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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6.03.31 18:34

나의 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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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zeuGiYsKrxM


요한복음 15장은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강화인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에 이르는 내용의 핵심부입니다. 고별 강화 라는 용어는 한자어로 되어 있어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풀어서 설명하면 떠나기 전에 주시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심을 아시고 마지막에 긴 설교를 하십니다. 주님은 긴급한 상황 속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이라는 장엄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주님의 부재와 세상으로부터의 박해와 환란이라는 위기 앞에 놓인 제자들에게, 거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영적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핵심 내용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54절을 보면 [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Remain in me, as I also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이 말씀의 중요성은 우리 주님이 이 땅을 떠나시기 전 자신의 부재 가운데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있을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인 동시에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위로이자 확신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있을 것이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가리키는 열매 맺는 삶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이나 종교적 수행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오직 거함이라는 본질적 조건이 충족될 때 흘러나오는 생명력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성도의 존재 양식이 어떻게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귀속되어야 하는지를 언어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이제 핵심 동사의 원어적 분석을 통해 이 거함의 명령이 갖는 엄중함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의 중추를 이루는 동사는 거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나테 입니다. 이는 메노의 부정과거 명령형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말해주는 의미는 이 명령이 단순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넘어선 강력한 의미를 가짐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정과거 명령형은 어떤 상태 안으로의 '즉각적이고 단호한 진입'을 요구합니다. ,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라는 거처 안으로 즉시 자신의 모든 존재를 옮겨 '거처를 확정할 것'을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신자에게 연합의 상태로 즉각 진입하라는결단적 시작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좀더 명확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He cuts off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 fruit, while every branch that does bear fruit he prunes so that it will be even more fruitful.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자기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릇 내게 붙어 있다는 말과 이미 우리가 앞서 살펴본 요한복음 15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무릇 내게 붙어 있어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이에 대한 질문은 주님께 이미 붙어 있는데 그러면 됬지 이들에게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둘 사이를 구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해야 한다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52절에서 내게 붙어 있어 라고 할 때에 이 단어는 에논이라는 헬라어 입니다. 그 뜻은 있다 라는 뜻으로 현재 분사형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생물학적으로 가지가 나무에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기초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할 때에 거하라는 단어는 메노라는 헬라어의 부정과거 명령법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있는 것을 넘어 머무르다, 살다, 견디다, 유숙하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관계의 지속성과 주관적인 의지가 포함된 체류를 뜻합니다. 정리하면 '붙어 있음'이 연결(Connection)이라는 정적인 상태라면, '거함'은 상호 교제(Communion)라는 동적인 관계를 뜻합니다.

        이것을 좀더 깊게 들어가 살펴보면 문장의 형태에서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데 2절의 내게 붙어 있어 라는 것은 수동적 상태을 의미하며 2절에서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화자인 예수님의 관점에서 분류되는 객관적 상태입니다. 가지 스스로가 붙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부착되어 있는 외형적 조건을 말합니다. 반면에 4절의 내 안에 거하라 라는 것은 능동적 명령형 입니다. 이는 제자들의 결단과 반응을 요구합니다. 헬라어 부정과거 명령형은 '지금 당장 결단하여 그 상태로 들어가라'는 긴박함과 확고함을 나타냅니다.

