할애했습니다. 마태복음의 정확히 삼분의 일은 죽으심에 대한 기록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거의 사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의 경우는 삼분의 일이 넘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것에 할애된 지면 중 삼분의 일이 그의 죽으심 및 그 즉각적인 원이 된 사건들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의 의미는 주님의 성육신과 생애와 가르침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이 훨씬 더 중요하는 것을 복음서는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이들은 성령의 인도와 지도 아래 복음서를 기록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강조하는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상기시킨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십자가상의 죽으심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 그는 어디를 가든지 회당으로 들어가서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해를 받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둘째는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3절을 보면 [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explaining and proving that the Messiah had to suffer and rise from the dead. "This Jesus I am proclaiming to you is the Messiah," he said.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 또한 이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 났는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들에 대하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그 죽으심은 내 죄 때문이며, 그로 말미암아 나는 용서 받았다고 믿는 것만 중용하며, 이것이 다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왜 성경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와 십자가에 일어난 사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서신서에서 그렇게 많이 언급하며, 다루는가 하는 것입니다. 쓸데 없이 지면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이러한 내용들을 깊게 다루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일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와 새롭게 함이 일어나게 하는 일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진리들을 살피고 아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이 우리의 믿음을 바르게 하며,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어떤 사람이 언제나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또는 강단 위나 자기 교회의 어딘가에 또는 자신의 목에 십자가를 걸어 놓았다고 해서 그가 십자가에 대해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십자가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십자가를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자연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은 지금도 여전히 거치는 것이며, 사람들이 십자가에 대해 잘못되고 거짓된 방식으로 이야기 할 때 이 사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사건을 하나의 비극 혹은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십자가가 전적으로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겨난, 절대적으로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사건들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건은 부분적으로는 정치적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백성이 미혹되어 자기들의 권세를 빼앗길 위험이 있었다고 믿고는 반대파를 부추겼다는 것입니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자들은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예상치 못하신 채 갑자기 당하셨고,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은 다 끝장이다 라는 뜻이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따라 경건한 삶을 살도록 설득하셨으나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예기치 못한 죽임을 당하였고 비극적인 삶을 마쳤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전부 성경의 설명과 동떨어진 이야기들 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자기 제자들을 준비시켰습니다. 특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몬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하나 이후 우리 주님은 즉시 십자가와 자신의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절을 보면 [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just as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이유에 대한 명백한 진술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서에서 때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 주님께서 앞으로 다가올 어떤 때 즉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인 어떤 때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때는 곧 임할 주님의 죽으심의 때였으며, 이를 통해 주님은 최종적인 영광을 얻으실 것이었습니다. 요한 복음 1223절을 보면 [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Jesus replied, "The hour has come for the Son of Man to be glorified.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실 사람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를 믿고 구원을 얻는 모든 믿는 자들의 구세주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값을 지불하여 사심으로 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심에 대한 이유에 대하여 보다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성경은 사도행전 223절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23절을 보면 [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This man was handed over to you by God's deliberate plan and foreknowledge; and you, with the help of wicked men, put him to death by nailing him to the cross.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죽음의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원인들이 있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입니다.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가롯 유다의 배신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의 시기와 빌라도의 그릇된 재판의 행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로 정하시고 뜻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들도 우리 주님을 죽게 하는 일에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배후의 일들은 하나님의 정하심과 뜻하심을 이루기 위한 죄된 인간들의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더하자면 마태복음에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1-5절의 내용을 보면 이 중에서 5절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 26: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But not during the festival," they said, "or there may be a riot among the people." 관원들은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 즉 명절기간에는 하지 말자로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지금 우리가 고난주간이라고 불리우는 날들 화요일에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 주님은 자신이 금요일에 배신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2절을 보면 [ 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As you know, the Passover is two days away-and the Son of Man will be handed over to be crucified."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에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분을 못박을 자들은 관원들은 명절 기간에는 하지 말자 라고 결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주님을 유월절에 못 박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주님은 바로 그 날 못박히셨습니다. 명절 기간에는 아무도 사형에 처하지 않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22-4절을 보면 [ 12:2-4]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He had James, the brother of John, put to death with the sword. When he saw that this met with approval among the Jews, he proceeded to seize Peter also. This happened during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After arresting him, he put him in prison, handing him over to be guarded by four squads of four soldiers each. Herod intended to bring him out for public trial after the Passover. 헤롯 왕은 베드로를 체포했지만 그날이 무교절 기간이었기 대문에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죽으실 것을 아셨을 뿐 아니라 그 정확한 시점까지 아시고 사흘 전에 이미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주님이 갑자기 그리고 우연히 죽게 되었다고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잘못 이해하는 것 중에 마지막은 순교자로서의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훌륭한 교사가 자기의 가르침을 철회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기꺼이 순교자로서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순교자의 죽음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었다면 주님은 이전에 죽어 간 이 세상의 많은 순교자들보다 못한 분이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순교자들은 승리와 기쁨 가운데 화형장 또는 처형대로 걸어 들어감으로서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기 합당한 자로 여겨진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순교자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주님은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영혼에 번민을 느끼셨습니다.

주님의 자기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27절 말씀을 보면 [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Now my soul is troubled, and what shall I say? 'Father, save me from this hour'? No, it was for this very reason I came to this hour.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라고 하며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때를 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떠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순교자들은 절대 그와 같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의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독특한 것이었으며 모든 의미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어떤 순교자의 죽음보다 위대한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유일무이한 죽음인 이유는 그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짊어 지고 죽는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마신 잔은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진노의 잔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극한 고통의 잔이었으며, 지옥을 맛보는 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자신이 죽음을 통과하게 될 때 겪으실 고통에 마음이 뒷걸음 지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우연도 아니었고, 비극도 아니었으며, 순교자의 죽음도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은 일어나도 그만,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죄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은 반드시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사람이 값을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자원해서 되는 문제가 아닌 이유는 모든 아담의 후손은 이미 죄 아래 있기 때문에 다른 이를 위한 죽음을 죽음으로 용서받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죽음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 없는 한 인간이 필요한 동시에 그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그분이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는 택하신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즉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기 위해서는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며,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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