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lY9fEFk2jD0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말씀에 대하여 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첫 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성경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짧은 말씀이지만 이 안에는 엄청난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 짧은 말씀 속에 담겨진 내용들을 살펴 이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깨달아 온전히 믿으려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 이 구절은
단순히 성경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세계관, 그리고 우리 존재의 근원 자체를 떠받들고 있는 거대하고 장엄한 네 개의 기둥과 같습니다. 이 네 기둥 위에 우주가 세워졌고,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이 짧고 군더더기 없는 한 문장
안에, 인류가 던져온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료한 답변이 담겨 있습니다. '언제'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가? '누가' 이 모든 것을 시작했는가?
'무엇을' 만드셨는가? 그리고 가장 경이로운
질문, '어떻게' 만드셨는가? 하는 내용들이 다 담겨 있는 경이적인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네 개의 기둥, 즉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네 단어를 하나씩 짚어가며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볼 것입니다. 각
각의 단어들의 의미를 통하여 우리는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태초의 창조 능력이 영혼이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었던 우리에게 그리고 여전히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구원의 능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기둥인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기둥인 태초에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시간의 출발점 가리키는 말로
이 단어는 단순히 아주 오래전에 라는 막연한 과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인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시간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친히 여셨음을 선포하는 위대한 시작점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이 단어는 빼레쉬트 라고 불립니다. 빼레쉬트는 '~에'라는 뜻의 전치사 '빼'와 '시작', '근원', '머리'라는 뜻의 명사 '레쉬트'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시간이 막 흐르기 시작한
바로 그 출발점 즉 시간의 원점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영원이라는 무한한 차원과 우리가 경험하는 역사라는
유한한 시간이 만나는 바로 그 접촉점 입니다. 이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라는 말씀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태초에 라는 헬라어는 엔 아르케 인데 이 엔 아르케와 창세기 1장 1절의 베레쉬트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태초에인 빼레쉬트는 시간상 창조와 함께 비로소 시작된
물리적 시간의 기원을 말합니다. 이와는 다르게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인 엔 아르케는 시간이 흐르기 이전, 창조 이전의
영원한 차원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경주와 스톱워치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심판이 총을 들고 서 있는 영원한 시간이 바로 '엔 아르케'입니다. 그곳에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탕!"
하고 총을 쏘는 순간, 스톱워치의 숫자가 0초에서부터
째깍거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0초의 순간, 시간이 비로소 출발한 그 원점이 바로 '빼레쉬트'입니다. 흥미롭게도, 구약성경의 70인역 헬라어 번역본은 이 '빼레쉬트'를 '엔 아르케'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는 시간의 시작점이라는 히브리어
원문의 섬세하고 역동적인 의미를 완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기둥 '태초에'는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
속에 거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친히 시간의 문을 여시고 모든 것을 시작하신
분이심을 말입니다. 이제 이 위대한 시간의 무대를 여신 주체가 누구인지, 두 번째 기둥으로 나아가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 기둥은 누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하나님이' 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의 주체입니다. 모든 역사의 출발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누가 이 모든 것을 시작했는가?" 세상의 신화와 철학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지만, 성경은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그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엘로힘 입니다. 이 이름에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어
어원인 엘로힘은 '권세 있다', '힘세다'라는 어원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권세
있고 힘 있는 뛰어난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엄 복수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문법적으로 '엘로힘'은
복수형 명사입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동사는 항상 단수형을 씁니다. 이것은
일부 비평가들의 주장처럼 다신론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고대 근동에서는 대상의
권위와 중요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하기 위해 단수를 복수형으로 표기하는 장엄 복수라는 수사법을 사용했는데, '엘로힘'이 바로 그 용례에 해당합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엘로힘'이라는 복수형 주어에 이어지는 동사 '창조하시니라'(빠라)가
단수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문법적으로 창조의 주체가 한 분이심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 사실을 집요하게 강조합니다. 총 31절로 이루어진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주체인 '엘로힘'은 무려 32번이나 등장하여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주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하나님의 여러 이름 중에 특별히 '엘로힘'이라는 이름으로
창조의 서사를 시작할까요? 성경에는 자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관계하시는 인격적인 이름, '여호와'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도적으로 '엘로힘'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창조가 언약 관계 이전에 있었던 절대 주권자의 초월적 행위임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전능하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권세와 통치권을 먼저 확립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분은 자신의 백성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시는 '여호와'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엘로힘' 하나님이 창조의
