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o7LY5kZlufs
찬송가 23장의 내용은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찬송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찬송을 드릴 때에 이 찬송의 내용에 대하여 집중하여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찬송가 23장의 1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1.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 하겠네 O for a thousand tongues to sing My great
Redeemer's praise, The glories of my God and King, The triumphs of His grace.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 하겠네 라고 합니다.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데 한글은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이지만 영어는 천개의 혀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음률을 맞추기 위한 것인데 이 의미는 모든 입들로 라는 의미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것들로 내 구주를 늘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구주는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찬송하는가에 대하여 주신 은총을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영어에서는 그의 은혜의 승리들을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찬송가 23장의 내용은
찬송이 담아낼 모든 것들을 담아 내고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는 성경이 말하는 찬송이 바로 이러한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35편을 통하여 찬송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찬송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찬송의 주체는 누구이며 그 대상은 누구인가? 그리고
찬송이 내용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1절을 보면 [시 135: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Praise the Lord. Praise the name of the
Lord; praise him, you servants of the Lord, 이 시는 작자 미상입니다. 즉 누가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시입니다. 그래서 저자를
시인이라고 그냥 부르겠습니다. 1절에서 시인은 할렐루야 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이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라는 말이 됩니다. 좀더 직역하면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라는 명령입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이 모르는 분들은 보통 신자끼리 하는 인사말 정도로 알고 잘 지내셨습니까? 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아는 분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하는 말이며 이 말 속에는 오직 하나님만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라는 뜻을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즉 너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찬양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교회에서 하는 노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찬양이라는 말이 노래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시
135: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Praise the Lord, for the Lord is good; sing praise to his name, for that is
pleasant. 시인이 마지막 구절에서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찬양하다 라는 말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의미하지만 출애굽기 15장 2절을
보면 [출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defense;
he has become my salvation. He is my God, and I will praise him, my father's
God, and I will exalt him. 이 단어는 노래를 부르다 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찬양은 노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은 노래를 부르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찬양과 노래의 다른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래라는 말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는 노래라는 말의 어원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노래라는 말은 그 어원이 놀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즉 노래는 놀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놀다 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통해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래 라는 것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을 가리켜 흥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래방문화가 자리 잡기도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든 노래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풍을 가면 장기 자랑으로 노래를 하고 잔치 집에 가면 꼭 노래를 합니다. 이유는 노래는 노는 것이며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있어서 좋은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찬양이 노래와 다른 점은 찬양은 자신을 즐겁게 하거나 기쁘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는 점에서 입니다. 찬양이란 우울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도 압니다. 찬양이란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양이란
말의 뜻은 밝게 비추다, 자랑하다, 칭찬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훌륭함을 기리고 드러냄이라고 이해될 수가 있습니다. 찬양이 밝게 비추고, 자랑하고 칭찬하며 아름답고 훌륭함을 기리고
드러내는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이 할렐루야 라고 할 때에 신자의 오직 유일한 찬양은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찬양 즉 그분을 밝게 비추거나, 자랑하거나 칭찬하는 것이
신자의 마땅한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찬양은 노래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이 노래 즉 가락과 곡조를 가지고 부르는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찬양은 노래가 아닙니다. 이 말은 가락과
곡조를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이 노래가 아니라는 말은 노래의 기원과 목적은 노는 것과
흥을 돋구는 것에 있으며 즐겁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분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한
수단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노래의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가 찬양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찬양은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흥을 돋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라면 분명한 것은 자신의 찬양을 드림은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찬양은 예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이 여호와의 종된 자들에게 찬양하라고 하는데 이들이 드리는 찬양은 공적 예배시에 드리는 찬양을
가리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시 135:2]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you who minister in the house of the Lord, in
the courts of the house of our God. 라고 합니다. 시인이 찬양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여호와의 종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면 여호와의 집에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 여호와의 성전입니다. 그 성전 중에서도 성전 뜰에 서
있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의미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과 그리고
성전 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서 있는 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지금 예배에로 부름을 받았으며 예배하기 위해서 모인 자들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찬양 또한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예배시의 찬양은 다른 시간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다시 1절을 보면 [시
135: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Praise the
Lord. Praise the name of the Lord; praise him, you servants of the Lord, 이
구절에서 찬송하라 라는 말이 세번 등장하는데 모두다 명령형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모두다 강한 강조형입니다.
