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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Ew1SIjePZf8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예고된 심각한 문제이지만 거론하고 싶지 않거나 또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문제입니다. 죽음이란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기피 대상이 되는데 그것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 그 이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분명하게 모르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죽음이 멀리 있을 때에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공포심 같은 것을 느끼지 않지만, 죽음이 자신의 주변 가까이에 이를 때에 더욱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심리학에서 공포 관리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 커서 평소에는 이 공포를 억누르며 산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억누르는 방법은 공포의 강도에 따라 중심 방어와 말단 방어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중심 방어는 죽음의 공포가 강할 때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없애려는 것으로 단순히 억압하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자신에겐 먼 미래의 일이라는 등 합리화로 애써 무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말단 방어는 무의식적인 죽음에 관한 생각이 의식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기능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말단 방어를 사용한 사람은 자신의 불멸, 장수를 위해 술을 줄이는 반면 중심 방어를 사용한 사람은 죽음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술을 더 마신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암시하는 자극의 공격을 매일 받으면서도 그런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죽음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호흡하는 생물에 운명처럼 덧입혀진 두려움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이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즐겁거나 가벼운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죽음, 특히 신자에게 있어서의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들이 성경을 좀더 자세히 이해하여 죽음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지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확산 시키며 이것을 기회로 하여 삶의 태도와 방법과 방식을 잘못되게 하는 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죽음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은 증언에 대하여 입니다.

   우선 생각할 것은 인간은 왜 죽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이 죽는 다는 것의 원인을 살펴보면 병이 들거나, 불의의 사고나, 늙어서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나 생명이 있는 것은 그 생명이 다하면 죽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하여 계속해서 살고 있는 사람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에 대하여 들은 적도 없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살았다 해도 모두가 다 죽음을 피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생명이 있는 것들이 죽었 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듣고 살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 전제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란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인간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라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불신자 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들 또한 동일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라는 전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이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이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종말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경도 이러한 생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 조차도 죽음은 인간의 본질에 속한 것이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본문은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을 보면 [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Just as people are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이 구절은 마치 죽음이 인간 본질에 속한 것인 양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일부로써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인간의 본질에 속한 창조의 일부가 아닙니다.

    먼저 이에 대한 몇 가지 반론에 대하여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첫째로는 만약 죽음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이며, 죽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종말이라면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죽음이 인간 창조의 일부이면 인간들이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인데, 그들로 죽지 않게 하시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를 부인하는 것이며, 인간 창조가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10절을 보면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그는 사망을 폐하셨다고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 즉 죽음을 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즉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주신 것입니다. 만약 죽음이 인간 창조의 일부분이라면 이렇게 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죽음이 인간 창조의 본질에 속한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라는 점에 대하여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을 보면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But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잠자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 즉 부활은 모든 죽음에 이른 자들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한 시작이며, 예표이며, 증거로서 보여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죽음이 당연한 생명의 귀결이라면 이렇게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들에게 죽음에서 부활할 것을 확실하며, 명확한 증거로 나타내시고 보이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성경은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통하여 죽음은 인간 창조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이나는 것이 원래의 창조의 의도였다면 왜 굳이 모든 인간들을 부활시키는 수고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9절을 보면 [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and come out-those who have done what is good will rise to live, and those who have done what is evil will rise to be condemned. 여기에 표현된 두 부류는 모든 인간들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나 악한 일을 행한 자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다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비록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그러나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나는 것이 다를 뿐이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말씀을 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며 공포스럽게 하는 죽음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본질적 요소가 아닌 것이며, 이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인간 창조 후에 인간에게 본질적 요소가 된 외부에서 들어온 악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후에 인간에게 들어와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악한 것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가 아니라 후에 인간에게 들어와 본질적 요소가 된 것이며 그 중에 가장 악한 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을 향한 선하신 목적의 일부분이 아니라면 죽음은 어떻게 인간의 본질적 요소가 되어 버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7절을 보면 [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For if, by the trespass of the one man, death reigned through that one man, how much more will those who receive God's abundant provision of grace and of the gift of righteousness reign in life through the one man, Jesus Christ! 사망이 인간들 위에 왕 노릇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그의 후손 즉 인간들에게 왕 노릇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사망이 이제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며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들 가운데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23절을 보면 [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죄의 대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죄를 지은 자들이 그 지은 죄에 대한 책임으로 지불해야할 값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들어와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어서 그 누구도 죽음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며 우리가 이해하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불행과 비참함에 이르게 한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216-17절을 보면 [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from it you will certainly die." 이 구절은 죄와 사망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허락하신 것은 무엇이고 금지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즉 마음껏 원하는 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가 아주 비참하고 처참해서 너는 영원히 불행해 질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죽음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이 경고의 반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으면 인간은 죽음이 지배하지 않는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질려 쫓겨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17절에서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은 분명히 또는 확실하게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에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어서 인간은 두 개의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네가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육체적으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319절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 그 경고의 형벌로써 죽음이 인간 본질의 요소로 외부로부터 들어오게 됨을 보게 됩니다. [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since from it you were taken;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본래 흙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육체가 죽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이 인간의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이 말은 단순한 육체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도 있는 총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생명의 가장 심오한 의미는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망의 가장 심오한 의미는 하나님과 분리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1-2절을 보면 [ 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As for you,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지은 죄에 대가는 그와 그의 후손 모두가 죽음의 지배를 받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육체는 살아 있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성경이 허물과 죄를 죽었던 너희를 살렸다는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범죄한 인간들에게 두 가지면에서 생명을 주시기 위함 입니다. 첫째는 사망이 우리의 육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몸이 부활하게 하셔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의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분리된 관계를 다시 연합된 관계로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는 것과 그분과 교제를 나누게 하시는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능력의 결과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인간이 당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큰 죽음의 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불행이나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며, 거역하며, 반역으로 지은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의 문제로 하나님을 비난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죽음의 지배속에 들어가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우리의 모든 죄에 책임을 지심으로 우리를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육체 뿐만 아니라 죽었던 영을 다시 살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하심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다시금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죄의 지배가운데로 스스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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