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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W7tx4Vuh3



성경은 우리가 보는 세상이 영원히 이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끝이 있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사라질 것이며,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를 성경은 세상의 끝 즉 종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에 대한 내용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곧 가고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말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된 것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들이 쉽게 전쟁을 일삼고 각처에 지진과 가뭄과 홍수가 끝이지 않으며, 환경은 파괴되고 오염되어 학자들은 지구의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기술 과학은 발달하여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언제 어디서 어떠한 기술로 인류가 멸망을 당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으며, 직업의 종말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으며, 그 때에 어떠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입니다. 종말의 때에 신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는 다가올 종말을 위해서 오늘 무엇을 함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말씀의 배경을 보면 마태복음 24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Jesus left the temple and was walking away when his disciples came up to him to call his attention to its buildings. "Do you see all these things?" he asked. "Truly I tell you, not one stone here will be left on another; every one will be thrown down."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켜서 주목시키기 위해서 예수께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자랑하고자 하는 그 성전 건물들을 가리키며 너희가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언은 제자들에게는 큰 충격과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성전을 자랑하려는데 오히려 그 모든 보이는 것들이 완전히 파괴되고 무너지리란 말을 듣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이들을 머쓱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떨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감히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43절을 보면 [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As Jesus was sitting on the Mount of Olives, the disciples came to him privately. "Tell us," they said, "when will this happen, and what will be the sign of your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age?" 라고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물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절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세 가지 입니다. 하나는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 가리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 건물들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지는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질문은 주의 임하심의 징조가 무엇인가? 하는 것과 세번째는 세상 끝이 될 징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 징조는 주의 임하시는 것과 세상 끝에 일어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언제 성전 건물들이 파괴될 것인가와 주님이 오시고 세상이 끝날 징조에 대한 물음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의 질문 속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종말이 무엇인가를 보게 되는데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다는 말에 이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는가 라고 묻습니다. 즉 성전이 언제 무너집니까? 그리고 다음에 따라 오는 것이 주님의 오심에 대한 징조와 세상 끝에 대한 징조를 묻습니다. 즉 이러한 질문은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이 곧 주님의 오심이며, 또한 세상의 종말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약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거처이자 온 우주의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제자들의 세계관에서 곧 우주의 종말은 세상 끝을 의미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는데 세상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오심이라고 할 때에 이는 주님의 재림이라는 파루시아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이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왕으로 등극하여 통치하시는 것을 의미하며, 구제적으로는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진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적 시각을 따르면 구약 선지자들은 메시아의 오심, 심판, 그리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마치 멀리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하나로 겹쳐 보이는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주님의 날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자들 역시 이 구약적 예언 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전 파괴와 메시아의 오심, 그리고 현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단번에 일어날 단일 사건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244절부터 36절까지 답변하십니다. 그러나 4절과 5절을 보면 [ 24: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Jesus answered: "Watch out that no one deceives you. For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the Messiah,' and will deceive many. 예수님의 답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예수님은 그냥 답만 던져 주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제자들의 질문을 교정하시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잘못된 질문일 때에 예수님께서는 답변 속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시며 고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느끼고 있는 종말에 대한 임박성에 대하여 수정하십니다. 세상의 끝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언제와 어떤 표징인가라는 호기심과 지식적 탐구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종말과 종말적 심판에 대한 지식이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는 정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영적 긴장감과 삶의 태도로 연결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시간과 시기에 집착하는 신앙은 시한부 종말론이나 헛된 정서적 불안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예수님은 질문의 방향을 영적 경성과 분별로 즉각 교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고 하십니다. 5절에서는 주의 해야 하는 이유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와서 자신이 그리스도라 하고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6절을 보면 [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You will hear of wars and rumors of wars, but see to it that you are not alarmed. Such things must happen, but the end is still to come. 