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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26gHvr4HbQ


오늘은 주기도문의 첫번째 간구를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첫번째 간구로써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간구를 가르쳐주십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두서 없이 그리고 순서 없이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은 기도를 내 마음대로 또는 생각나는 대로, 또는 나에게 필요하고 다급한 순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쏟아 내고 맙니다. 마치 인격과 인격이 나누는 대화 가운데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쏟아 내 놓고 자를 뜨는 일방적인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때에 기도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는데 기도란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삶의 문제로 고통을 받거나 어려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도의 중심도 아니고 기도의 핵심도 아닐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를 가르치고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전체에서 중심은 우리의 필요나 부족에 대한 청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번째 간구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하나님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의 내용은 그렇다 해도 그 다음의 내용은 우리의 필요에 대한 개인적 청원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즉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시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십시오. 악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라는 것은 우리를 위한 기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지 단순히 내 삶의 유익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도가 그것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가 내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가는데 그리고 믿음과 신앙을 위해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 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기도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현실적 삶의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면 기도를 통하여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참된 기도는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할 수 없는 은혜를 약속한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피조물의 최상의 행복 속에서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잘못 이해하는 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라,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라는 이 모든 말은 우리가 마치 하나님을 위한 소모품처럼 그리고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또는 그렇게 소모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무 하신다 한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평생을 우리를 옳아 매며, 평생 우리를 우려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복음을 모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섬김이나 헌신이 있어야만 행복하시거나 기쁨이 충만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원토록 행복하시며 기쁨이 충만하십니다. 오히려 그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 주심으로 인해 자신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으로 통하여 구원을 이루심으로 그 구원에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취해 가는 구원의 완성 가운데서 우리의 모든 성화의 결과는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며 썩어질 육체가 주는 모든 더러움과 불결함에서 구원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더욱 굳건해지고 양심은 자유를 얻게 되며, 마음은 평안와 위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에 복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서 61 3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는 대신하여 라는 말이 세번이나 등장합니다. 첫째는 슬퍼하는 자에게 재를 대신하여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씌워주라고 합니다. 둘째는 슬픔을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을 주라고 합니다. 셋째는 근심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을 주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재앙으로 인해 슬퍼하여 재를 뒤집어 쓰고 있는 자에게 그리고 슬픔으로 고통하는 자에게, 그리고 근심하는 자에게 이 모든 재앙과 불행에서 이들을 바꾸시어 오히려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과 행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슬픔과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오히려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습니까? 그들에게 슬픔을 제하시고 근심을 제하시며 오히려 아름답게 하시며, 기뻐하게 하시며, 그 입에서 즐거움의 소리를 내게 하심으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떻게 드려지게 되는가를 보여주는데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은혜의 풍성함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흘러 들어가서 그들이 아름답고 즐겁고 기뻐함으로 찬송이 흘러 나오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고 높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곧 우리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요 만족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가득할 수록 우리의 상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이 가득히 우리에게로 부어져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우리 안에 넘치게 되기 때문이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정의하면 하나님은 피조물의 최고의 행복 속에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다하십니다. 그러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69절을 보면 여기서 먼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거룩히 여김을 받다 라는 말은 수동태로써 받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스스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가 무엇을 거룩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이 동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 지는 것입니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름은 누구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라는 말 또한 이름이란 그 존재 자체를 가리켜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라는 의미가 되는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여김을 받다 라는 단어가 수동형으로 직접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이 거룩해 지십시오 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한 분이시며 이미 충분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해 지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145절을 보면 이미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할 때에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치 자신이 돌리는 영광으로 하나님이 더 영광스러워지시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광이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에게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결핍이 있거나 부족이 있다는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을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충만하며 모든 것이 충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에게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를 더해서 하나님이 더욱 영광스럽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착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해지기를 원한다는 기도는 왜 필요하며 우리는 왜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가? 주님은 왜 불필요한 일을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기도를 우리가 드리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송영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의도는 우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참여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조금도 더 거룩해지거나 하지 않지마는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피조물이 행복해지며 피조물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의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얻게 되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영광을 구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으로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라는 간구의 의미는 첫째 무엇보다 먼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르게 알게 하여 주옵시며 여기에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는데 첫째는 주님을 바르게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찬송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엉뚱한 대상에게 내가 생각하는 것에게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거룩히 여기고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주님의 전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의와 자비와 진리가 환히 빛나옵나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거룩히 여기고 경배하고 찬송하게 해 달라는 청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거룩히 여기며 그것에 대하여 불평이나 원망이나 또는 교만이나 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으로 자신의 영광과 만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는 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도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셔서 주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명예롭게 되고 찬양을 받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도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나 때문에 하나님이 더럽혀지거나 불명예스럽게 되지 않게 하며 오히려 찬양을 드리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바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기도 속에 담긴 내용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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