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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com/live/rsJKwavYrdY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시대라고 할 때에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이 종말 때가 아니며 아직 그런 징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성경이 가리키는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3-4절을 보면 [벧후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Above all, you must understand that in the last days scoffers will come, scoffing and following their own evil desires. They will say, "Where is this 'coming' he promised? Ever since our ancestors died, everything goes on as it has since the beginning of creation." 베드로는 먼저 이것을 알라고 합니다. 알라는 말은 알고 있으며,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말고 그러할 것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하는가 하면,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세라고 할 때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먼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세란 말의 뜻은 세상의 마지막으로 종말을 의미하지만 베드로는 먼 미래 몇 천년이 지난 후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가 이미 말세이며, 지속적으로 말세의 때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로 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베드로 당시에 조롱하는 자들이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조롱의 내용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는가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지금도 그냥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사실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 약속하셨지만 아직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으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지금도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재림하신 다는 약속이 취소되거나, 또는 오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고 있을 뿐 언젠가 곧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것을 믿지 않는 자들은 계속해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살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주님의 재림은 없다고 비웃으며 살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을 베드로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가르침에 대하여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말세의 의미는 먼 미래의 때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 이후로부터 말세는 시작되었고 종말은 시작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오시는 때에 세상은 종말을 맞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종말은 시작된 것이며, 우리는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무뎌지고 긴장감이 사라져 가며, 만물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와 같이 여전히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심과 같이 우리는 지금 말세를 살고 있으며, 주님이 곧 오신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언제든 준비된 믿음과 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매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말의 때를 사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구원의 근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확실한 근거를 주기 위하여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것이 무엇이며,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염려 없고 두려움 없는 확신이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가지고 있는 개념에 대하여 먼저 살펴본 후에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떻게 가지게 되는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그 근거로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백하는 것은 내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실례로 사도행전 1631절을 보면 [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you and your household." 이 말씀을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묻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합니다.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 이외에도 주님께서도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지극히 당연하고 구원에 대한 상식과도 같은 말씀들입니다. 나는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가? 라는 질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답은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맞는 대답이며,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인 것은 변함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할 때에 그것이 내가 믿는 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결과에 이르게 하는 이유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믿는 다는 나의 믿음의 행위 자체가 효력이 있어서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믿는 다는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믿으라고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믿음은 주어져 믿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절을 보면 [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fixing our eyes on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 of faith. For the joy set before him he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여기에 믿음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에 대하여 첫째는 믿음의 주라는 것이며 둘째는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 라는 단어는 창시자 라는 뜻이며, 또한 저자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주님은 믿음의 창시자 이자 저자 이십니다. 또한 주님은 믿음의 온전하게 하시는 이 즉 완성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주님이 믿음의 주인이시며, 창시자 이시며, 원저자 이시며, 완성자 이시기에 우리가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믿는다고 할 때에 이 믿음은 내 마음의 행위로 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창시자이자 저자이시며 완성자 이신 주님으로부터 주어져 믿어지게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내게 믿음을 주심으로 내가 구원을 얻게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내게 믿음을 주신다는 것과 내게 주어진 믿음으로 내가 믿게 되는 것 그것으로 나의 구원은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또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이 내게 주어진 믿음을 통하여 내가 믿는 것으로 구원함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과는 차이가 있는데 구원은 나에게 믿음을 주시는 주님과 나와 별개로 단지 믿음이라는 것으로 만 연결되어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래전에 구원이 무엇입니까? 라는 묻는 말에 십원에서 일원을 빼면 구원입니다 라는 농담들을 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내가 받는 어떤 것이며, 내가 소유하는 어떤 것으로 여기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이란 단지 내가 소유하는 어떤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이요, 거하는 것이며,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의 정확한 해석이며, 이해인데 요한복음 656절을 보면 [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remains in me, and I in them. 이 말씀은 주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으로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시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고 걸림이 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다는 말의 의미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분의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의 문맥 속에서 유대인들이 오해하며,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던 이유는 예수님의 삶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 영적인 일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믿는 다는 말의 영적 비유입니다. 즉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분에게 참여 하여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영적인 비유로 믿는다는 것이며, 그의 몸에 참여하여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믿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주님도 그들 안에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있는 것이며, 구원이란 바로 주님과 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단지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는 별개로 어떤 것을 얻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 있게 되며, 그분과 내가 연합함으로 인하여 내가 사망에서 구원을 얻으며, 심판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12절을 보면 [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did receive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즉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믿는 다는 것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집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에 대한 설명으로 말씀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는 자가 바로 영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영접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해설해 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과 연합함이 없이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는 이유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 안에 모시지 않고 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영접하여 그분이 그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까? 첫째는 구원이란 다른 의미에서 영생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방법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는 스스로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영생 할 수 있는 이유는 홀로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합할 때입니다. 디모데전서 117절을 보면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Now to the King eternal, immortal, invisible, the only God, be honor and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이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되며, 그분과 연합함으로 인하여 모든 죄에 대한 진노와 우리가 행한 모든 불법에서 사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확실성과 불변성을 확증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구원의 조건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끊임없는 실수와 잘못으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리며, 놓쳐버리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은 진실하시며, 변함없으시며, 사랑이 충만하신 자신의 아들을 우리 안에 두심으로 인하여 우리로 하여금 변함 없는 구원의 확신 속에서 즐거워하며, 감사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구원이 주님과의 연합인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목적에 부합하게 살게 하시려는 구원의 성취를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now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또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연합되어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방종하며, 방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누가 사는 것입니까?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살지만 이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바로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바로 주님과 연합을 의미하며,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을 믿으며, 그분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며, 내가 구원 받았습니다 의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의 확실성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라고 합니다. 단지 그리스도와 상관 없이 구원을 받는 방식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그분과 연합한 자가 되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삶의 방식과 방법으로 삽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전 것은 지나간 것이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열린 것입니다.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이시며, 내 삶은 그분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받은 자의 삶이며, 구원의 참된 의미이며, 우리가 구원을 확신하는 이유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나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으며, 나는 버림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으며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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