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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12.16 17:20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기도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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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com/live/gQia16t78_Q


오늘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하는 내용은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계시며, 그 하고 계시는 것이 우리에게 현재 어떻게 효력이 발생되며, 유익되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효력이 되고, 유익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오늘 말씀 드릴 내용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불행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시는 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일 수 있으며, 둘째는 전혀 배우지 못하며,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상적인 일에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하여서는 대단히 분개를 하며, 어떻게든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쓰면서 영적인 것에서 손해를 보는 일은 전혀 분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고, 손해라고 여기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새로운 냉장고를 구입해야 하는데 베스트 바이에서 최신의 냉장고를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에 다른 사람이 같은 냉장고를 나보다 500불이나 싸게 산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만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냉장고를 리턴하던지 아니면 시간을 내어 요청하여 자신이 당한 손해를 복구하려고 합니다. 비록 그것이 운송비를 내가 부담하고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그렇게 합니다. 이러한 일은 큰 일만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코스트코나 샘스 클럽에서 산 물건이 다른 사람보다 10불만 비싸게 지불해도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무관심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손해 보아도 전혀 가슴 아파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영적 침체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오늘 말씀은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볼 내용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며, 그렇게 함으로 자기 자신의 신앙을 증진하며, 진보하게 하며, 믿음을 성장하시키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함께 듣게 될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며,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때에 참된 믿음의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과 실제적으로 믿음과 신앙의 진보를 일으키기 위해서 친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것이며, 지금도 이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받는 자들에게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성숙에 많은 영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 834절을 보면 [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Who then is the one who condemns? No one. Christ Jesus who died-more than that, who was raised to life-is at the right hand of God and is also interceding for us.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 대하여 누가 정죄하리요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누가 정죄 즉 죄인 이라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선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 계시며 다시 살아나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정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심으로 우리로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은 권능과 힘의 상징적 표현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통치하고 계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제 산자와 죽은 자의 왕으로서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그분의 또다른 사역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실 때에 우리의 무엇을 위하여 간구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내용은 분명한 것은 첫째로 우리의 유익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을 뿐만 아니라 약한 자들을 돌보시며,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며, 귀신 들린 자들을 위하여 귀신을 쫓아 내시며,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둘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영혼에 유익이 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이시기도 하기에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영혼의 안전함과 평안함 그리고 영혼이 온전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으로 평안함과 위로가 넘치며, 복된 삶을 살도록 하실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구체적으로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그분의 기도가 그에게 응답된 것을 보게 되는데 누가복음 2231-32절을 보면 [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Simon, Simon, Satan has asked to sift all of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사탄이 너희를 즉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며, 동시에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떨어진다는 의미는 실패하거나 또는 중단하거나 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지속되도록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는 지엽적이며 개인적인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리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지엽적이 아니며, 개인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내용이 바로 요한 복음 17장에서 드리는 대제사장적 기도입니다.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불리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제사 드리기 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 대제사장이 해마다 대 속죄일에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속죄의 기도를 하였듯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으로서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기도를 올리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17장의 예수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요청을 담고 있는데 첫째는 자신과 함께 하였던 당시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부분이 있으며, 둘째로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될 오고 오는 모든 미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부분으로 나뉩니다. 요한 복음 1724절을 보면 [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Father, I want those you have given me to be with me where I am, and to see my glory, the glory you have given me because you loved me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이 예수님의 기도는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는데 첫째는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둘째는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여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먼저 첫번째의 기도 내용을 보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기를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이 나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 있는 곳에 대하여 주님께서 요한복음 733-34절을 보면 [ 7:34-35]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You will look for me, but you will not find me; and where I am, you cannot come." The Jews said to one another, "Where does this man intend to go that we cannot find him? Will he go where our people live scattered among the Greeks, and teach the Greeks?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며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나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곳이 어디인가 하면 아버지께서 계신 곳으로, 즉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데 혼자만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나 있는 곳에 내게 주신 자도 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즉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주님께 주신 자들을 자신이 있는 곳인 천국에 함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하시며, 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간구가 필요한가 하면 지금은 주님과 함께 있지만 곧 주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며, 주님이 계신 곳에 오지도 못할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모두다 자신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계신 곳에 가게 되는 이유는 바로 주님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시며, 그 기도의 응답의 결과로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데 요한 복음 821절을 보면 [ 8: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Once more Jesus said to them, "I am going away, and you will look for me, and you will die in your sin. Where I go, you cannot come."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갈 것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아버지께로 가실 것이며, 오신 곳으로 다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주님을 찾을 것이나 그러나 주님을 찾지 못하고 결국에는 그들 자신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주님이 계신 곳에 오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고 오는 모든 택하신 자들과 그러므로 믿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 계신 곳에 함께 거하게 하신다는 사실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은 기도하셨고 또한 우리가 주님을 찾지 못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실 뿐만 아니라 만나 주시며, 우리가 우리의 죄 가운데서 죽지 않도록 회개하게 하시며,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자신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둘째로 살펴볼 것은 요한복음 1724절에서 기도하고 두번째 기도 제목에 대하여 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1724절을 보면 [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Father, I want those you have given me to be with me where I am, and to see my glory, the glory you have given me because you loved me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 즉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 보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기를 주님은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우리들이 보기를 원하십니까?

