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주일말씀
2025.11.25 16:24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YC
조회 수 4881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절기로서 추수 감사절은 한 해 동안 농사 지은 것을 추수하여 저장하는 절기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어떻게 지내 왔는가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신자는 추수 감사절에 올 한 해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를 반성하며,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성찰 하지 않는 인생은 더 나아질 수도 없으며, 온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신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은 온전하였는가?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나의 감사는 충분하였는가?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최선을 다하여 배신하지 않고 응답하며 살아 왔는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반성하고 돌아 봄으로 내년에는 더욱 나아진 삶을 살리라고 다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평생을 살다 보니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나는 매일 잘 살고 있는가? 나는 매일 바르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영원하지 않으며, 신속히 가고 있고, 다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7839절을 보면 [ 78: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He remembered that they were but flesh, a passing breeze that does not return.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때에 가지셨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유한한 육체 가운데 살며, 연약한 육체 가운데 있음을 아십니다. 또한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대단할 것도 없고, 뛰어날 것도 없는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이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 이라고 할 때에 다시 오지 못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인생이 잘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중요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 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연구해 봄으로 인해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의 내용은 족보에 대하여 입니다. 창세기 4장은 아담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담의 족보는 한 계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아들에서 두 개의 계보를 가지게 되며, 두 개의 각기 다른 두 개의 족보들이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이한 것은 동일한 아담의 아들들인데 각기 다른 계보로 구별하며, 따로 분리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한 아버지에게서 난 자식들을 구분해서 각기 다른 계보로 기록하고 구분하는 것은 아담의 아들들의 자손들이 서로 달랐으며,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두 자손들의 삶이 방향과 목적이 다르며, 그 결과가 달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41-2절을 보면 [ 4:1-2]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dam made love to his wife Eve, and she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Cain. She said, "With the help of the Lord I have brought forth a man." Later she gave birth to his brother Abel. Now Abel kept flocks, and Cain worked the soil.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아들 가인을 낳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또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습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벨과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셨고 가인과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죄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 인류 첫 살인이 벌어지게 되었고 가인은 첫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실제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마음이 부패가 일어났으며, 죄의 강력한 지배력 아래 인간이 놓이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25절을 보면 [ 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dam made love to his wife again, and she gave birth to a son and named him Seth, saying, "God has granted me another child in place of Abel, since Cain killed him."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는데 그 이름을 셋이라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고백하며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뜻은 대치 즉 아벨을 대신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이 가인과 셋 구분되며 이후로 이 둘을 따라 두 계보로 나뉘게 되어 각기 그 후손들이 기록되게 됩니다. 먼저 가인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이 창세기 4장에 기록되고 후에 셋의 후손들은 5장에 기록됩니다. 성경의 순서에 따라 가인의 후손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창세기 417절을 보면 [ 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Cain made love to his wife, and she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Enoch. Cain was then building a city, and he named it after his son Enoch. 아내와 동침하였다고 할 때에 가인이 아내와 동침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에녹입니다. 가인이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자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지어 에녹성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418절을 보면 [ 4: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was the father of Mehujael, and Mehujael was the father of Methushael, and Methushael was the father of Lamech.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살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절을 보면 [ 4: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Lamech married two women, one named Adah and the other Zillah.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다고 합니다.

        다음절인 20절을 보면 [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dah gave birth to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ose who live in tents and raise livestock. 아다는 야발을 낳았고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목축업의 조상으로서 그때부터 목축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상당한 부를 소유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다음절을 보면 [ 4: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all who play stringed instruments and pipes.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세상의 음악과 관련된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절을 보면 [ 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Zillah also had a son, Tubal-Cain, who forged all kinds of tools out of bronze and iron. Tubal-Cain's sister was Naamah.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며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장인이 된 것입니다.

