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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tGhQzffy9eE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기념하며,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부활에 대하여 수십 번에 걸쳐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부활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에 대하여 또는 우리 주님의 부활의 성취와 그 결과 그리고 현재적 부활의 의미 등에 대한 내용들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만 우리 주님의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본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초대 교회에 사활을 거는 문제였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정수와 같은 것이며, 그래서 초대 교회 역사 속에서 특히 초기 사도들의 설교와 성경 속에서 부활은 복음의 정수로 선포되었고, 복음이 선포될 때에 부활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서도 그 중심에 우리 주님의 부활이 핵심적 설교의 요지로 표현되고 있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32절을 보면 베드로는 그의 설교 가운데 우리 주님의 부활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으며, 그분이 부활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고 다시 살아나셨고 이 일에 자신들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계속 되는 설교 가운데 핵심 부분을 보면 사도행전 236-37절에서 우리 주님의 부활이 어떠한 일을 일으키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확실히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활의 복음을 들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리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며 탄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부활은 구원 얻는 믿음에 참여 하게 하는 복음의 핵심이요 정수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부활에 대하여 바울의 논리적 증언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부활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4절을 보면 바울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다고 합니다. 한글 성경의 문맥적 해석에서 먼저 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우선적으로 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너희에게 먼저 전하였다고 해석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그러나 먼저 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다른 이들 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중요성의 의미에서 앞선 것이며, 최우선적인 고려 사항인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장 우선에 두고 가장 중요한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주님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가 죽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이미 성경에서 말씀한 예언된 죽으며,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죽으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이 사실이며, 확실한 것은 그가 묻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장사지낸바 되신 분으로 장사 지냈다는 의미는 그가 죽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가 죽었기에 그분은 장사지낸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 또한 성경에 미리 예언 되었던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복음의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장 중요하며,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초대 교회에서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이었으며, 설교의 주제이고, 복음 전파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그리스도인 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우리 주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되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장사지낸바 되었고, 그러나 그가 삼일 만에 다시 성경 대로 살아나셨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이러한 지식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며, 믿는 것입니다. 마음에 이러한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주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건 즉 실제 일어난 사건 만이 아니라 그 부활에 담겨진 모든 세부적인 내용 또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부활에 담겨진 모든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본 뒤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집중하려는 것은 초대 교회에 그리고 모든 시대에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믿는 믿음의 본질에 속하는 내용으로서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왜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야만 하셨는가? 부활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또한 부활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2 27절 말씀을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구약 성경 즉 시편을 인용한 말씀으로 다윗의 예언적 시입니다 이 시는 시편 1610절의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다윗을 가리켜 예언자라고 하며, 이 시의 내용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그는 죽었고 그 묘실이 당시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내 영혼이 가리키는 분은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그가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썩임을 당하지 않도록 내버려 둠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활은 이미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일천여년전에 다윗을 통하여 그가 부활하실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하셔야 하는 이유의 첫번째는 바로 그분이 부활하실 것이 예언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이 예언 되었다는 것은 그분을 기록한 성경은 진리이며, 그분은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부활은 예언의 성취라고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하신 모든 예언의 말씀과 그분의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변함이 없으시며, 반드시 성취로 그 결과가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주님의 부활은 사도행전 22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성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이 말은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왜 우리 주님의 영혼이 음부에 버린 바되는 것 즉 죽음의 영역에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그분의 죽으심은 자신의 죄를 위한 죽음이 아니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을 죽으신 것이기 때문에 사망이 그에게 왕 노릇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2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살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을 살리셨다고 하는데 원문의 의미는 일으키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영어 성경에서 raised라고 번역한 이유가 일으키다 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NIV에서는 raised him from the dead 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from the dead 라는 단어는 삽입된 말로 원문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 그를 일으켰다 라는 뜻입니다. 사망의 고통이라고 할 때 이는 출산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죽으셨지만 그 사망으로부터 생명을 출산하시기 위한 사투로부터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유롭게 즉 해방하셔서 생명으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도 사망으로부터 벗어난 자는 없습니다. 누구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망이 우리 주님을 붙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사망은 결코 우리 주님을 붙잡지 못하였으며, 사망에 매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그분이 죄가 없다는 사실은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왜 사망은 죄가 없는 자에게 왕 노릇하지 못합니까? 왜냐하면 사망은 오직 죄에 대하여만 왕 노릇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55-56절을 보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합니다. 사망이 승리한다는 것은 죽음을 아래 두는 것입니다. 사망은 생명 있는 것들을 쏘아 죽음에 놓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생명에 속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묻습니다. 사망아 너의 죽음의 권세로 인한 승리가 어디 있으며, 네가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 너의 쏘는 것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이다. 이 말은 죄는 율법을 이용하여 힘을 얻어 정죄합니다. 즉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에 의하여 죄인으로 정죄 당하며, 그 정죄 당함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은 죄가 없는 곳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사망이 그를 붙잡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입니다.

        우리 주님이 부활하셔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왜 주님은 죽으셨는가 하는 문제 즉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죽음을 그분이 죽으셨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죽음을 당하신 것은 그분의 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에게 왕노릇함이 아니며, 우리의 죄로 인하여 그분의 육체에 잠시나마 사망이 왕노릇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은 결코 우리 주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으며,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시며, 우리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이 왜 부활하셔야만 했는가 하는 것은 그분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자신만을 위한 부활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함께 그분 안에서 참여하게 하심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점입니다. 로마서 64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다는 말은 우리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연합이 되는가 하는 부분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 결과 그분이 우리 안에 우리가 그분 안에 있는 영적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연합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우리의 죽음을 죽으신 그분 안에서 그분이 장사될 때에 함께 장사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 주님을 성부 하나님의 영광 즉 그분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음에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때에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을 일으키실 때에 그분 안에 있는 우리 또한 함께 일으키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우리가 결코 스스로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인간도 사망의 권세에서 스스로 벗어난 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망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와 함께 연합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부활의 유일한 방식입니다. 이 말은 또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와 영적 연합에 이르지 못한다면 결코 생명의 부활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동안 사활을 거는 문제는 이 땅의 일들이 아니며, 이 땅에 무엇을 소유하며, 육체적인 만족 속에 살았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고 있으며, 그 상태 안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 하나님에 의해 우리 주님과 지금 연합된 관계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며,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이 우리의 생전에 오시지 않는다면 육체적이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신자에게 사망이 왕노릇하기 때문도 아니며, 사망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은 우리 주님에 의하여 그 승리가 패배로 끝이 났으며, 그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에게 일어났다면 그와 함께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망은 지금 우리 눈에 왕처럼 보입니다. 죽음의 권세는 모든 자들을 위협하며 지배하려 합니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아닙니다. 그가 쏘는 죄를 이미 우리 주님께서 사해 주셨으며, 우리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사망이 우리에게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26절을 보면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원수 마지막 원수,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이미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은 우리에게 그 힘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우리의 눈에는 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사망은 그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이신 우리 주님이 사망을 완전히 멸하시며, 영생을 우리에게 우리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부활하셔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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