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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1YU3Utoviac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 따라서 교회로서 모여서 열린 교회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함께 된 지가 15년입니다. 15년 동안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의 교회 됨을 유지하며 그런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부단히 달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그럼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우리는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가고 있는가, 교회는 어때야 되는가' 하는 부분에서 오늘 말씀을 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먼저 여러분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인데요, 여러분은 교회의 본질, 참된 교회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이런 것들이 교회야"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교회라고 하면 십자가가 달려 있고 기독교의 상징물들이 붙어 있는 것들을 대부분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있으면 교회입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있지만 교회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어디가 있습니까? 십자가가 있지만, 십자가를 믿고 있다고 하지만, 십자가를 말하고 있지만 교회가 아닌 곳,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이 교회들 또한 십자가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가까이에 안식교가 있지만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교회입니까? 참된 교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 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 말씀과 말씀의 그 의미와 목적들에서 벗어난 상태로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십자가를 달고 있고 교회 건물 바깥에 십자가라는 것을 내놓았다고 해서 교회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보이고 걸려 있는 것만으로 교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교회의 '표지'라고 합니다. 교회의 표지는 무엇인가, 참된 특징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에요.

오늘날 교회의 특징들을 보면 사람들이 잘못 오도하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교회가 대중화되는 것들, 참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교회는 대중성을 가져야 되는 것이 현대 교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 대중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뭐든지, 누구든지, 모두가 다 참여하며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것, 그것이 교회의 특징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교회는 그런가 하는 부분에서 여러분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교회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의 특징을 생각할 때 교회는 대중성, 즉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차원에서 교회는 대중성을 갖습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복음은 전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부르신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름받은 모두가 다 교회가 되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대중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는 부르심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의 뜻은 '부르심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중적이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면 교회가 점점 대중화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대중화되는 것과 보편적인 교회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대중화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고 거리낌 없이 아무나 다 받아들이고 모두가 다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화 전략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냐면 교회의 문턱을 낮춰서 아무나 다 교회에 편하게 올 수 있도록, 거리낌 없이 교회에 올 수 있는 방책들과 제도들과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대중화 전략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럼 교회는 그래도 되는가 하는 부분이에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중요한 내용은 교회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참된 특성에 대해 살펴볼 것인데,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이 대중화예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오게 만드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세미나를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교회를 오게 만들까 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현대의 목회 전략입니다.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부분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교회가 보편적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가 대중적이라는 것은 문턱을 낮추는 것인데, 거부감 없이 교회에 올 수 있는 방법과 드나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그들이 싫어하는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옥이란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형벌이나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들이 종교나 교회에 들어와서 받기를 원하는 것은 평안과 위로입니다. 위로를 받기 원하고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 육신적인 모든 상황과 여건에서 문제 해결을 원하기 위해서 오게 됩니다.

대중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기 위한 전략,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중화 전략 속에서 교회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교회가 왜 이런 전략에 빠지게 되냐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매 주일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여기서 '거룩한 공회'라는 사도신경의 의미가 카톨릭, '보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보편이라는 것이 대중화와 같은가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인 교회를 믿기 때문에 교회는 대중적이 되어야 하는가로 치환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우리 교회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보편적이지만 대중적이지 않습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인종과 문화와 언어의 차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대중화 전략 속에서 죄 문제, 십자가의 피와 죽음, 심판이나 형벌,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마음에 위로를 주고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인 교회인가? 아닙니다. 보편이라는 말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편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열려 있지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모든 민족, 언어, 문화, 피부 색깔 예외 없이 하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사실 속에서 보편이라는 말을 씁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모두 하나의 복음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 속에서 하나라는 사실이 보편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교회는 하나의 복음을 믿는 자들, 한 분 그리스도 예수만을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비록 건물이라는 개념 속에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적인 교회 속에서 보편적인 교회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믿고, 아프리카에서 누군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면 그는 나와 교회입니다. 이것이 우주적인 교회이자 보편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대중적 교회는 보편적 교회가 아닙니다.   

