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주일말씀
2026.05.06 12:07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의미

YC
조회 수 952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bfRiwUS-QQA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서 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의 내용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8절을 보면 [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A certain ruler asked him,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라고 묻습니다. 성경이 이 사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과 그가 한 질문 속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 사람은 지금까지 율법을 잘 지켜온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820-21절을 보면 [ 18:20-21]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You know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give false testimony,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All these I have kept since I was a boy," he said. 이 사람은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진술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마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이 사람은 젊고, 부유하며, 관원으로 사회적 지위까지 갖춘 소위 다 가진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내면에 확신 없는 불안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누가복음 1818절에서 [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A certain ruler asked him,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묻는 이유입니다. 모든 계명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는 결핍을 느꼈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도리어 그에게 '내가 정말 충분히 했는가?'라는 끊임없는 자기검열과 영적 피로감을 안겨준 상태였습니다. 관원의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을 하여야 입니다. 이 내용은 오늘 우리가 살펴볼 24절부터 27절까지의 내용을 여는 열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 관리에게 세 개의 동사를 사용하여 그에게 필요한 것이 어떻게 채워지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네 팔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판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 부자 청년 관리는 심히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죽을 만큼 고통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소유한 재물에 대한 그의 집착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심히 근심하고 떠나간 그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교훈하십니다. 24절부터 27절까지 이르는 내용은 부자 청년 관리를 통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교훈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824절을 보면 [ 18: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Jesus looked at him and said, "How hard it is for the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예수님께서 그를 보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고 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의 상태와 근심을 꿰뚫어 보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의 상황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부자 청년 관리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왜 그가 죽을 만큼 마음이 고통스러워 하고 돌아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재물에 묶여 재물의 지배 아래 있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라고 합니다. 어렵다 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는", "까다로운"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단순히 '난이도가 높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영혼에 '체한 음식'처럼 걸려 있어 영적인 흐름을 방해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물이 있다 라는 단어는 현재 분사가 사용된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재산을 소유한 상태가 아니라, 그 재물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고, 그것에 집착하며 의지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강조합니다. 재물이 그를 소유하고 있는 상태의 사람들은 체한 음식에 걸려 소화 불량에 걸려 고생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상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누가복음 1825절의 말씀을 보면 [ 18: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Indeed,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someone who is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25절과 27절은 사람들이 크게 두 개의 오해를 하는 구절들입니다. 첫 번째의 오해는 낙타와 바늘귀에 대한 오해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오해입니다.

        먼저의 오해는 제가 20대 초반에 본문에 대하여 알고 있었고 들었던 내용입니다. 본문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이나 생각하지 않으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잘못된 역사적 정보에 의해 잘못된 성경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교로 등장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자나 낙타나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보다 쉽습니다. 그런데 보다 쉽다고 제시되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늘귀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바늘 귀라는 것이 바느질을 할 때 사용하는 바늘입니다. 귀라는 것은 바늘 구멍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쉽다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말입니다.

        이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늘 귀라는 것을 그냥 두고 낙타라는 단어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니 밧줄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대에 기록된 사본들에서 낙타와 비슷한 단어인 밧줄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밧줄이 바늘 구멍으로 들어간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해석은 바늘 귀라는 것은 바늘 구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늘 귀라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작은 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문은 작아서 이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낙타가 모든 짐을 풀어 놓아야 될 뿐만 아니라 무릎을 꿇어야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낙타의 혹조차도 잘라야 들어가는 문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 즉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낙타가 모든 짐을 다 내려 놓듯이 우리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낙타가 자신의 무릎을 꿇고 기억서 들어가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낙타가 자신의 혹을 떼어 내듯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잘라내어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잘라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듣는 자들에게 그렇구나 혹은 맞아 라는 동의를 얻어 낼 수는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겸손함과 자기 부정과 속된 것을 버림이라는 제자도가 가리키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본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우리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동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능력에 의한 영혼의 변화에까지는 이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낙타가 밧줄이라는 것도 사본적인 문제에서 후대에 변질된 기록이며 또한 바늘귀가 예루살렘의 한 문이라는 말도 11세기에 데오필락트라는 헬라인의 주석에 기록된 말일 뿐입니다. 즉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 바늘귀라는 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은 역사적 허구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허구로 인해 사람들은 본문에서 겸손해야 천국에 간다는 잘못된 교리들을 만들어 내며 겸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겸손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그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1826절을 보면 [ 18: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Those who heard this asked, "Who then can be saved?"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랐다고 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에 제자들이 심히 놀라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제자들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며 더욱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유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복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 18: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Jesus replied, "What is impossible with man is possible with God."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람들에 의해서는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구원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들의 의해서는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은 단순히 '어렵다'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나 힘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전적인 불능'을 뜻합니다. 복수형으로 쓰여 인간이 구원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수단이 불가능함을 포괄합니다.