        성경이 가인의 족보에서 거론된 자들의 특징을 보면 성을 세우고, 목축업을 널리 퍼지게 하고, 부유하게 되고, 음악을 즐기며,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자들이고, 손 재주가 뛰어나 인류의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사회에 큰 공을 세우고, 뛰어나고, 탁월한 인재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이들은 높임을 받은 자들이었으며, 그 이름을 드높이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셋의 족보를 보면 좀 다릅니다. 창세기 56-8절을 보면 [ 5:6-8]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When Seth had lived 105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Enosh.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Enosh, Seth lived 807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Altogether, Seth lived a total of 912 years, and then he died. 셋은 성을 쌓아 그 이름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에노스를 낳았으며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을 보면 [ 5:9-11]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When Enosh had lived 90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Kenan.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Kenan, Enosh lived 815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Altogether, Enosh lived a total of 905 years, and then he died.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식으로 셋의 족보는 이어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성경이 왜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과 그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의 차이점을 아시겠습니까? 가인의 후손들의 경우 이들은 세상에서 번창하며, 부유하며, 이름을 떨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성공한 자들인 것입니다. 성을 쌓고, 아내를 두 명이나 두고, 풍류를 즐기고, 부를 쌓고 하는 일들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기록 속에서 성경이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언제 태어났는지, 얼마나 살았으며, 언제 죽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들은 그들이 언제 태어났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살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이 언제 죽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그들이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은 그들이 태어난 시점을 아십니다. 또한 그들이 얼마 동안 살았는지를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 죽었는지를 기억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연수만을 계산하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셋과 그의 후손들을 기억하시며, 그들의 날들을 생각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창세기 426절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되는데 셋의 족보를 시작하기 전에 이 말씀을 하며, 셋의 후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426절을 보면 [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Seth also had a son, and he named him Enosh. At that time people began to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예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셋의 후손이 자식만 낳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 세상에 어떠한 성공을 하고, 어떠한 지위에 오르고, 어떠한 부유를 소유하고, 어떠한 명성을 떨치고 하는 것에 대하여 개의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았던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살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셋의 후손 가운데 에녹의 경우를 보면 창세기 521-22절을 보면 [ 5:21-22]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When Enoch had lived 65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Enoch walked faithfully with God 3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자녀를 낳았고 삼백육십 오년을 살아 오면서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가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인생에 그가 행한 다른 일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유한 자인지, 그가 얼만 뛰어난 자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사람인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관심과 하나님의 관심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동행 하다는 말은 함께 걷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이 계신 것을 알고, 하나님을 구하며, 찾으며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내가 너를 안다고 하시는 것이 그의 태어남, 그가 살아온 삶, 그리고 그가 죽어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감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가인의 후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삶이 성공한 삶이고, 잘 사는 삶이라고 여기며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삶을 살면서 스스로 잘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그들이 이 땅에서 삶이 자신의 진노를 쌓는 삶이며,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전혀 개의치 않으시는 버려진 인생이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닫고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을 이 땅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않으려하며, 이 땅의 것으로 채우려 하지 않으며, 이 땅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영원을 바라보며,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 바로 셋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들의 장래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그들의 삶을 기억하시며, 그들이 이 땅을 떠날 때에 반드시 맞아 주실 것입니다. 추수 감사절에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고 영원을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수
1178 주일말씀 문둥병자 나아만 이야기 1 2025.12.03 757
1177 로마서 강해 220강 거룩한 떡덩이와 가지 로마서 11장 16절 2025.11.25 3976
» 주일말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2025.11.25 4881
1175 로마서 강해 219강 유대인들의 구원 로마서 11장 14-15절 2025.11.19 8224
1174 주일말씀 많이 사랑하는 것과 적게 사랑하는 자의 차이 2025.11.19 11526
1173 로마서 강해 218강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김 로마서 11장 13절 2025.11.10 9902
1172 주일말씀 기도와 낙심 2025.11.10 12182
1171 로마서 강해 217강 유대인들에 대한 오해 로마서 11장 11-12절 2025.11.04 12203
1170 주일말씀 찬송하라 2025.11.04 16521
1169 로마서 강해 216강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 이해 로마서 11장 9-10절 2025.10.29 11410
1168 주일말씀 아벨의 제사에서 배우는 교훈 2025.10.29 19745
1167 로마서 강해 215강 하나님의 복이 저주가 된 자들 로마서 11장 7-10절 2025.10.21 21397
1166 주일말씀 형제의 연합과 동거의 아름다움 2025.10.21 28050
1165 로마서 강해 214강 엘리야를 통하여 보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 로마서 11장 2-3절 2025.10.15 15429
1164 주일말씀 그리스도인 간의 관계 2025.10.15 2301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79 Next
/ 79

차타누가 열린교회 CHATTANOOGA YEOLIN PRESBYTERIAN CHURCH
1622 HICKORY VALLEY RD. CHATTANOOGA, TN 37421
담임 : 박경호 목사 Ph : 423-645-7910 Email : pkrain1@gmail.com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