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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15.09.05 00:21

나를 찬송하게 이사야 43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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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 중 하나는 찬양입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봅시다. 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은 찬양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가장 많이 인용이 되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을 지으신 목적이 이스라엘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종종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고 최고의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만들어 냅니다. 찬양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곳에서 종종 이 구절을 가리고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며 찬양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찬양에 대하여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주의 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성경이 찬양 할 것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 즉 노래 자체를 하는 것이 지으신 목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은 하려 함이라 라는 말이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닌 선포하다라는 단어이기 때문에 직역하면 그들이 나의 찬송을 계속해서 선포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선포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이야기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버지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하나님의 찬송에 대하여 입니다. 여기서의 찬송은 노래하는 것 차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할 만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 즉 칭찬받아 마땅한 그리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행위에 대하여 칭송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문맥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압제속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칭찬을 받아 마땅한 분이시며 그러한 그분의 행위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며 선포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의 선하신 행위를 그의 칭찬 받아 마땅한 행위를 칭송하며 이야기하며 널리 알리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노래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그분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를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며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2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이사야 43:21절이 말하는 내용과 동일합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들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우리는 찬양하는 행위에 대하여 집중하는 나머지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노래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과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형식이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은 그 형식이 바르고 참된 내용을 담고 있을 때입니다. 형식이 추하고 더럽게 되는 것은 그 형식 자체가 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이 더럽고 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나를 찬송하기 위하여 지으셨다는 말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찬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2절에서 우리가 라는 표현이 결코 아무나 라고 해석되어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자들입니다. 전부터 바라던 이라는 말은 먼저 소망하던 또는 신뢰하던 이라는 뜻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 자녀가 된 자들이 선포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가 아무나 드릴 수 없는 것처럼 찬송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사야 1: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책망을 받고 있는 자들은 예배하러 나오는 자들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왔는데 책망을 받고 있습니까? 책망의 내용을 보면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왔다고 합니다. 보이러 온다는 것의 의미는 수동형으로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이 단어에는 목적이 없고 의미가 없이 나타남을 가리킵니다. 그냥 얼굴 한번 비친 것 뿐입니다. 마치 지나가다 얼굴 한번 비치고 그냥 가는 것과 같습니다. 왜 왔는지 무엇 하러 왔는지 전혀 말하지도 알 수도 없이 그냥 얼굴만 비치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보이러 오는 행위를 누가 요구했냐고 따지십니다. 도대체 누가 너희더러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이며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느냐 라는 것입니다.

        예배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며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셨냐고 물으시는 것은 자신이 하셨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이러 오는 의미 없는 행위를 누가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것이 아니며 잘못된 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이것은 마당만 밟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당만 밟고 가는 것이라는 뜻이 우리는 그냥 살짝 마당만 한번 발로 밟고 가는 것과 같이 흔적만 남기는 것에 대한 책망으로 생각하지만 원문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당만 밟고 간다는 뜻은 마당을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이 마당이 하나님 자의 마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마당을 너희가 짓밟고 있다고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모욕적이 것이며 하나님께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 한다고 온갖 제물과 예물을 가지고 성전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자신의 마당을 짓밟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예배는 그 대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서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예배 가운데 임재 하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리고 여기 계심을 인식하지 않고 또한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지 않고 예배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짓밟으며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신가운데 그리고 그분의 임재에 대한 확신 가운데 드려지듯이 찬송 또한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 가운데 드려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장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당에 있다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따라 부른다고 해서 찬송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의 형식은 내용을 그 기준입니다. 참된 찬송은 항상 참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찬송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43:21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목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 대로 살고 있는가를 또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의 찬송을 부르기 위해서 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고 있는가? 내가 부르고 있는 내가 즐겨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기뻐하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찬송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찬송할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찬송의 내용을 갖춘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분을 만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옛날 찬송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년 전에 20년 전에 만났던 그 하나님을 지금까지도 그때의 하나님만 찬송한다는 것은 신앙이 퇴보하였으며 믿음이 식어졌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한다는 말은 지속적이며 계속적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찬송은 내용면에서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은 매일 새로운 찬송을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의 찬송이 아닌 오늘의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경험하고 만나며 교통하는 하나님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찬송의 내용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새로운 찬송의 내용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찬송을 부르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일 어떤 찬송을 부를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찬송을 부르시게 하실 것인가를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지으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 목적에 따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힘을 다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그분을 경험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새 찬송이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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