유일한 주체라는 사실은 곧바로 그분의 절대적 소유권과 통치권을 증명합니다. 내가 만든 물건이 내 것이듯,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 우주는 당연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의 경배와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엘로힘'이라는 이름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로운 사역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엘로힘' 자체가 삼위일체를 직접 지칭하지는 않지만, 바로 다음 구절인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께서 수면 위를 운행하시고, 1장 2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대한 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었습니다. 이제 이토록 위대하고 전능하신 주권자
'엘로힘'께서 과연 무엇을 창조하셨는지, 세
번째 기둥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세 번째 기둥인 '천지를'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광대하고 완전 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과 발로 딛고 선 땅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물질과 공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전 우주를 의미합니다. 원어 성경은 이 부분을 "그 하늘들을 그리고 그 땅을"이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하늘'이 복수형으로
쓰인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했던 새들이 나는 하늘, 해와
달과 별이 있는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모든 공간까지 포함하여, 하나님의
창조 영역에 예외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결국 '천지를'이라는 이 선언은 두 번째 기둥에서 확인했던 하나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확증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연히 생겨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엘로힘'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 거룩하지 않은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우리의 직장도, 우리의 가정도, 심지어 우리가 가장 숨기고 싶은 마음의 골방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거룩한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영역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창조의 '언제', '누가', '무엇을'이라는
세 기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가장 경이롭고 우리를 구원의 신비로 이끌 마지막 네 번째 기둥, '어떻게'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살펴볼 단어는 창조하시니라에 대하여 입니다. 이것이 중요함은 '창조하시니라'라고 번역된 이 하나의 동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의 본질과 우리를 향한 구원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시니라 라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빠라입니다. '빠라'는 보통의 '만들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아주 특별한 단어입니다. '빠라'는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새롭게 존재하게 하는 무부터 유로의 절대적 창조 행위만을 가리킵니다. 성경 전체에서 '빠라'라는 동사가 창조의 의미로 사용될 때, 그 주어는 놀랍게도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사람은
기존의 재료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거나 빚을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빠라'의 행위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적인
행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묘사할 때 여러 동사를 사용하는데, 그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사용된
단어들은 네 개가 있는데 첫째는 빠라이고 둘째는 아사 이고, 셋째는 야차르 이고 넷째는 빠나 입니다. 비유하자면, '빠라'는
텅 빈 공간에 섬광처럼 캔버스와 물감 자체를 존재하게 하는 기적입니다. 반면 '아사', '야차르', '빠나'는 그렇게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아름답게 빚고, 계획에 따라 건축하는 예술가의 작업과 같습니다. '아사'는 궁창을 만드시고 해와 달을 조성하신 것처럼 기존의 것을 새롭게 정리하고 만드실 때 사용됩니다. '야차르'는 더욱 섬세한 기술을 강조하는데,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정교하게 빚으셨을 때 바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빠나'는 건축의 과정을 의미하는데,
창세기 2장 22절에서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세우고 만드시는 장면에 이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이 절대적 능력의 동사 '빠라'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설명할 때 똑같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51편 10절을
보면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pure heart, O God, and renew a steadfast spirit
within me. 다윗은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65장 17절을
보면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See, I will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 former
things will not be remembered, nor will they come to mind.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여 구원을 완성하실 때 바로 이 '빠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낡은 것을 조금 수리하고 개선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로
인해 아무런 소망도 가능성도 없는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과 은혜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재창조 사역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전 것이 지나간 자들이며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또 하나의
새로운 그리고 이제는 최종적인 창조인 것입니다. 낡은 집을 수리하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흔적을 남깁니다. '빠라'의 구원은, 죄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된 빈터 위에, 하나님께서 기초부터 다시 놓으시고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건물을 세우시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이라는 네 개의 견고한 기둥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간을
여신 '태초에',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신 '천지를', 그리고 무에서 유를 만드신 기적의 '창조하시니라'. 이 네 기둥은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증거합니다. 바로
온 우주를 '빠라' 하신 그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오늘 죄와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우리를 동일한 능력의 '빠라'로 구원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시는 나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