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6Krxulu29wQ
지난 주에 우리는 야고보서 1장 19절의
말씀에 대하여 듣기는 속히하라 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을 보면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야고보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좋은 인격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공감 능력을 가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사람이 되거나, 혹은 많은 말을 하여 지나치게 가벼운 사람이 되지 말며 성내지 않아서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주는 사람이 되라는 처세술로서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착한 사람을 만드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가 하나님께 나아와 그가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중에는 자신을 스스로 속여서 듣는 일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듣는 일에 자신을
속이는 방법은 잘못 듣는 것으로 자기 입장에서 듣는 것이며, 자기 의견 대로 들으며,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가지고 듣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죽으리라 하는데 죽을 수도 있을지 몰라 로 듣고 진멸하라는데 내 생각 대로
행하며 나는 들은 대로 순종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듣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대로
듣고, 자신의 판단대로 듣게 됩니다. 문제는 그가 결국에
받아 들에게 되는 결과는 자신이 이해한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입니다. 바르게 듣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두번째의 내용과 세번째의 내용에
대하여 입니다. 말하기는 더디 하라 라는 것과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합니다. 더디 하라 라는 단어는 느린, 둔한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말은 단순히 행동이나 속도가 꾸물거리는 것을 뜻하기보다,
생각과 판단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멈추고 지체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감정이나 본능이 이끄는 대로 말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직역 하게 되면 "말하는 방향을 향해서는 철저히 속도를 늦춘 상태가 되어라"입니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말의 욕구를 의지적으로 통제하고
제어하는 상태를 지속하라는 문법적 강제성을 띱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 자신을 자랑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인 또한
칭찬받고자 하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욕구에도
선한 욕구가 있고 죄된 욕구가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9절을 보면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whatever other command there may be, are summed up in this on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들은 십계명들의 계명들입니다. 여기서 탐내지 말라는 단어는 에피뒤메오 라는 단어입니다. 탐심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로 금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누가복음 22장 15절을 보면 [눅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And he said to them, "I have eagerly
desired to eat this Passover with you before I suffer.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단어가 하나는 명사로 하나는 동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둘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들 입니다. 원하고 원하였노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단어들은 앞서 우리가 살펴본 로마서 13장 9절에서 탐심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이 단어가 금지되어야
할 탐심으로 말씀 되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탐심이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이 욕망, 욕구, 원함, 바람이라는 것이 죄 없으신 예수님을 통하여 표출될 때에 이는
선한 욕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타락한 인간에 의해서 표출 될 때에 이는 죄된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시에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을 소망하며 바라는 선한 욕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 없었던 인간은 이 선한 욕구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죄된 탐욕으로 변질시켰으며, 그로 인하여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모든 아담의 후손은 타락한
욕구에 이끌려 살게 된 것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상태에서 깨끗하고 선한 양심으로 중생을 통하여
새롭게 하심을 입었지만 여전히 죄의 오염으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은 말에 있어서 말하기를 더디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야고보서
1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Those who
consider themselves religious and yet do not keep a tight rein on their tongues
deceive themselves, and their religion is worthless.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종교적인 열심이 뛰어나도 언어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경건은 완전히 무가치한
헛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신앙의 성숙도는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입술의 제어력으로 증명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재갈 물리다 라는 말은 이는 어쩌다 한두 번 말을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자기 혀를
제어하고 감시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헛것이 된다는 것은 결실이 없는,
속이 텅 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혀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의 예배, 봉사,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3장 8-9절을 보면 [약
3:8-9]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but no human being can tame
the tongue. It is a restless evil, full of deadly poison. With the tongue we
praise our Lord and Father, and with it we curse human beings, who have been
made in God's likeness. 야고보는 혀에 대하여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혀는 쉬지 않는 악이며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합니다. 길들일 수 없는 혀, 즉 말에 대하여 그럼 포기하라는 것인가 에
대하여 야고보는 말하기를 더디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 대하여
다시 야고보서 1장 19절을 보면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말의 욕구를 의지적으로 통제하고 제어하는 상태를 지속하라는 것으로
단순히 "말수 적은 사람이 되라"는 세상의
처세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생각의 과정이며, 행동의
과정인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왜 그는
그렇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의 과정은 듣기를 속히 함으로 시작이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들으며, 그 말씀에 대하여 바르게 반응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말하기를 더디 하는 자들입니다. 말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듣기는 속히 하라 다음으로 나오는 이유는 사람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말을 쏟아내면, 대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본능, 내 감정, 내 판단이 먼저 나가게 되는데 그리스도인은 말하기를 더디함으로
내 생각과 감정이 여과 없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입술에 '브레이크'를
밟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과 판단의 과정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행동이 절제되고 온전하여
지도록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4장
11을 보면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If anyone speaks, they should do
so as one who speaks the very words of God. If anyone serves, they should do so
with the strength God provides, so that in all things God may be praised through
Jesus Christ. To him be the glory and the power for ever and ever. Amen.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합니다. 여기
말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이라는 것은 모든 말하고자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자신이 받은 은사를 따라 가르치는 것이나 위로나 권면을 할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때에 그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처럼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흉내나 시늉 마치 ~인
것처럼 연기하라는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 본질과 실제에 부합하게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실제적인 두려움과 책임감을 책임지라는 것이며, 네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을 펼치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너를 통해
직접 선포하시는 엄중한 말씀처럼 말하라 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말하는 자가 무엇을
조심하여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말하는 자는 은연중에 자신의 영향력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사람들은 말의 권위를 자신에게서 가져오려고 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베드로는 이를 경계한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논리를 멈추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드러나게 하라는
의도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로 내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잘해서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의 말을 들으니 정말 하나님을 만난 것 같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는 것이 이 말씀의 최종 목적인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에서 말이 가지는 의미가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적 대화 는 그것과 달라야 되는가 하는 것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할 때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말하며, 하나님께 책임지는 태도로 말하며, 하나님의 대변자처럼 두렵게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