찬양의 주체가 되는 자들에 대하여 여호와의 종들아 라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그리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을 수 있으며 그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종들입니다. 예배가 아무나 교회에 오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찬양 또한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종들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참된 여호와의 종들이 아닌 자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찬양의 주체가 제한 된다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찬송을 부른다고 다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찬양이란
항상 하나님이 그 대상이며 목표이고 중심입니다. 그 내용은 그분에 대한 이해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다시 3절을 보면 [시 135: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Praise the Lord, for the Lord is good; sing praise
to his name, for that is pleasant. 여호와의 선하심과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성품이며 인격이며 됨됨이며 그 사람의 속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의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찬송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우리가 친구의 초청으로 중요한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때 사회자가
갑자기 여러분의 이름을 호명하며 앞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해 있는 유명한 한 사람을
지목하며 그 사람에 대하여 말해 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아무리
유명하고 위대하다 해도 여러분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그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모르는 가운데 그 사람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하고 칭찬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하여 칭찬을 할 수 있으며 깊은 교제가 없는데도 어떻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까? 그렇기에 찬송은 어떤 면에서 은혜를 받은 만큼 그리고 경험한 만큼 밖에
못합니다. 누군가 뜨거운 찬송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더 깊이
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찬송할 것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찬양은 하나님의 종만이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찬송가 23장의
4절을 보면 4.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 하셨네
He breaks the pow'r of cancel'd sin, He sets the pris'ner free His blood can
make the foulest clean His blood avail'd for me.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서 곧 정케 하셨다고 합니다. 찬송은 우리의 찬송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며, 칭찬하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1절에서 그의 은혜의 승리들을 늘 찬송하겠다고 하는데 4절에서
그의 은혜의 승리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것들이 바로 죄의 권세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서 그 죄의 권세를 깨드리셨고, 그 결박을 추셨고 또한 추한 나의 맘을 우리 주님의 피로서 정결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양의 내용인 것입니다. 끝으로 찬양이 예배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찬양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줍니다. 찬양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라는 말은 가능한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만 베푸시는 것이며 그 받은 자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며 하나님으로만 즐거움과
기쁨을 삼게 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개인적 감정의 흥분이나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만족이나 흡족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 내 귀에 좋았고 내 마음에 좋았고 훌륭하고 애를 썼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라면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흡족하셨으며 기뻐하셨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지 내가 기준이 되거나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누가 부르는
찬양에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가대의 찬양이나 누구의 찬양에 대하여 아멘하는 것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아멘이란 참입니다. 진실된 것입니다. 라는 뜻으로 그의 찬양의 내용이 진실되며 참된
것으로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찬송 몇장 하시면서 자리를 이동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형식이 아닙니다. 예배가
딱딱하니까 예배를 부드럽고 재미있고 흥미롭게 하기 위한 장치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며 예배 그 자체입니다. 찬송하며 자리를 옮기는 것은 찬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며 찬양을
노래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의미로 시간 관계상 찬양 1절과 4절만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 또한 잘못입니다. 찬양을 하나님께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시간관계상 잘라 낸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준비 찬양이라는 것도 비 성경적인 용어입니다. 찬양에 준비 찬양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준비 찬양이라는 말은 찬양을 예배를 위한 준비 혹은 예배를 위한 소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찬양은 무엇인가를 준비하기 위해 하는 예비 동작도 아니고 분위기를 만드는 도구도 아닙니다. 찬양은 예배 행위이며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이미 예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며 찬양은 이제 예배 속으로 들어간 상태인 것입니다. 예배가
하나님께만 전심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찬양 또한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예배 시간에 자리를 이동하거나 예배에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일들을 삼가 하듯이 찬양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필요한
움직이나 행동은 삼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불필요한 행동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의 자세와
태도에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목표인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보는 예배와 단순히 몸만 참여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망쳐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며 집중해야 합니다. 또한 타인에게
방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거나 예배를 흩으러 놓는 행위들을 삼가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며 그분을 칭찬하며 그분을 자랑하는
행위입니다. 이 말은 꼭 가락과
곡조가 있어야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찬양은 기도 가운데도 드려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신자들간의 대화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불신자와의 대화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찬양은 제한된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시에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과 찬송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드려질 수 있으며 드려져야 합니다. 할렐루야 라는 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명령형입니다. 히브리어의 강조형이 쓰여졌습니다. 또한 이미 앞서 살펴본 이사야서 43장 12절에서는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함이라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찬양은 바르게 해야
하며 온전하게 드려야 합니다. 특히 예배시의 찬양은 더욱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찬양할 때에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십시오. 온 힘을 다해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분을 칭찬하며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찬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