이 선언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단 말인가에 대한 질문에 마치 그렇다 아무도 가지 못한다 라는 강한 부정으로 절망을 안기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놀람은 사람들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는 말로 인하여 자신들을 포함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진 상태입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아무도 천국에 못 가는가? 라는 것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 의해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은 하나님 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심에 대하여 또 다른 오해를 합니다. 이 말을 오늘날 오해되는 것은 부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로 오용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어떠한 부자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자 청년은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부자이면서 재물을 의뢰하고 그것을 믿고 신뢰하며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천국에 갈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6절입니다. [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Jesus looked at them and said, "With ma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누가복음과 다른 점이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입니다. 여기서 다는 모든 것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다 하실 수 있다는 의미 속에 담겨는 있는 것은 부자가 그 재물에 마음을 두고 재물을 위해서 살며 그것을 삶의 가장 우선 순위와 절대적인 가치로 두고 사는 대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그가 소유하여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삶의 가장 우선 순위와 삶의 목적과 절대적 가치를 두는 모든 자세와 태도와 마음을 바꾸셔서 그로 하여금 더 큰 하나님의 영광과 뜻에 가치를 두고 살도록 변화시켜 전 삶이 새롭게 되도록 하시는 그 모든 일들을 하실 수 있다는 의밉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세속에 물들고 찌든 자들을 불러 자신의 거룩한 자녀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 하나님의 거룩성의 욕구를 부어 주심으로 저들로 하여금 죄를 싫어하며 미워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죄와 더불어 동거하며 사는 것을 역겨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것인가를 소망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열망하도록 그래서 삶의 모습이 바뀌도록 하시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요한 1 5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for everyone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even our faith.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그분이 신자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며 이 일을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말은 내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다 해주신 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며 말씀으로 이끄시는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머뭇거리고 싶을 때마다 주저 앉고 싶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영적 침체와 피로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고 계시며 말씀으로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힘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힘을 내십시오. 전능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돕고 계시며 실패할 수 없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수
1217 로마서 강해 239강 신자가 본받지 말아야 할 것과 변화를 받아야 할 것 로마서 12장 2절 2026.05.06 837
» 주일말씀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의미 2026.05.06 952
1215 로마서 강해 238강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할 우리 몸 로마서 12장 1절 2026.04.28 2203
1214 주일말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랑하는 믿음 2026.04.28 2765
1213 로마서 강해 237강 새로운 유의 예배 로마서 12장 1절 2026.04.22 3607
1212 주일말씀 누가 우리의 인생을 채우는가 2026.04.22 4738
1211 로마서 강해 236강 참된 성화의 특징들 로마서 12장 1절 2026.04.13 4416
1210 주일말씀 부자 청년의 문제 2026.04.13 5844
1209 로마서 강해 235강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이유 로마서 12장 1절 2026.04.08 5343
1208 주일말씀 부활을 통하여 무엇이 입증되는가 2026.04.08 6476
1207 로마서 강해 234강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이유 로마서 11장 34-36절 2026.03.31 6097
1206 주일말씀 나의 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 2026.03.31 7975
1205 로마서 강해 232강 Doxology 송영 로마서 11장 33절 2026.03.17 8258
1204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 2026.03.17 8132
1203 주일말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 2026.03.17 1122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2 Next
/ 82

차타누가 열린교회 CHATTANOOGA YEOLIN PRESBYTERIAN CHURCH
1622 HICKORY VALLEY RD. CHATTANOOGA, TN 37421
담임 : 박경호 목사 Ph : 423-645-7910 Email : pkrain1@gmail.com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