다음으로 우리들은 예배당이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한번도 건물로 불려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7:38절을 보면 [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He was in the assembly in the wilderness, with the angel who spoke to him on Mount Sinai, and with our ancestors; and he received living words to pass on to us. 이 말씀은 스테반을 통하여 주신 것인데 그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광야 교회란 광야 교회란 이름을 가진 어떤 특정 건물을 가진 교회를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머물던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이나 집회를 의미합니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을 보면 교회 즉 에클레시아라고 번약된 모든 구약의 히브리어는 회중이나 집회를 의미하는 단어들입니다. 구약에서 교회는 어느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거나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늘 모임이나 집회를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교회가 어느 건물이나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은 신약에서도 동일합니다. 예로 사도행전 8:1을 보면 [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And Saul approved of their killing him. On that day a great persecution broke out against the church in Jerusalem, and all except the apostles were scattered throughout Judea and Samaria. 이 구절은 사울이 교회를 핍박할 때 벌어진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라는 말은 마치 예루살렘에 세워진 어떤 교회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교회에 큰 박해가 있다는 말은 여기서 교회라는 말이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이어 나오는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라는 말씀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성도들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에 등장하는 모든 교회들 조차도 그것이 어느 특정한 건물을 지칭해서 교회라고 부르지 않고 오직 복음을 통하여 구원함을 얻은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의 표지가 건물이나 외벽에 있는 십자가가 될 수 없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교회의 표지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성경 구절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한 계시록 182절을 봅시다. [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With a mighty voice he shouted: "'Fallen! Fallen is Babylon the Great!' She has become a dwelling for demons and a haunt for every impure spirit, a haunt for every unclean bird, a haunt for every unclean and detestable animal.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한 천사가 외치는 소리입니다. 그 천사는 힘찬 음성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무너졌다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칩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하나님의 거역하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 구절에서 바벨론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는 수식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종말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다른 구절을 봅시다. 요한 계시록 212절입니다. [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I saw the Holy City, the new Jerusalem, coming down out of heaven from God, prepared as a bride beautifully dressed for her husband. 본문은 요한이 본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 다음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단순히 건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라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부는 누구이며 신랑은 누구입니까? 성경에서 신랑과 신부를 비유로 설명하는 것은 성도와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또한 교회와 그리스도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구절에서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는 수식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요한 계시록 219-10절을 봅시다. [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천사가 요한에게 말합니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성령으로 요한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입니다. 21 2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이며 천사가 9절에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예루살렘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어떤 성입니까? 거룩한 성입니다. 2절에서도 새 예루살렘을 말할 때 거룩한 성이라고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 182절과 요한 계시록 212절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면 [ 18:2]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Fallen! Fallen is Babylon the Great!' [ 21: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I saw the Holy City, 이라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과 앞서 우리가 살펴본 세상을 상징하는 바벨론을 수식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구분이 가십니까? 새 예루살렘 즉 교회는 거룩한 성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즉 세상을 상징하는 것은 크다 라는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입니다. 이 구절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교회의 표지는 크다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많은 것이 좋은 것이며 잘하는 것이며 옳은 것이라 속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커지는 것이 좋은 교회 바른 교회 정상적인 교회라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한번도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나눈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좋은 교회의 표지로 또는 옳은 교회의 표지로 여긴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크다 많다는 것을 성경이 위협적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단기간에 폭발적 성장을 이룬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목회서신을 통하여 교회가 커지도록 독려하거나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일에 매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잘못된 자들을 내어 쫓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6절을 보면 [살후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we command you, brothers and sisters, to keep away from every believer who is idle and disruptive and does not live according to the teaching you received from us.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만약 교회가 외적으로 커지는 것 자체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외향적 성장이나 사람들의 많고 적음은 교회의 표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교회의 표지가 될 수 있습니까? 이미 우리는 교회의 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된 새 예루살렘은 무슨 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까? 거룩한 이라는 수식어 입니다. 교회가 교회됨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표식이자 특징은 거룩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느닷없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어떠한 다른 설명으로 온전한 관계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성경적 바른 관계의 출발점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할 때 뿐이기에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표지가 분명히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에베소서 525[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Husbands, love your wives, just as Christ loved the church and gave himself up for her 25절에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것 같아야 하는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행하신 것이 있는데 첫째는 교회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교회를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주셨던 것으로 타인에게 넘겨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죽으셨는가? 하는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26절과 27절에서 바울은 왜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셨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to make her holy, cleansing her by the washing with water through the word, and to present her to himself as a radiant church, without stain or wrinkle or any other blemish, but holy and blameless. 이는 이라는 말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라는 말입니다. 26절에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라고 하는데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한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그것은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외적 몸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압니다. 이것은 우리의 속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 이유가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사랑하셨고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또한 27절에서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몸을 주신 이유가 나오는데 세우시기 위해서 입니다. 세운다는 것은 넘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냥 일으키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자기 앞이란 말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세상에서 영광스럽기 위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놀랄만한 건물을 짓는 것이 세우는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영광스러운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에 선한 일을 해서 이름이 날리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움은 자기 앞에 즉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에게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영광이 아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이며 주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27절에서 주님이 자신 앞에 교회를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는 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26절도 동일하게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27절도 교회를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는 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두 구절을 종합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거룩함 때문에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셨고 그리고 자신의 몸을 주신 것입니다. 이 거룩함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교회는 어떻게 거룩해 지는 것입니까?

        거룩함이란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짐으로 교회는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으로 거룩해 진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3절을 보면 [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You are already clean because of the word I have spoken to you. 또한 요한복음 1717절을 보면 [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Sanctify them by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이 두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교회가 어떻게 거룩해 지는가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거룩해 지는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표지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이란 바른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점잖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 말씀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이 구별됨이라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됨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구별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겉모양이 다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과 처럼 아침이 되면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생활 패턴은 동일 합니다. 이것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 패턴을 하는 목적과 이유가 달라야 합니다. 왜 하는가 하는 것부터 달라야 합니다. 신자는 인생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한 생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삶의 내용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존재 목적에서 구별되어야 하고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주님이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신 교회입니다. 말씀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며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삶의 모습이 말씀과 동일해야 합니다. 바른 교회 거룩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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