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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08.27 16:16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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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XEj2KVZDhKY


성경은 인간이 누구이며 왜 인간은 비참한 삶 속에 처하게 되었는가? 왜 인간은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가? 인간은 죽음 후에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가? 하는 인간과 그의 영혼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면 그는 분명히 그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그 목적 때문에 성경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배움으로 얻어지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왜 너는 성경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확신하는 일 안에 그 상황 안에 놓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을 보면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and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바울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능히라는 말이 뒤나미스라는 말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족함이 없이 충분하게 성취하고도 남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자 그것을 배우려고 애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이 없고 충분히 넘치고 온전케 하는 일들을 행하는데 신자를 지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며 성공을 얻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성경을 배우는 자들을 충분하고 넘치게 지혜를 얻게 하며 지혜를 소유하게 하는데 이 지혜를 통하여 신자의 구원은 온전하며 충만하며 확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반대로 신자가 심령이 약하거나 의심의 마음이 찾아오거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에서 마음이 멀어진다면 이것은 소유한 지혜가 희미해 지기 때문이며 지혜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는 성경을 통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은 결과요 가까이 하지 않은 결과이며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데 이르지 못한 결과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 말씀을 보면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But as for you, continue in what you have learned and have become convinced of, because you know those from whom you learned it,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합니다. 거한다는 말은 거주 하다 또는 머물다 라는 뜻이며, 현재 형으로 지속적으로 거주하라, 머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 어디에 머무는 것이며, 거주하는 것입니까? 두 경우가 있는데 첫째는 배우는 일에 머무는 것입니다. 배우는 일에 머문다는 것은 배우는 일을 계속하라, 계속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확신한 일에 라고 합니다. 즉 무엇인가 확신하고 있는 상태에 계속해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 둘은 문맥속에서 성경에 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 대한 내용에 대하여 계속해서 배우라,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확신함 속에 있으라 즉 의심을 품지 말고, 불신하지 말고 그것을 믿는 가운데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지 못한 것은 믿음의 약함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약함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배우고 확신하는데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확신하라는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의 배움은 확신으로 인도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배움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교육을 합니다. 그 교육은 배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며 성경을 가까이 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그러한 교육을 통과의례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배우는 습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확신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확신이란 100%의 신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확신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 안에 주시는 확신의 은혜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온전히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절부터 성경을 배움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우리의 유익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디모데후서 316절 보면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말은 풀어 해석하면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라는 의미로 성경의 원저자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가지는 무게는 왜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것만큼 확실하게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말에서 우리의 성경에 대한 자세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인간의 말로 이해하며 인간의 말로 받으려는 사상들이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는 말은 인간의 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폄하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자들의 자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또한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도덕적 지혜나 인격 고양의 지혜로 인식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좋은 책으로 인식하며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인생에 필요한 인격적 교훈을 주는 책으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안타까운 것은 세상이 성경을 보는 눈이 아니라 오늘날 신자가 성경을 보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읽고 삶의 위로를 얻기 위해서 읽고 인격 수양을 위해서 읽는 교양 서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경향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바쁜데 성경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한가하게 성경이나 읽을 시간이 나에겐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교양 서적이 되었고 인생의 교훈과 도덕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되었는가를 생각할 때 이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중생이나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화를 통한 점진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인 중생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의 현재적 구원인 성화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현재적 구원의 삶은 성경을 통하여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현재적 구원인 성화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신자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성경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바른 신앙의 회복과 신자로써의 삶의 회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신자의 현재적 구원은 온전케 되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자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떠난 모든 교회들은 다 세속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으며 세상에 속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500불을 주겠다는 교회, 교회에서 교인들을 불러 성공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강의를 하는 교회, 전도 왕에게 차를 선물하는 교회, 예수와 십자가와 죄에 대하여 금기시 하는 구도자 예배 등등 이 모든 행위는 성경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타락과 범죄함과 모든 악함의 유일한 답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써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희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진리입니다. 왜 성경만이 이 시대 교회들의 타락과 성도들의 불성실함에 대한 답인가? 하면 성경만이 신자의 삶에 유익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유익함이란 도움이 되며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유익이 되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무엇에 그렇습니까? 세상에서의 성공에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심리적인 면에서 안정에 도움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경이 어떻게 신자에게 도움이 되며 이익이 되는지 네 가지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 첫 번째 성경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것은 교훈입니다. 