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XUDWIsbmP2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느혜미야 8장 10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은 어디로부터
인가 하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삶의 근거나 삶의 목적에 대하여도 말씀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느혜미야 8장 10절을 보면 [느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Nehemiah said, "Go and enjoy choice food and sweet
drinks, and send some to thos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day is holy to
our Lord. Do not grieve,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이 말씀은 느혜미야가 백성들에게 한 말인데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고 하며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합니다. 느혜미야의 말을 정리하면 너희는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날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느혜미야는
왜 이러한 말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서 먹고 마시라는 것은 이들이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이날은 성일 즉 거룩한 날이라고 합니다. 왜
백성들은 근심하였는가 하는 것과 더불어서 그들에게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왜 느혜미야는 이러한 말을 하고 있으며, 이날은 무슨 날이길래 백성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근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느혜미야서의 배경과 8장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잠깐 역사적인 부분을 설명하자면 당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B.C.
586) 약 70년의 포로 생활을 거친 후, 세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1차 귀환은 스룹바벨이 이끌었으며 이들은 무너진 성전을 먼저
지었습니다. 2차 귀환은 학사 에스라가 이끌었으며 이들은 영적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3차 귀환은 느헤미야가 이끌었으며 이는 본문의 배경이 되는 B.C. 444년으로
총독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단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기적으로 재건했습니다. 성벽이 완공되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산발랏, 도비야 같은 주변 이방 세력들에게 끊임없는 살해 위협과 조롱을 받으며 극도의 불안과 영적 스트레스 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은 바로 이 성벽 재건이라는 외적인
대업을 마친 직후인 유대 종교력 7월 1일, 나팔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외부적인 방어벽인 성벽을 세웠으니, 이제는 내부적인 방어벽인 신앙을 세워야 하는 영적 타이밍이었습니다. 성벽이 완공되자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요구하는데 느혜미야 8장 1절을 보면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all the people came together as one in the square before
the Water Gate. They told Ezra the teacher of the Law to bring out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hich the Lord had commanded for Israel. 백성들은 새벽부터 총 세 시간 넘게 서서 에스라가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라를 잃고 방황했던 암흑 같은 세월 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이자
생명줄이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폭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과 함께 율법을
낭독하고 그 뜻을 백성들에게 해석해 주자 광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느혜미야 8장 8-9절을 보면 [느 8:8-9]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They
read from the Book of the Law of God, making it clear and giving the meaning so
that the people understood what was being read. For all the people had been weeping as they
listened to the words of the Law. 백성들은 말씀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들과 조상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범죄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자신들의 비참한 영적 실상이 폭로되자, 가슴을 치며 슬퍼하고 통곡한
것입니다. 이때 총독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가 울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 제동을
걸며 선포한 말이 바로 본문입니다. 다시 느혜미야 8장 10절을 보면 [느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Nehemiah said, "Go and enjoy choice food and sweet
drinks, and send some to thos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day is holy to
our Lord. Do not grieve,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글 성경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은 주님의 그 기쁨이 너희의 힘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약간의 뉘앙스가 다릅니다. 한글 성경은 여호와로 인하여 즉 여호와에 의해서 또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라고 번역하여 하나님이 기쁨을 원인이자 이유로 해석하였습니다. 반면에 영어 성경은 여호와의 기쁨
이라고 번역을 해서 하나님이 소유한 기쁨이나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이라는 의미로 읽혀지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번역이 약간씩 다르고 의미가 다른 이유는 히브리어 자체가 가지는
문법적 다름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기뻐하라 라는 말을 두 가지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주님의 기쁨이라고 표현함으로 주님이 소유하신 기쁨이 우리의 힘이다
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본연의 기쁨,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스스로 소유하고 계신 신성한 기쁨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와 우리의 힘이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짜내는 기쁨은 환경에 따라 바닥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낙심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갖고 계신
기쁨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을 보면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the Mighty Warrior who saves.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in his love he will no longer rebuke you, but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하나님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주님의
마음에 가득 찬 그 거대한 기쁨의 에너지가 성령을 통해 낙심한 백성들에게 전이될 때, 그것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초월적인 힘이 된다는 해석입니다. 이 말씀에서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이 서로 번역을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한글 성경은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라고 번역하였고 영어 성경은 하나님께서 너를 그의 사랑 안에서 더 이상 꾸짖지 않으신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NIV 성경을 번역하였던 이들이 칠십인역의
번역을 따라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하였고, 한글 성경은 맛소라 사본을 참고 하여 번역함으로