        첫째로는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인간들의 눈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이며, 아름 다운 것이 없이 매력적이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야서 532-3절을 보면 [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모습인지에 대하여 예언하였는데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하실 때에 그 영광스러움이 감추어져 있었으며, 드러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떠한 흠모하고 사모하며 바라볼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주님은 멸시를 받아 갈릴리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소리를 들으셔야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 마저 그를 배신하며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하던 그분의 영광은 가리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예전의 영광보다 더 높은 영광을 가지시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러한 주님의 영광을 그를 믿는 자들이 바라보는 자들이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본다는 것은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영광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영광을 믿음으로 보기를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묵상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위로를 얻으며, 만족을 얻으며, 행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예로 창세기 4513절을 보면 [ 45:13]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Tell my father about all the honor accorded me in Egypt and about everything you have seen. And bring my father down here quickly." 이 말은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에게 하는 말로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즉 영광과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라고 합니다. 요셉이 왜 자신이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하라고 합니까? 자랑질을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확신을 주며, 위로를 주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며, 위로함을 주시며,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담대함과 두려움은 우리가 믿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강함은 그 믿는 자의 영광이 어떠함을 알 때에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약함은 그 믿는 자에 대한 신뢰와 그분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약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며, 확신하게 하시어 우리로 우리의 구원의 여정에서 낙심하지 않으며, 실망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힘써야 하며, 그분의 영광을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보면 볼수록 우리는 더욱 그의 영광에 합당하게 변화해 간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318절을 보면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And we all, who with unveiled faces contemplate 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image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을 얼굴로 즉 가리운 것이 없는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합니다. 즉 주님의 영광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더욱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됩니까? 오직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는 자들이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간구해야 하며, 주님의 영광을 묵상해야 합니다. 자주 빈번히 틈틈히 모든 시간에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어떠한 영광 가운데 있는지를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의 주님이심을 그분이 나의 주인이심을 확신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날마다 주님의 영광을 묵상하는 자들은 무엇을 기대하게 되는가 하면 내가 그와 같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참 모습을 볼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2절을 보면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Dear friends, now we are children of God, and what we will be has not yet been made known. But we know that when Christ appears, we shall be like him, for we shall see him as he is.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나타나시며, 즉 다시 오시게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아 질 것입니다. 본질적으로가 아니라 그분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그분에 합당한 신부로서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때에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 그대로를 볼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대합니다. 그분의 참모습 그대로 보게 될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땅에 계셨던 예수님, 역사 속에서 말하는 예수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이며, 고운 풍채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신 자들은 주님의 기도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기 때문에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그분이 가지고 계신 것들과 그분이 주실 수 있는 것들로 위로가 되며, 그분의 영광을 더욱 보기를 흠모하며, 그분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을 기다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우리는 완전히 그와 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 기도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자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보기를 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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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 박경호 목사 Ph : 423-645-7910 Email : pkrain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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