        이 둘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요한복음 15장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차이는 '생명' '풍성함'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2절의 '붙어 있음'은 제자로서의 명목상 위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가롯 유다처럼 외형적으로는 예수님 곁에 붙어 있었으나, 실제 그분의 생명력 안에 거함 있지 않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점에 대하여 요한복음 154절을 보면 [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Remain in me, as I also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고 합니다. 즉 거함은 열매를 위한 조건인 것입니다. 4절에서 거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는 말씀처럼, 열매를 맺기 위한 필수적 연합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한 중요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 1117절을 보면 [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If some of the branches have been broken off, and you, though a wild olive shoot, have been grafted in among the others and now share in the nourishing sap from the olive root, 또한 가지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돌감람나무는 누구입니까?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들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 법칙을 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실 수를 다루는 원예법이 있습니다. 원예법에 따르면 나쁜 가지를 좋은 줄기에 접붙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가지를 좋은 줄기에 접붙이며, 나쁜 열매가 맺습니다. 이유는 가지가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이고 바른 방식은 좋은 가지를 나쁜 줄기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좋은 가지가 나쁜 줄기에서 양분을 받아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성을 거스리는 일에 일어난 것입니다. 나쁜 가지가 좋은 줄기에 접붙임이 되어 좋은 줄기의 뿌리의 진액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성이 나쁜 감람나무의 본성에 합당한 열매가 아니라 줄기의 진액에 의해서 좋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줄기로 부터 오는 진액을 받아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라는 거입니다. 이는 원예적으로 볼 때에 줄기와 가지가 유기적으로 일체가 되었을 땡 일어나는 일입니다. 붙어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줄기와 유기적 일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가지를 접붙임을 할 때에 농부가 기대하는 온전한 상태의 접붙임은 나무의 주 줄기와 가지의 관이 하나로 연결되어 나무의 수분과 영양분이 실시간으로 가지 끝까지 전달되는 상태입니다 거함란 바로 진액이 끊임 없이 흐름을 의미합니다. 나무 안에 거하는 가지는 자기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려 애쓰지 않고, 오직 나무가 보내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의 역할은 '노력'이 아니라 '통로 유지(Abiding)'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문맥 속에서 그 내용을 찾아 보면 요한복음 157절을 보면 [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내 안에 거하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그리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는 4절과 비교할 때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 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 바로 내가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주님 안에 있는지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가? 그에 대하여 주님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이며, 우리는 결합되었다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분의 구체적인 말씀이 내 생각과 가치관 속에 자리를 잡고(Abide) 떠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말이라고 할 때에 주님께서는 레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즉 주님께서는 "내 레마가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단어를 쓰신 이유는, 성경 지식을 많이 소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성령을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그 말씀이 내 삶을 다스리게 하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 말씀이 나의 삶의 원리가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럼 말씀이 삶의 원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하여 이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실천하는 수준을 넘어, 성경 말씀이 내 존재의 '운영체제'로 교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네 가지 핵심 단계로 정리하면 첫째로 판단의 근거가 이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원리가 바뀐다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기준점'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경험, 감정, 세상의 상식, 손익 계산이 판단의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내 안에 거하는 말씀, 즉 성령께서 지금 내 상황에 비추어 주시는 말씀이 판단의 최우선 순위가 됩니다.

둘째로 에너지의 공급원이 바뀜을 의미합니다. 가지가 스스로 노력해서 열매를 맺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부터 오는 진액을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 의지력과 인내심으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안에 머물 때 공급되는 영적인 위로와 능력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난이 닥쳤을 때 내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주님의 말씀이나 혹은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말씀의 진액을 빨아올려 그 힘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삶의 양식이 '순종'에서 '거함'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지켜야 할 규칙'으로 보면 삶은 무거운 짐이 되지만, '거해야 할 처소'로 보면 삶은 안식이 됩니다. 계명을 지키는 행위는 보상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한 방향 유지입니다. 말씀이 원리가 된 삶은 "하라 또는 하지 마라"는 강박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됩니다.

넷째로는 존재의 목적이 '열매'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은 목적은 오직 '열매'입니다. 말씀이 원리가 된 삶은 반드시 인격과 삶의 변화라는 결과를 맺습니다. 매의 본질은 내 야망의 성취가 아니라,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사랑, 희락, 화평 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이 삶의 원리가 된다는 것은 "포도나무의 진액인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혈관인 내 생각이나 의지 속에 흐르게 하여,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모든 방식이 주님을 닮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 거하기를 힘쓰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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