이러한 번역을 하였습니다. NIV의 번역의 의미는 스바냐 1-2장까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에 대하여 이제 더 이상 너희를 꾸짖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한글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의 너를 잠잠히 사랑한다는 번역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잠잠히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인지, 참는다는 말인지,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인지, 조용히 사랑하신다는 말인지 이해하기 난해
합니다. 또한 원어적 의미도 잠잠히 라는 의미는 조용하게 하다 라는 뜻으로 직역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를 그의 사랑에 의해서 잠잠하게 하신다 라는 뜻이 훨씬 더 낫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너를 잠잠이
하게 하며, 조용하게 하신다는 뜻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안식을 얻게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되어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소유하신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상황에서 두려워 떨지 않게 하시고 평안함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느혜미야 8장 10절을 보면 [느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Nehemiah said, "Go and enjoy choice food and sweet
drinks, and send some to thos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day is holy to
our Lord. Do not grieve,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두번째로
한글 성경의 번역은 "여호와로 인하여 라고 할 때에 이는 여호와를 목적으로 삼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삶의 조건이나
환경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기쁨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힘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현실과 자신들의 죄 때문에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경은 눈앞의 비참한 상황을 보지 말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존재 자체'를 바라보며 의지적으로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대상인 하나님을 기쁨의 근거로 삼을 때,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영적 힘이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해석을 모두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 영혼의 기쁨으로 삼을 때, 우리 안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이 소유하신 그분의 신성한 기쁨이 성령을 통해 강물처럼 우리 안에 흘러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기쁨이 너희의 힘이다"라는 말씀은, "너희의 연약함에 갇히지 말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의 사이클 안으로 기꺼이 뛰어들라"는
거룩한 초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있어서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Take delight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원어적인 뉘앙스로 여기서 '기뻐하라'는 '하나님 안에서
부드러워지다, 완전한 만족을 누리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나의 가장 큰 즐거움과 보상으로 삼을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게 되어 결국 가장 선한 소원들이 삶 속에 이루어지게 된다는 영적 순리를 말합니다.
하바국 3장 17-18절을 보면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하바국 선지자는
나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생의 모든 소유와 눈에
보이는 성과 즉 무화과 열매, 포도나무 열매, 감람 나무
열매나 밭에 먹을 것이 없어도 그리고 우리에 양과 외양간에 소가 전부 사라진 극한의 결핍 속에서도 나는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환경이 주는 기쁨은 환경과 함께 사라지지만,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며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존재 자체는 우리의 기쁨이 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 속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자 영혼이 기능하는 정상적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이는 인간이 세상의 물질이나 성취가 아닌,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될 때만 완벽한 안식과 만족을 누리도록 설계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창조 목적에 가장 부합하게 반응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둘째로는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열망하는 '예배 공장'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필연적으로 돈, 성공, 사람, 쾌락 등 세상의 다른 것들을 기뻐하고 갈망하게 됩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강력히 명령하는 것은, 세상의 썩어질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겨 파멸하지 않도록 우리 영혼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 조치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동기(Motivation)이
있다는 사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기뻐하는 척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결정적인 동기는 의무감이나 율법적인 강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그분의 성품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구원의 은혜는 우리로 하나님을 기뻐하게 만듭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자녀 삼아 주신 사랑이 가장 큰 동기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희생적 사랑을 깨달은 영혼은 자연스럽게 감격하며 그분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성품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뻐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선물)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지신 선하심, 신실하심, 인자하심, 거룩하심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
매료됩니다. 마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웅장한 대자연을 볼 때 조건 없이 감탄이 터져 나오듯,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아 아는 것 자체가 기쁨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흥분해 눈물을 흘리거나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Happiness)'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심오한 영적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건강, 물질, 성공(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선물)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짜
기쁨은 선물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하나님의 얼굴과 존재)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내 삶의 '가치 서열 1위'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를 기뻐한다는 것은 그것을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가치(가족, 커리어, 재물)보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분으로 인정하고, 그분으로 인해 내 영혼의 배부름을 삼겠다는 의지적이고 전인격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