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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QT
2012.02.08 05:54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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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속으로

          

          권위에 대한 논쟁 후에 악한 농부의 비유 그리고 오늘 말씀은 세금에 대한 논쟁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수난 당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종교지도자들과 계속해서 붙었던 논쟁들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내용은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가요 아니면 내지 말아야 할 까요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용 이해

1.     책잡다 오늘 내용의 첫 구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각각 선발해서 예수님께 보냅니다. 아마도 당시에 말 빨이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선택되어 예수님께로 왔을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온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책 잡기 위해서 입니다. 책잡다라는 것은 남의 잘못을 트집 잡아 말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이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느끼는 감정은 죽이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시비를 걸어 보지만 연속으로 깨지기만 하고 백성들 앞에서 망신만 당할 뿐입니다. 그래도 당시에 백성들 앞에서 높임깨나 받았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런 자존심 상하는 문제를 그냥 두고 볼수 없어 서로 다른 두 당 연합전선을 계획한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남의 약점만을 캐내려는 이들은 마음은 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이들의 눈을 멀게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오만함과 독선으로 가득차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완악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남을 책잡으려는 눈이 존재하지 않나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가 남을 비난하고 멸시하고 흠잡으려는 마음과 눈으로 가득차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타인의 장점을 보기 보다 약점에 시선이 머물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2.     적과의 동침 예수님을 무너뜨리러 온 두 당을 보면 서로가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 물과 기름처럼 융화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정통 유대주의자들로 경건과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민족주의적 색채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로마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헤롯당은 로마에 의해 분봉왕으로 세움을 입은 헤롯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로마 편에 들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려는 자들입니다. 이런 배경을 보면 이들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 입장에서 보면 헤롯당은 매국노이며 종교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입니다. 헤롯당의 입장에서 보면 바리새인들은 반란군이 될 수 있는 자들이며 적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연합합니다. 오직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의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 바로 이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이 둘의 적이었기에 이들은 서로 다름에도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느니라 라는 말씀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3.     외식함 두 당원들은 예수님께 와서 온갖 칭찬을 떠벌립니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눈속임이요 거짓이라는 것이 그들이 예수님께 하는 질문을 통하여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런 거짓된 립서비스를 외식함으로 단정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말은 이들 속에 있는 마음과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칭찬하고 있지만 속으로 끝임 없이 저주를 퍼부으며 악한 일을 꾀하기 때문입니다. 이중적인 마음과 행동 이것이 외식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실함이 묻어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과 밖이 언제 같은 그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두 당원들이 예수님을 칭찬한 후에 결정적으로 던진 질문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야 합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보면 세금에 관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쉬운 질문 같은나 사실은 두 당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예수님의 말씀을 책 잡으려고 만들어낸 함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가하다 다른 하나는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되냐 안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대답에 따른 여파가 만만치 않다는데 있습니다. 배경을 좀 이야기 하면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를 칭하는 것입니다. 이 황제에게 모든 백성들은 세금을 내야 하는데 한 데나리온을 내야 합니다. 이 데나리온의 가치는 하루 품삭에 해당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 데나리온은 바리새인들과 열심당이라 불리웠던 민족주의자 즉 로마의 속국에서 벗어나고자 원했던 자들에게는 세금을 바치는 것도 불가한 것이고 또한 더 큰 문제는 이 데나리온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당시의 화폐인 데나리온 동전 앞뒷면에는 이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를 표시하여 알리는 그림으로써 인물 초상과 함께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동전 데나리온의 앞면에는 티베리우스 황제(3:1에서는 디베료 가이사로 표기)의 얼굴과()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시저 아우구스투스”(Tiberius Caesar Augustus, Son of the Divine Augustus) 라는 글이 있고, 뒷면에는최고 신관(神官)“(Pontifex Maximus)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동전에서 드러나듯이,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적(神的)인 존재로 높이고 사람들이 자기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런 우상 숭배에 관한 문제가 들어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자나 혹은 종교지도자들은 이 동전을 소유한다는 것부터 그리고 세금을 낸다는 것 모두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기서 세금을 내라고 하면 이들로부터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예수님은 매국노가 되며 우상 숭배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시면 로마의 지배를 지지하며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헤롯당원들에 의해 바로 반역자로 붙들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이 질문은 예수님을 옭아 매는데 있어서 탁월한 질문인 것입니다.

5.     예수님의 대답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두 당원들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해놓고 이제 올무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답을 재촉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갑자기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이에 그들이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대뜸 묻습니다. 이 그림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말을 듣고 하시는 말씀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뜻이 무엇일까요? 무엇이기에 두 당원들은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놀라서 그냥 떠났을까요? 본문의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의 핵심내용은 세금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금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은 먼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합니다. 즉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우상적 상징물이라도 그것이 그의 것이기 때문에 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땅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세금도 이런 차원에서 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을 끝이난것이 아니라 더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합니다. 이것은 질문에 대한 답에서 더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자에게 해야 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 권력자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속에 들어 있는 의미밉니다. 좀 쉽게 말하자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그의 통치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배를 받고 있고 그의 권세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통치아래 그분의 돌보심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분에게 돌려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금은 통치권의 인정입니다. 가이사의 통치에 있음으로 그에게 세금을 내야합니다. 그와 마찮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있음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활 속으로

1.     타인을 보는 눈과 마음은 정결하고 순수한가?

2.     남을 속이는 속임의 입술과 거짓의 눈짓을 하지는 않으며 항상 정직한가?

3.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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