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vfFA0xfzW10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목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회개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에서 벗어나 건져 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 성경은 특별하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를 통하여 그리고 문법적으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우리는 로마서 13장 11절을 통하여 보게 되는데 로마서 13장 11절을 보면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And do this,
understanding the present time: The hour has already come for you to wake up
from your slumber, because 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시기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의 때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가 지금 어느
때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초림 이후 승천하신 후에 다시 오실
재림을 기다리고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즉 곧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다음에 나오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웠음을 인식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가 집중하여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입니다. 영어 NIV 성경 에서도 우리의 구원이 가까웠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는 그 구원이 우리에게 가까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면 우리의 구원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의미가 강해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이란 의미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을 구원에 대한 이미지와 내가 경험하게 될 구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의미는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고 이제 세상의 모든 수고를 그치게 되고 지복의 상태 속에서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즉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의미로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구원이 가까이 있다 우리에게 라고 말하는 이유는 구원을 개관적인 의미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구원은 우리 밖에 있는 구원으로 우리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그 구원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고, 성취되어가고
있으며 완성되어 가고 있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다름이 있는데 우리의 구원이란 모든
것이 끝이구나 라는 안도와 평안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져오는 우리의 구원이 가까웠으니 이제 마음을
놓고 염려하지 말고 좀 쉬어라 라는 의미가 됩니다. 바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의미 속에서 이 구원은 우리의 목표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루고
성취하고자 하는 구원으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곧 끝날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참자 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닙니다. 구원
그것이 가까이 왔으니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입니다. 더욱 힘을 내어 끝까지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힘을 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너희가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의미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구원의 확신 교리를 부인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 교리를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 카톨릭입니다. 카톨릭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으며, 확신해서도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죄라고 가르칩니다. 카톨릭이 이러한
교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에게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선행의 결과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은 죄를 사함 받는
고행 성사를 통하여 받고, 성찬에 참여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입되어 준비가 되며 이에 따른 인간의
보상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이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카톨릭의 술수가 있는데 자신의
교인들이 구원 받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며, 미사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에서 성찬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지속될
때에 구원이 유지되기 때문에 누군가 구원의 확신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행위가 지속될 때일 뿐이며,
그의 구원이 확정적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의미에서 그 구원이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보면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 즉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이 어떤
이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미련한 이야기처럼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을 자들이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사건이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일이라고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은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지금 받고 있는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구원을 미래에 받을 어떤 것이거나 아직 받지 못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성경이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사항들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하여 문법적으로 다르게 사용하는데 어떻게 다르게 사용하는가 하면
시제를 각기 다르게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과거 시제로 사용합니다. 둘째로는 현재 시제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미래 시제로 사용합니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고,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한 사건에 대하여 과거에 일어난 일로 그리고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로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로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각기 다른 시제를 사용하여 구원을 설명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먼저 구원에 대하여 성경이 과연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성경 구절을 통하여 증명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구원에 대하여 세 개의 시제를 함께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Very truly I tell you,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judged but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예수님께서 진실된 것을 말씀하시는데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증언하십니다. 한글 성경은 시제에 대하여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을
보면 명확한데 첫째로 영생을 얻었고 라고 할 때에 이는 영생을 현재 소유한 것입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것은 구원을 받은 증거입니다. 구원의 현재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영어 성경에서 이는 미래의 사건으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미래의 사건이고 구원 받은 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셋째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는 과거의 사건으로
이미 일어난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구원을 세개의 각기 다른 시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왜 이러한 시제를 사용하여 구원을 설명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성경이 구원을 받았다 라는 것으로 과거의 사건으로 표현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죄책이라고 표현합니다. 누구나 죄를 지으면 형벌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죄책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알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 1절을 보면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며, 죄책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코
정죄 즉 죄인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절인 로마서 8장
2절을 보면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who gives life has set you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할 때에 해방하였다는 단어는 부정과거 시제를 사용하는데 이는 과거에 이미
끝나버린 사건을 의미하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동작을 나타나는 동사 시제입니다. 이러한 시제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 받았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나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고 나는 이제 모든 죄책에서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라는 시제와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구원을 현재 시제 즉 받고 있는 상태로 표현하는 이유는 타락하여 범죄한 자의 후손인 우리에게 남아 있는
죄의 세력과 죄의 오염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죄책에서 자유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죄의
오염이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으며, 우리의 육신에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지만 죄를 짓고 있는 것이며, 죄의 유혹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아니라 죄에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며, 죄와
싸우는 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에 우리의 옛사람이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더 이상 죄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며, 우리를 자신의 뜻대로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떳떳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에 양심이 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참회는 사단이 미워하며 죄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하는 것은 죄를 이기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죄가
죄의식을 느끼지 말라고 하는데 느끼고 회개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죄를 자각하며 회개하는 것은 죄의 지배를 벗어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서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지만 죄는 우리에 대하여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을
보면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My dear children, I
write this to you so that you will not sin. But if anybody does sin,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Jesus Christ, the Righteous One.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말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우리의 대언자를 통하여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죄의
세력과 오염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나며 그리하여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날마다
이루어가고 있는 구원입니다. 셋째로 미래 시제로서 구원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완성적인 구원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Not only so,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our adoption
to sonship,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이라는 말은 죄책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양자 될 것은 우리 몸의 속량 즉 우리의 육체가 죄 없는 몸을 입게 될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28절을 보면 [히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Just as people are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so Christ was sacrificed once to take away the
sins of many; and he will appear a second time, not to bear sin, but to bring
salvation to those who are waiting for him.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한 죽으면 끝이 아니라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즉 재림시에는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대하여 미래 시제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가? 에 대하여 성경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구원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구원 받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그렇다는 것입니다. 죄책의 문제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의 세력과 죄의
오염에 대하여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으며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우리 몸은 변화될 것이며, 우리는 영화에 이르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죄가 없는 몸으로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로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