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13-15
만일 네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우리가 눈을 흘길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는 사람을 수도 없이 죽였을 것이다."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내가 사람을 실제로 죽이지 않았어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무언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발의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감정적인 언어로 다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모습을 또 한번 보게 된다. 소발도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욥을 찾아
왔을텐데 결국 욥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서슴없이 그것도 감정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특히 욥의 입장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 약한 자의 입장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소발은 자신의 우월감과 의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좋은 의도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결국 나타나는것이 나의 의이고 상대를 판단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자리라면
그자리를 피해야겠다. 오히려 함께 하지 않은만 못한 것이니 말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이 완전하신데 반해 인간은 절대로
공의와 사랑이 완전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평형을 유지 할 수도 없다.
사랑을 위해 공의를 잊으며 공의를 행하기 위해 사랑에 대해
소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내세우면서 사랑을 잊고 있다.
대화를 위해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상대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대화가 아니라 논쟁이 되고만다. 소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말하면 겸손하게 받아야지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고 화를 내고 있는것 아닌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잊고 하나님의 공의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위대히심을 들어 욥을 난폭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뜻이 관철되야 한다는 고집과 상대를 은연중 무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말하는 것에 무조건 순복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소발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마저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해 무엇하랴?
지금 욥의 상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르는것이 아니라
당장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움으로 인해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것을 유감스럽게도 소발은 잘못 적용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오히려 상처를 주고 눈물 흘리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비록 상대가 잘못한다 생각이 들지라도 주의 말씀을 들고 나의 의를 나타내며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될것이다. 나보다 더 연약한 입장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참 조심스러운게 말이기에 약한 이들에게
대하여 조심하여야겠다. 특히 신앙이 약한 성도를 말씀안에서 돕고 양육할 때에
교회가 전통적인 틀 안에서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형식으로 억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인간의 편협한 생각으로 하나님이 진리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그래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범치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만일 네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우리가 눈을 흘길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는 사람을 수도 없이 죽였을 것이다."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내가 사람을 실제로 죽이지 않았어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무언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발의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감정적인 언어로 다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모습을 또 한번 보게 된다. 소발도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욥을 찾아
왔을텐데 결국 욥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서슴없이 그것도 감정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특히 욥의 입장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 약한 자의 입장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소발은 자신의 우월감과 의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좋은 의도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결국 나타나는것이 나의 의이고 상대를 판단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자리라면
그자리를 피해야겠다. 오히려 함께 하지 않은만 못한 것이니 말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이 완전하신데 반해 인간은 절대로
공의와 사랑이 완전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평형을 유지 할 수도 없다.
사랑을 위해 공의를 잊으며 공의를 행하기 위해 사랑에 대해
소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내세우면서 사랑을 잊고 있다.
대화를 위해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상대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대화가 아니라 논쟁이 되고만다. 소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말하면 겸손하게 받아야지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고 화를 내고 있는것 아닌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잊고 하나님의 공의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위대히심을 들어 욥을 난폭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뜻이 관철되야 한다는 고집과 상대를 은연중 무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말하는 것에 무조건 순복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소발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마저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해 무엇하랴?
지금 욥의 상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르는것이 아니라
당장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움으로 인해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것을 유감스럽게도 소발은 잘못 적용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오히려 상처를 주고 눈물 흘리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비록 상대가 잘못한다 생각이 들지라도 주의 말씀을 들고 나의 의를 나타내며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될것이다. 나보다 더 연약한 입장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참 조심스러운게 말이기에 약한 이들에게
대하여 조심하여야겠다. 특히 신앙이 약한 성도를 말씀안에서 돕고 양육할 때에
교회가 전통적인 틀 안에서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형식으로 억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인간의 편협한 생각으로 하나님이 진리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그래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범치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주님!
형제 자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특히 나도 모르게 주의 말씀으로
그리하였다면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누구든 그들의 상처를 주께서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늘 주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매 순간마다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형제 자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특히 나도 모르게 주의 말씀으로
그리하였다면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누구든 그들의 상처를 주께서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늘 주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매 순간마다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스려 주옵시길 간절히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