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형제의 연합에 대한 것입니다. 형제가 서로 연합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에 대하여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편 133편 1절을 보면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God's people
live together in unity!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일반적으로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는가 하면 신자들이 서로 연합하여 함께 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구나
라는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나 교제나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는 본문입니다. 본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한 글자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보라 라는 단어입니다. 보라 라는 말은 감탄사로서 놀라움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이 보라
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반드시 살펴보라는 의미로 이것은 정말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놀랍고 위대한 일이기에 주목하여 보며 관심을 기울여 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살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주목하여 그리고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형제의 동거함입니다. 형제의 동거함이 놀랍고 감탄스러운 것이기에 자세히 주목하여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본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그가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형제의 동거함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은 주목하여 볼 만한 것이고 관찰하며 예의
주시하며 살피며 깨달아야 될 만한 것으로 인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표현 속에 그것이 어찌
그리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얼마나 라는 말로 얼마나 무엇 무엇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깨달은 형제의 동거함은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선하다는 단어와 아름답다는 말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표현한 말이 아닙니다. 즉
형제들의 동거함을 경험하거나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자신들의 동거함을 보고 야 정말 형제의 동거함이 선하고 아름답구나 라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의 동거함을 보시고 그것을 바라보시는 그분의 마음과
생각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선하다는 단어는 우리 인간 편에서 착하다 라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그분의 뜻에 맞고 그분의 계획에 합당하며 그분이 보시기에 좋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름답다는 말도
여기서는 인간편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평가요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형제의 동거함을 왜 주목하며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는
형제의 동거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동거한다는 것은 함께 살다 혹은 거주하다
머물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며 친교의 모임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임을 가지는 것으로 사도 행전에서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Every day they continued to meet
together in the temple courts. They broke bread in their homes and ate together
with glad and sincere hearts, 라고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형제가 동거하는데 연합 즉 하나됨 안에서 이렇게 한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은 세상 사람들의 모임과 다릅니다. 이유는 그들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한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며 함께 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심을 인함입니다. 우리가 한 지체라고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며 교제합니다. 형제를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십니다. 이유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를 향한 헌신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거나 나의 유익함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바로 형제애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아침 일찍부터 나와 자리를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저녁 늦게까지 음식을 만들어 준비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입니까? 무엇인가를 얻어 내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매주 마다 식사 조에 속한 가정들이 음식을 준비해 성도들을 대접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정성껏 준비한 손길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왜
이런 헌신과 희생을 합니까? 더 맛있는 것을 준비하며 더 열심으로 준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교회 그리고 나의 형제 내 가족을 위한 사랑이 그 근거가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이 보고 감탄하며 주목하여 보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에 근거한 형제들의 하나되어 연합된 동거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시편 133편 2절를 보면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It is like precious oil poured on the head,
running down on the beard, running down on Aaron's beard, down on the collar of
his robe.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을 두 개의 비유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이 설명 속에는 하나님께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떻게 선하고 아름다운 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는 보배로운 기름 같다고 표현합니다. 기름인데 이것은 그냥
기름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기름입니다. 왜 보배로운 기름인가하면
바로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위임식 때 사용된 거룩한 것입니다. 이 기름은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보배로운 기름은 아론을 구별시킵니다. 세상과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세우며 부정한 것과
구별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를 성결하게 하는 것이 그의 머리에 부어진 보배로운 기름입니다. 그렇다면 형제의 사랑과 헌신과 연합하여 함께 하는 교제는 바로 이런 세상과 구별되어진 성별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신자는 세상과 구별이 됩니까? 형제를 사랑함으로 형제를
위해 헌신함으로 믿음 안에서의 참된 교제로 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을
보면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3장 35절을 보면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By this everyone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됨의 본질이 서로 사랑하는 것 즉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시편 133편 3절을 보면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It is as if the dew of Hermon were falling
on Mount Zion. For there the Lord bestows his blessing, even life forevermore. 3절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헐몬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합니다. 헐몬산은 눈으로 덮여 있는 산입니다. 여기서 수증기가 발생하여 이슬이
이스라엘 땅을 적시는 것입니다. 이 이슬은 식물에게 있어서 생명을 의미합니다. 뜨거운 건기를 견디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이슬 때문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없다면 시온의 산들은 말라 버리며 거칠어져서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으로 시온의 산들은 식물이 생장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런
회복됨과 힘을 얻는 것과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형제의 사랑이며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온의 산들에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시도록 명하셨고 거기에 영생이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시온의 산들은 은혜의 장소가 되며 복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여 내리는 장소요 하나님의 영생이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며 떡을 떼며 친교를 나누는 것은 그냥 의미
없는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보배로운 기름처럼 우리를
세상과 구별하게 하며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복된 장소요 영생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형제를 위하여 베풀며 헌신하며 돕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신앙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야외로 나와서 함께 교제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좋은 교제와 사랑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제 위에 하나님께서는 이슬과 같은 생명의 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도들끼리 함께 모여 교제를 나누고 함께 먹고 마시고 하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종종 성도들끼리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하는 것을 의미 없는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유는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사고 때문입니다. 예전에 목사님들께서 이런 설교들을 자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14장 1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먹고 마시는 것이 죄인 양 생각하는 풍토를 만들었습니다. 성도들끼리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그냥 세상적인 일이고 하나님 나라의 일은 그런 것을 배재한 다른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신자들의 모임에 가면 꼭 이렇게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지만 말고 좀 건설적인 이야기나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시다. 우리가 먹고 마시기 위해서
모인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동거함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함께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임을
나타내며 형제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는 예배 만이 아닙니다. 기도 모임 만이 아닙니다. 함께 먹고 마심도 교제이며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에서 하나님의 가족들과 함께 복된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육체가 쉼을 얻는 복된 날이 되길 원합니다.
주일말씀
2025.10.21 15:15
형제의 연합과 동거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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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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