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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4.10 18:10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니라

YC
조회 수 3665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BiFmDzoath8


오늘 우리가 함께 듣게 될 성경 말씀은 주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03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는 마르다라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마르다라고 하는 어떤 여자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영접합니다. 누가복음 1039-40절 말씀을 보면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을 초대한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지만 힘에 부쳤습니다. 인원도 많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려고 하니 혼자서 준비하기는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여동생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을 뿐 자신을 도무지 도우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가서 마리아에게 명하여 자신을 도와 주라고 말씀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리아가 좋은 쪽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대하여 우리는 바른 성경읽기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에 대하여 인본주의적인 해석을 하며, 이해하려 합니다. 인본주의적이란 이 말씀을 사람 중심적으로 또는 사람의 어떠한 특정 행위나 말 중심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기시키는 문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며,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이렇게 하자, 또는 저렇게 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마르다에 초점을 맞추어 마르다의 봉사에 대한 칭찬이나 또는 마르다의 봉사와 그의 불평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해석함으로 열심이 봉사하고 섬기자, 그러나 불평하며 섬기지 말자 라는 해석으로 이 말씀을 봉사와 그 봉사의 자세나 태도의 문제로 말하는 것은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더불어 이 말씀의 중심 인물을 그리스도에게서 사람 마르다에게로 옮기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마리아의 행위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며, 결론을 내는 것도 문제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쪽을 택하였고,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라는 결론에도 중심은 사람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편파적으로 한쪽을 완전히 두둔하거나 한쪽을 질책하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핵심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고 계시며,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알리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분이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가?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38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음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이 말은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마르다가 사는 동네인 베다니입니다. 그때 한 여자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원문과 영어 성경에서는 마르다가 그녀의 집을 그에게 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분명이 그들이 길 갈 때 입니다. 예수님과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마르다의 초청에서 중심은 그들이 아니라 그로 바로 예수님 한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예수님 한분만 초대한 것은 아니지만 본문에서 중심에는 무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초대한 마르다 입니다. 그녀가 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39-40절을 보면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글 성경은 원문에 비해 뜻이 명확하지 않는데 이 구절이 말하는 내용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예수님께서는 그 집에 들어가시자 마자 말씀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앞에서 마르다가 무리가 아닌 예수님 한분을 자기에 초대한 것처럼 표현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집에 오시는 이유가 바로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마르다도 이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르다의 초대에서 예수님 한분으로 묘사하며 그분이 그녀의 집에서 바로 하시는 일이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녀의 초대에 응하였으며, 그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르다도 이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르다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님의 의도에 대하여 본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39절 말씀을 보면 마리아에 대하여 나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들었다는 말은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듣는 행위가 중요합니다. 발 아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마치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육 현장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3절을 보면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는 문장이 바로 발 아래에서 말씀을 듣다라는 표현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로써 말씀을 훈련하고 익히고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여자는 이런 배움의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랍비들은 여자 제자를 두지 않았으며 여자와 말을 하는 것도 수치스럽게 여길 정도였기 때문에 지금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는 제자로써의 모습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혁명적인 것입니다.

        39절에서 앉아 라는 단어가 수동형으로 앉혀 진 것으로 해석이 된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으로 부터 앉혀 져서 말씀을 배우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당시의 사회적으로 또 관습적으로 무시되어졌던 여인들에게 들어가게 되고 그 여인이 예수님의 제자로써 받아 들여 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의 이야기가 한번 등장합니다. 그처럼 여자들은 천시되고 무시되었던 시기에 말씀이 사회적 관습과 통념을 깨 버린 것입니다. 남녀 노소,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말씀은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사람들에게만 전해지거나 가르쳐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서 복음의 부르심에 누구도 제한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자신의 발 아래로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세 시대 왜 교회에서 성경에도 없는 면죄부를 만들어 돈을 받고 구원을 팔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당시에 성경은 사제들만 읽을 수가 있고 돈 많은 귀족들만 폼으로 소유할 수 있었던 책입니다. 성경도 라틴어로 되어 있고 예배도 라틴어로 집례하여 의미도 모르고 뜻도 모르고 그냥 앉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니까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이 베스트 셀러라고 합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책입니다. 그런데 팔리는 것에 비해 가장 많이 읽히지 않는 책이 또한 성경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바로 성경을 읽지 않음이요 또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음의 문제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님은 마리아를 제자 삼아 가르침을 보여 주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들어야 하며 배워야 할 대상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의 또 다른 내용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혼자 일하던 마르다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이 너무 많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40절에 마음이 분주하다고 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사방에서 잡아 당긴다는 뜻입니다. 지금 마르다의 마음은 사방에서 잡아 끄는 상태여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혼란 속에 있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준비하는 일 즉 섬기는 일이 너무나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도록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르다의 마음은 자기를 돕지 않는 마리아가 보기 좋지 않았고 그런 그를 그냥 내버려 두시는 예수님께도 서운하고 그래서 마리아를 명하여 자신을 도우라고 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르다의 요구에 대답하십니다. 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번 마르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이 부름은 책망의 부름이 아닙니다. 두 번의 이름 부름은 연민과 사랑의 감정이 섞인 부르심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며 근심하는 구나 라며 마르다의 마음을 이야기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은 결코 마르다가 섬기는 일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며 근심한다라는 의미는 분주하며 걱정하는 마르다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마르다가 섬기려고 음식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한 봉사 자체가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많은 일에 매달려 염려와 근심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42절을 보면 한글 성경에는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인데 의미는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KJVESV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였는데 10:42 but one thing is necessary. Mary has chosen the good portion, which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한가지만 필수적이다 라는 의미로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그 한 가지를 하고 있는 자가 바로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쪽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르다가 지금 해야 될 일은 많은 일로 마음이 분주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한 가지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뜻으로 이것은 무엇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서 우선 순위가 말씀을 듣고 훈련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본문이 그렇게 이해가 되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읽은 본문 앞에서 등장하는 이야기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이웃이란 약한 자를 돌보아 주고 치료해 주고 필요를 채워 주는 자가 이웃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행함입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내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본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우리의 삶의 분주함에서 매일 우리가 행하는 일상의 일들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우선 순위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되는데 그때 우리가 선택해야 될 최우선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라면 이 본문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를 모든 일에 우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네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며 봉사하며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가 먼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서 해답은 말씀을 먼저 듣고 배워야 하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들어야 합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로 먼저 말씀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 바른 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섬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봉사나 섬김이 몇 년을 가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 이 만큼 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만 두기도 합니다. 봉사는 젊었을 때 하는 것이야 하는 이야기나 다른 어떤 것도 성경이 말하는 바른 봉사요 섬김이 아닙니다. 사람이 알아 주기를 바라는 봉사는 자기 만족입니다. 이만 하면 충분해 하는 것도 봉사가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고 이만하면 이라는 자신의 몫을 채우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도 자기 만족입니다. 젊었을 때 하는 것이야 라는 말도 그만하면 되었다는 자기 만족입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모든 봉사는 자기 만족이나 자기 자랑으로 변질 됩니다. 가끔 이름도 없이 몰래 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말씀이 없으면 자기 만족입니다. 남을 돕기 위해 순수하게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든지 사화에 대한 책임을 다함으로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든지 모든 것은 자기 만족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근거해서 하게 되면 자기 만족의 죄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하기 때문에 내가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순종으로 인하여 얻어 지는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얻어지는 기쁨과 자신의 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자기 만족과는 다릅니다. 왜 우리가 먼저 말씀을 배운 후에 행하여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행한 후에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함이요 바르게 행하기 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항상 모든 일에 앞섭니다. 먼저 말씀을 배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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