난리와 소문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라고 합니다. 7절을 보면 [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There will be famines and earthquakes in various places. 라고 합니다. 마치 이러한 일들이 세상의 끝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세상 끝의 징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24: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All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이러한 무시 무시한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아직 끝이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것들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재난의 시작이라는 말이 세상 끝에 일어날 일들의 시작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앞의 내용과 반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재난의 시작이라 라는 것은 4-7절까지의 일들이 일어날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는 말은 고통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이 고통은 여인이 출산 할 때에 산통을 가리키는 말로 이제 산통이 막 시작되었으며 아직 아기가 나오려면 멀었다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나 미혹하려고 할 것이며 난리 즉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것이며 이것들이 두렵게 할 것이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들과 지진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재난의 시작 즉 산통은 점진성과 가중성을 가집니다. 임산부의 산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기가 짧아지고 강도가 세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재림 직전까지 세상의 환난과 미혹은 역사 속에서 점점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둘째로 이 산통은 분명한 목적성을 가집니다. 산통은 단순한 질병이나 상해로 인한 고통이 아닙니다.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품은 고통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종말의 환난은 단순한 멸망의 전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거룩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셋째로 이 산통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산통을 피할 수 없듯이, 죄로 오염된 현 세대가 끝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 진통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 9절부터는 14절까지는 이제 직접적으로 믿는 자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그 내용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 끝 날까지 교회와 성도가 역사 속에서 겪게 될 본격적인 환난과 시험, 그리고 그 속에서 수행해야 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Then you will be handed over to be persecuted and put to death, and you will be hated by all nations because of me.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살게 될 모든 신자들이 당하게 될 일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때에 신자들은 환난에 넘겨질 것이며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인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신자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신자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10절을 보면 [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At that time many will turn away from the faith and will betray and hate each other, 라고 합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집니다. 시험에 빠진 다는 말은 넘어진다는 뜻으로 죄에 빠진 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느 일정기간의 영적 침체를 말할 수도 있으나 아예 믿음의 공동체에서 떠나 신앙을 저버리는 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신앙을 포기하는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우리가 얼마나 신앙 생활하기 어려운 시대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가는 9절의 환난과 죽음 때문이며 민족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워하기 때문에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서로는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끼리 그렇게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잡아 준다는 말은 서로를 배반하여 권한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미워하다는 말은 서로를 몹시 싫어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몹시 싫어할 뿐만 아니라 증오까지도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서로를 배반합니다. 교회가 교회를 대적하고 다투며 싸움을 합니다. 서로 미워하며 증오하기 까지 하고 몹시 싫어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끼리 그렇게 하며 서로 살겠다고 서로를 핍박하며 서로를 고소하며 서로 싸웁니다. 한국에 주차장 문제로 교회가 교회를 고소하고 다투며 성도 문제로 싸우고 다툽니다. 한 건물에 여러 교회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싸웁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인사하지도 않습니다. 서로를 헐띁으며 비난합니다. 정말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회의 감을 느끼고 절망감을 느끼는 이유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에서 참된 신자됨의 모습들이 없어지고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자연스럽게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12절 말씀입니다. [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Because of the increase of wickedness, the love of most will grow cold, 종말의 때가 오기 전 신자들에게 일어날 위험스러운 일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것은 신자들 가운데 적은 자들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은 관계가 소원해지며 멀어져서 단절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사랑이 그 대상으로써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고 이웃입니다. 먼저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애정과 헌신이 식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말이 오기 전 사람들은 점점 식어져서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도 않고 구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식어져서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를 보면 예전의 열정이 식어져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자 했으며 전심으로 섬기던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몇 십리를 걸어가 예배를 드리던 헌신이 멀다고 귀찮다고 점점 등한시 되고 있으며 구겨진 돈을 다리미로 다려 하나님께 드렸던 정성이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무릎을 꿇고 드렸던 예배의 모습에서 어떠한 경외감도 없는 무표정하며 무관심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참석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눈 도장만 찍고 가는 자들로 바뀐 것은 정말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예배에 일찍 와서 누구보다 앞자리에 않아 기도로 준비하며 은혜를 사모함이 식어져 기도할 때 들어와 축도할 때 돌아가는 형식적인 예배 참석자들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식어져 가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른 다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가 더욱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식어진다는 의미는 저절로 차가워 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어서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식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뜨거워지지 않고 점점 차가워 지도록 찬 기운을 불어 넣어 뜨거움을 잃어 버리고 결국에는 차디찬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을 차게 만들도록 찬 기운을 불어 넣게 합니까? 