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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친구들과 함께 신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토론하며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누었던 문제들 중 하나가

방언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왜 이것이 이슈가 되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또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간의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으로 총신 측 지금 합동이라 불리는 교단은 방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가 가끔 강도사나 목사고시 때 시험관에 의해 질문 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방언이 있다고 응답했던 분이 시험에서 탈락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목회 현장에서는 방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리고 그 교단의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방언을 인정하면

안되었습니다. 당시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본문 속으로

          본문은 신학적으로 교단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본문입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은사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도 특히 방언과 예언이라는 은사를 다루기 때문인데 해석의 큰 차이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예언이라는 부분에서는 그 차이가 심하게 나타납니다. 예언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예언에 대한 정의와 그것이 당시에 국한된 즉 제한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인가? 아니면 오늘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사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우선 본문을 짧게 요약하면 바울은 전장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사랑이 모든 은사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비교합니다. 이 비교를 통하여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방언이 뒤쳐지는 은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교의 중심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결론에 가서 바울이 다시 내리는 은사의 정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 예언은 방언을 압도한다는 것이지 방언이 불필요한 은사라는 요지는 아닙니다. 모든 것이 성령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기에 귀한 것입니다. 단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있어서 예언은 방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용 이해

1.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은사를 사모하라 전 장의 사랑에 관한 내용을 이어갑니다. 모든 은사의 기초는 사랑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은사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아무리 좋은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랑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은사는 은사로써의 올바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2.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 이 부분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예언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은사 중심적인 교회는 본문에서의 예언을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생각 할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을 예언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미래부터 먼 미래에 까지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하는 것이 얼마나 솔깃한 이야기입니까. 이 본문을 그렇게 이해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첫째로는 성경적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입니다. 옛날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듯이 특히 모세의 경우, 그렇다면 지금도 그 예언이 다른 말로 직통 계시가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다면 성경은 필요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두 하나님께 직통 계시를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또 다른 성경의 존재가 가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모슬람이나 다른 이단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이 그들의 경전이 되어 성경은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둘째로는 아주 중요한 것인데 바울이 예언이라고 말하는 본문은 계시를 나타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예언은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사람들을 강하고 튼튼하게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위로하는 것이라는데 앞에서 말한 예언과는 좀 다릅니다. 이 본문은 오히려 예언이 성경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에 더욱 가깝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기서의 예언은 신비적인 계시로써의 예언이 아니라 말씀을 통한 세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여 성도들에게 훈육하여 믿음 안에 온전히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예언입니다.

3.     방언과 예언의 차이점

                                 

    하나님께 말함                           사람에게 말함

    영으로 비밀을 말함           교회의 덕을 세움

    자기 덕을 세움                         권면하기 위함(격려)

    통역이 없으면 유익이 없음 안위하기 위함(위로)

4.     6– 11절 방언이 가지는 연약함 방언은 하나님께 함으로 알아듣지 못함 그리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 그래서 개인의 덕을 세우는 은사임.

5.     교회를 세우는 영적 은사에 뛰어나기를 사모하라 바울의 결론이다. 은사는 사랑에 근거해서 사용하며 사용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힘들게 하는 모든 은사는 그 은사로써의 가치와 존재 이유가 상실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묵상

1.     사도 시대 당시의 방언의 은사와 오늘 현재 교회 안에서 행하여 지는 방언의 은사는 같은 것인가? 만약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2.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를 어떻게 개발시킬 것인가?

3.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4.     사도 시대에 나타났던 예언의 능력들이 오늘날에도 나타나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 (13:1-3)

생활 속으로

1.     사랑에 기초한 은사 활용을 묵상하며 먼저 내게 주신 은사들이 무엇인가를 찾고 그 은사를 나는 활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또한 어떻게 그 은사를 더욱 개발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

2.     교회의 덕이 되는 삶이 되기 위해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나의 모든 일은 교회에 덕이 되며 교회를 세우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에 해가 되는 일들인가? 교회를 위해 내가 오늘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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