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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09.30 15:32

맡은 자들과 충성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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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com/live/q38pF4jGppU


오늘은 교회 설립 14주년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또한 교회가 함께 기뻐해야 할 교회를 섬길 직분을 위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두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가 이 복된 날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교회는 어디에 기초하여 세워졌는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들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한 교회의 직분 또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일들을 통하여 세움을 받으며, 그 일을 근거로 해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직분자는 교회를 섬기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섬기는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직분자가 받는 직임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을 근거로 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가 어떻게 주어졌으며, 어떠한 일에 부르심을 받았는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그가 자신 안으로 부르신 자들과 부르실 자들을 위하여 이루신 일들에 대하여 입니다. 이 일들의 중요함은 구원의 근거가 되며, 구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누군가 구원을 얻었다면 또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입니다. 즉 나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라고 고백한다면 이러한 내용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구원에 대하여 모르고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업적 속죄론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상업적 속죄론이란 말의 의미는 상거래의 방식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상거래 방식의 속죄론을 믿는 자들의 경우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만을 지식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그분과 나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나는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래 전에 제가 제 아내와 함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 저는 모르지만 저를 안다고 와서 인사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인사하며 설교를 잘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맛있게 하시라고 말하고 그분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제 아내와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제게 다른 분이 제 밥값을 계산하고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 밥값을 지불하신 분을 잘 알지 못하며, 어떠한 친분 관계도 없지만 그분이 제 밥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저는 식당에 제가 지불해야 할 빚이 사라진 것입니다. 다른 분이 제 대신에 값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상거래 속죄론입니다. 나는 내 밥값을 대신 지불해준 분과 아무런 인간적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내 채무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인격적 관계 없이, 그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도, 그분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내가 믿음으로 내 죄가 사함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영적 연합이 없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구주이며, 내 주인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이루신 일들을 내가 알고 있으며, 그것이 내가 믿는 것이며,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내게 확신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내용은 우리의 구원의 내용이 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일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나를 향한 율법의 요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율법의 저주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율법에 의해서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320-21절을 보면 [ 3:20-21]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Therefore no one will be declared righteous in God's sight by the works of the law; rather, through the law we become conscious of our sin. But now apart from the law the righteousness of God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며, 죄 아래 가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말은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한 의로우신 분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신 것입니까? 로마서 83절을 보면 [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For what the law was powerless to do because it was weakened by the flesh,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to be a sin offering. And so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십니다. 무엇을 하시는가 하면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율법을 만족시키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에 나오는 말씀처럼 자신을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으로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마치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처럼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되어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이러한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만족시키심으로 인하여 얻게 된 것이며,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7절을 보면 [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우리 주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완전하게 라는 단어는 성취하다, 이루다 라는 뜻과 동시에 완성하다 완벽하게 하다 끝까지 채우다 라는 뜻입니다. 즉 율법을 완성하며, 완벽하게 요구를 만족시키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하여 범죄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내용은 우리의 죄에 대한 문제를 우리 주님을 십자가를 통하여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죄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첫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는 사람에 대해 지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죄의 문제의 심각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죄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일반적으로 죄의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은 사실 즉 죄 용서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단지 죄 용서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61-2절을 보면 [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go on sinning so that grace may increase? By no means! We are those who have died to sin; how can we live in it any longer?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을 수 있었습니까? 다음절인 3절을 보면 [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Or don't you know that all of us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Jesus were baptized into his death?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표현되고 있지 않지만 우리를 그리스도가 죽을 때에 합하여 세례를 받아 즉 연합되어 죽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다고 할 때에 믿음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믿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의 죽으심에 함께 죽은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우리의 죄의 종이 아니며, 죄의 영구한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11절을 보면 [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만 살아 있는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8절을 보면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The one who does what is sinful is of the devil, because the devil has been sinning from the beginning. The reason the Son of God appeared was to destroy the devil's work.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승리가 무엇인가 하면 사도행전 2618절을 보면 [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to open their eyes and turn them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power of Satan to God, so that they may receive forgiveness of sins and a place among those who are sanctified by faith in me.'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부르신 목적에 대하여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을 바울을 통하여 그 눈을 뜨게 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그리고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고 부르셨다고 합니다. 사단이 패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단이 패하였기 때문에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누가 그 증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이 증인입니다. 우리가 사단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단이 패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 주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 주님은 십자가 죽으심으로 통하여 자신 안으로 부르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사망을 폐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은 것은 사망이 우리 주님에 의해서 폐하야 졌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창조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인간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이 사망을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폐하신 것입니다. 딤후 110절을 보면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혜하시고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57절을 보면 [고전 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Where, O death, is your victory? Where, O death, is your sting?" The sting of death is sin, and the power of sin is the law. But thanks be to God! He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망이 쏘아 쓰러뜨리는 힘은 죄입니다. 죄의 힘은 율법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고 죄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심으로 사망은 더 이상 왕 노릇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사망이 우리에게 왕 노릇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으며 우리의 구원은 이것으로부터 구원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이러한 것으로부터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그것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율법에서 죄에서 사단에게서 사망에서 벗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10절을 보면 [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For if, while we were God's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him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how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through his life!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수로 삼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하나님을 원수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믿고 있다면 그는 화목하게 된 자로서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심의 결과로 구원을 얻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된 것도 감사한 것뿐인데 더욱 우리를 영광스러운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꾼은 일꾼으로 부르심 받은 것 때문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2절을 보면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이 이제 직분을 받았으니 충성을 다해라 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여 충성하라고 합니다. 직분을 받았으니 그들에게 구하는 것은 충성뿐이기에 충성을 다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영어 성경에서 prove 라고 번역된 단어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원어에서 이 단어는 수동형입니다. 즉 신실함 또는 충성을 입증하다, 증명하다 라고 번역됩니다. 이 단어를 이렇게 영어로 번역한 이유는 이 단어는 발견하다의 수동형으로 발견되어진다 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조사하여 발견되어진다 라는 뜻입니다. 즉 충성하라 라는 의도의 말씀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으로 임명을 받아 임직한 자는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 아니면 자신이 그 자리가 탐나서 되었는지, 또는 교회나 목사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아닌 사람을 세웠는지 이제부터 증명하며, 입증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직식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인지 이제야 발견되어 증명이 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임직자를 주님이 보십니다. 모든 교우들이 봅니다.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자인지 이제부터 증명하셔야 합니다. 직분을 주시는 주님이 반드시 자신이 세우신 자를 도우시며, 모든 은혜를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우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성령께서는 반드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주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함께 기도하며 협력할 것입니다.  부디 참된 주님의 일꾼으로 증명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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