예수님께서 불법이 성함이 그 차게 하는 기운이라고 합니다. 불법이라는 것은 법을 깨뜨리는 것이며 법을 어기며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법은 무엇입니까? 누가 만든 것을 깨뜨리며 법을 거스르며 대적한다는 것입니까? 여기서 가리키는 법은 하나님의 법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며 깨뜨리며 지키지 않고 무시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합니다. 성한다는 것은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불법이 증가하여 점점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사랑은 점점 여기서부터 불어오는 찬 기운에 사랑이 식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불어서 차가워지게 하는 이 불법의 증가는 어떻게 발생되는가 하는 부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불법이 증가하며 점점 불어나게 된다는 것은 삶의 스타일, 삶의 방법과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법과는 전혀 상관없어 지는 것인데 이것은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이 말하고 있는 자들은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신자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자들인 동시에 믿겠노라고 고백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그 법 없이 사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냉담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식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법을 어기면서도 거리낌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삶의 원리로 삶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절을 봅시다. 11절을 보면 [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1 and many false prophets will appear and deceive many people.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많이 라는 부사입니다. 많이 일어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출연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는 복음서에 계속 등장 할 뿐만 아니라 서신서에도 경고하고 있음을 봅니다. 거짓 선지자라는 말은 "신적 예언이라는 이름하에 거짓말을 해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들먹여 거짓말을 하며 속이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합니다. 형용사 많은이 함께 쓰여 단 한두 명의 예외적인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 수많은 거짓 가르치는 자들이 그룹을 이루어 집단적으로 출현할 것을 문법적으로 보여줍니다.

        11절에서 예수님께서 경고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일어남은 12절에서 말하고 있는 불법의 성함과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짐과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절에서 불법이 성한다는 말에서 원문에 주어가 없습니다. 그 의미는 앞 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주어가 되는 것입니다. 즉 불법이 성행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거짓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왜곡함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불법을 자행하도록 조장할 뿐만 아니라 권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속아 불법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불법의 성행으로 말미암아 점점 사랑이 식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무엇이 참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교회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교회 지도자라는 자들의 모습 속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교회가 너무나 세상적이 되고 세속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사업을 하듯이 교회가 사업을 키우듯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을 어겨도 되고 사람을 속여도 됩니다. 거짓말과 불의를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런 것쯤은 괜찮다고 합니다. 교회 예배당 건축을 위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너무나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쓸데 없는 짓을 하지 말고 큰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은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 아래서 성도들은 불법의 만연함을 보며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던지 혹은 동참하여 함께 죄악을 즐거워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 없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이 식어지고 자신의 자아와 욕심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많은 이라는 부사를 계속 사용하시는 것을 주의 깊게 들으셔야 합니다. 종말의 때가 이르기 전에 일어날 일들이며 이것은 종말에 대한 사인이 아닙니다. 그전에 있을 일들이 오늘 우리의 삶에 있는 것입니다. 점점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옆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던 사람들이 서로 싸우며 다투며 물고 뜯고 하며 심하게 미워하며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를 고발하며 넘겨주며 시기와 질투로 싸울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미혹될 것입니다. 신앙 생활 잘한다고 믿었던 자들이 열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자들이 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식어지고 차가워지고 냉담해 질 것이며 불법을 행하며 즐거워하며 행복해 하며 그 안에서 자유롭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탐욕과 욕심이 그의 마음에 가득하여 그것으로 만족을 삼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섬기며 자신이 주인 되어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신앙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 없이 말입니다. 그 안에는 참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13절입니다. [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but the one who stands firm to the end will be saved.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견디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참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주님을 의지하며 진리를 경험한 자는 끝까지 견딜 것입니다. 성도가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키심과 은혜의 역사가 성도의 삶 속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순종과 인내라는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주변 사람들이 무너져 가도 함께 신앙 생활 하던 자들이 식어져 가도 그는 끝까지 그 사랑을 놓지 않을 것이며 그 열정이 식지 않게 할 것입니다. 어떠한 불의나 불법에도 그는 굴하지 않으며 실망하지 않을 것이며 헛된 소리와 이야기에 눈을 돌리지 않고 믿음을 지켜낼 것입니다. 견디다는 의미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누가 주님 앞에 남아 있을 것인가 그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변이 어떠하든지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누가 뭐라 하든지 주님 안에 남아 있으십시오.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으며 사람들이 떠나 가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끝까지 머물러 여러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부디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끝까지 견디게 하시기를 구하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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