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들 중에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우리 주님께서 마귀를 정복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도 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죄 된 사람들이
언제나 만나야 하는 원수 중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은 이에 대한 진술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을 보면 [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 구절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사람들을 상당히 당황하게 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는 찬탈자일 뿐 아무 세력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제어하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량
하셔다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이 마귀에게 속전을 지불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 중 일부가 우리 주님이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속전을 지불했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히브리서 2장 14절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의 말씀의 의미는 욥기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마귀는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의
세력만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 스스로는 아무런 권세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마귀에게 어떤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해 주실 뿐이며, 그
중 하나가 죽음의 영역을 지배하는 권세입니다. 이 때문에 다른 구절에서는 특히 고린도후서 4장 4절의 경우에는 이 세상의 신이라고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묘사됩니다. 사람이 마귀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죄를 범했을 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로부터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소유한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마귀의 지배, 마귀가 이미
살고 있는 영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귀 자신은 타락으로 인해 사망의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벧후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마귀는 사슬에 매여 잇는 타락한 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같은 개념입니다. 마귀는 타락하여 하나님의 생명 바깥에 있는 영역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이 영역을 사망의 영역이라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타락했을 때 그는 즉시 사망의 영역으로 떨어져 사망을 지배하는 사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단은 이 마지막 사망이 지배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이며 이것이 바로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갖고 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좀더 명확하게 설명하면 고린도전서 15장
56-57절을 보면 [고전 15:56-57]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구절은 사망을 정말로 끔찍한 것으로 만들고 쏘는 것을 그처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죄라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사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죄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에서 죄인이며, 이 사실이 사망을 끔찍한 것으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망은 단지 하나님의 생명 바깥에 있는 끝없는 영적 죽음의
상태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일생 동안 사망의 공포에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죄나
마귀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망이라는 생각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망이 원수이며, 무언가 끔찍하고 비참함과
불행 속에 얽어 매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에 또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우리는 마귀의 지배 아래 그의 권세 아래 있는 것입니다.
목회서신
2026.09.01 15:05
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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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회 서 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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