교훈이라는 것은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이 가르침이란 가르친다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신자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인데 이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디모데전서 110-11절을 봅시다. [딤전 1:10-11]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for the sexually immoral, for those practicing homosexuality, for slave traders and liars and perjurers-and for whatever else is contrary to the sound doctrine that conforms to the gospel concerning the glory of the blessed God, which he entrusted to me. 본문에서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음행, 남색, 사람을 탈취, 거짓말, 거짓 맹세등의 일을 하는 자는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른 교훈이란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의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11절에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을 쫓음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좇는다는 말은 따라서 또는 근거가 되어서 라는 뜻입니다. 교훈이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근거한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신자의 삶의 방향과 목적지를 가리키는 역할로 신자를 바르게 인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음행과 남색과 사람을 인신매매 하는 자들과 거짓말 하며 거짓 맹세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교훈 즉 성경이 우리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주는가 하면 이것과 다른 삶의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교훈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바른 교훈을 멸시하며 따르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성경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변화를 인식하고 우리에게 더욱 교훈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3절에서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For the time will come when people will not put up with sound doctrine. Instead, to suit their own desires, they will gather around them a great number of teachers to say what their itching ears want to hear.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른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때가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쳐도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근거한 바른 말씀을 가르쳐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받지 않는 다는 말은 견디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바른 교훈을 견디지 못한 다는 말은 바른 교훈을 참아 내지 못한다는 말로 사람들의 가벼움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말씀에 대하여 경박하며 진지하지 못하며 깊지 않는 성경 지식을 자랑하는 자들이 많음을 봅니다. 깊이 있는 말씀의 가르침을 견디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견디지 못하고 가볍고 쉬우며 자신들을 즐겁게 하며 기뻐할 가르침만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간 사람은 이런 경박스러움과 가벼움과 자신을 즐겁게 하는 교훈을 버리고 깊은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려 하며 어렵고 힘들지만 바른 교훈을 사모합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바른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다시 디모데후서 316절 보면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두 번째로 성경이 주는 유익은 책망입니다. 책망이라는 말은 죄인에 대한 질책으로 죄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이 책망이 교훈의 뒤에 나오게 되는 것은 교훈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게 된 후에 이 가르침을 받는 자나 교훈을 깨닫게 되는 자가 그 마음에 발생되는 것이 바로 책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지적하며 감춰진 죄를 드러나게 하여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책망은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하여 뼈저린 반성을 만들어 내게 되는 역할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감찰 하시기 때문에 마음의 숨은 생각과 은밀한 것을 찾아 내십니다. 그리고 그 숨겨진 은밀한 죄를 교훈 앞에 발가벗겨 놓으심으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 책망이 비난과 꾸짖음으로 수치와 부끄러움을 주지만 이것은 결코 신자에게 절망을 던져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신자를 조롱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신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온전케 하기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시편 324-5절을 보면 [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For day and night your hand was heavy on me; my strength was sapped as in the heat of summer.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당하는 심적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주야로 자신을 누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액 빠져서 말라 버렸다고 합니다. 이에 다음 구절인 시편 325절을 보면 [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Then I acknowledged my sin to you and did not cover up my iniquity. I said,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to the Lord." And you forgave the guilt of my sin.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죄악을 고백함으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우리의 죄를 꾸짖고 책망함으로 우리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자복하게 함으로 용서를 받게 하며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디모데후서 316절 보면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세 번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바르게함 입니다. 바르게 한다는 말은 다시 바로 세우다 라는 뜻으로 교정하여 올바른 상태로 회복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정이란 잘못된 것을 의미합니다. 구부러진 것이나 휜 것을 곧게 하여 바른 상태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바로 세우다, 교정하다는 말은 원래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나 잘못된 것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읽는 자들에게 교정, 또는 바른 세움을 준다는 것은 현재 우리 모두는 어긋난 상태요 온전치 못하며 바르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약 우리가 성경을 배우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온전치 못한 상태의 지속이며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구부러지며 삐뚤어지며 온전한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는 쓸모 없거나 문제만 발생시킬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흔히 증명될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신자이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쉽게 봅니다. 구부러지고 삐뚤어진 마음의 상태로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많은 문제와 다툼들을 만들어 냅니다. 문제는 성경을 배우지 않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바르게 함을 받아야 합니다. 바르게 함이 세 번째의 자리 즉 책망 뒤에 오는 것은 회개를 통하여 고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가 드러남으로 그 죄와 대적함으로 죄를 이겨 그 마음과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바로 바르게 함의 의미입니다.

        네 번째로 성경이 주는 유익은 의로 교육함 입니다. 여기서 교육이란 훈련과 훈계를 의미합니다. 무엇을 훈련하며 훈계하는가 하면 의로 입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의로움 안에서의 훈련과 훈계입니다. 즉 이 말은 의롭게 살도록 훈련하며 훈계한다는 뜻입니다. 의로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치적 의로 구원을 통하여 얻게 되는 그리스도의 의로 인한 칭의 입니다. 두 번째는 실제적인 의인데 이것은 구원 얻은 후에 실제적으로 예수를 닮아서 이루어가는 성화의 의로움입니다. 본문에서 의로움을 훈련한다는 것이 바로 이 실제적으로 우리의 모습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감으로 인하여 완성되는 성화를 이루는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의로 교육함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의로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은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배우지 않으면서 성화되어갈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닮지 않는가? 어떠한 많은 핑계를 대지만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지 않고 그 안에서 확신하는데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유익이 자신의 것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로 저절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화는 오래 교회에 다닌다고 자라거나 변화되거나 성숙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경을 배우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을 소유하며 맛보라고 합니다. 성경에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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