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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Foa2BCssUvg


성경을 읽다 보면 재미난 점이 하나님께서는 늘 동일한 패턴을 가지고 일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앞서 살펴본 바울의 경우와 살펴볼 모세 그리고 베드로의 경우가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수학 공식처럼 우리를 어느 틀에 맞추어 대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화에 따르면 프로크루테스는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로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들이 경험하고 체험한 하나님은 다양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체질과 형질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의 연약함에 따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게 그를 성장시키고 변화시켜 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안정형의 장점은 평화주의자이며 조용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늘 따뜻하며 친절하고 부드럽습니다. 이것이 이 기질이 가지고 있는 장점입니다. 반면에 이 기질이 가지고 있는 단점은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갈등을 회피하길 원하며 문제나 어려움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인생에는 늘 새로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성향을 가진 아브라함을 어떻게 변화시키시는지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72-3절을 보면 그 말씀은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메소포다미아 지역의 갈대아 우리에서 살 때입니다. 이 말이 주도형을 가진 자에게는 그래 인생은 모험이야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거야 라며 도전과 모험으로 이 말씀을 삶아 쉽게 떠날 수 있습니다. 또한 사교형의 경우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있는 것을 찾아 다니는 성향 때문에 신나고 재미날 것 같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이것은 큰 어려움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첫째가 두려움 때문입니다. 다시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이들은 떠나라는 말이 힘이 듭니다. 또한 이들의 게으름도 거기에 한몫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왜 아브라함입니까? 굳이 아브라함이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아니면 안됩니까? 굳이 갈대아 우르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를 불러낼 필요가 있을 까요? 왜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삼으시려고 하셨다면 왜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안됩니까? 그러면 먼 길까지 올 필요 없지 않았지 않습니까?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은 아브라함만 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누군가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하면 그 사람이 뭔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야 라는 막연한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누군가를 그들의 좋은 조건을 보고 좋은 배경, 탁월한 학문적 우울 등을 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브라함과 그의 주변 사람들과 또한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과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이 많아 지시할 땅으로 가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자식도 낳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 또한 한 통속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부족한 부분이 더욱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겁이 많고 나약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그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음에도 그는 하는 시늉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간 곳은 가나안이 아닌 하란이었습니다. 그것도 창11 31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주어가 누구입니까? 데라입니다. 누가 하란에 가족들을 이끌고 왔냐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입니다. 이 구절과 동일 구절이 창세기 125절을 보면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는 부분입니다. 이때 본문의 주어가 바뀌었습니다 이제야 아브라함이 주어로 등장하게 됩니다. 안정형은 어려운 문제나 하기 싫은 일을 만나면 하는 시늉만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신과 타협하며 쉽게 만족하고 지쳐 주저 앉으며 이만 하면 되었어 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정형을 다루시는 방법은 기다림과 인내입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언제까지 하란에 있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12:5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많은 소유와 사람들을 얻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는 변변치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하란에서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그가 충분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참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할 수 없는 것을 무턱대고 밀어 붙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인격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법이나 힘이나 능력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감정이 없으시고 무턱대고 벌주고 화만 내시는 분이 아니라 설득하시는 분이 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격자 이시라는 것은 그분은 우리를 조종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로보트 처럼 조종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만 잘 듣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윽박지르고 위협하고 협박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양육할 때 윽박지르고 위협하고 협박하는 것으로 금방 아이들에게 효과는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식과의 인격적 관계는 포기해야 합니다. 자식이 그런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은 그의 인격적 관계로 인한 설득에 의해 순종이 아니라 무서움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격적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 가게 되고 그는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이것은 그의 기질적인 성향으로 문제를 회피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다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에 되고 하나님에 의해 그는 아내를 도로 찾게 되며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어떤 분이신지를 아브라함에게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아브라함이 이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끝내 놓지 않고 붙들고 있던 친척 조카 롯과 헤어집니다. 또한 가나안의 왕들이 전쟁이 벌어지고 그 싸움에 롯과 그의 가족들이 잡혀가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운 군사들을 데리고 싸워 승리합니다. 아브라함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쉽게 두려움에 빠지며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회피하며 도망치려는 그가 전쟁에 나아가 조카 롯을 구해 오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온전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아내 사래를 다시 빼앗기는 등의 문제를 회피하려 여전한 모습을 보이며 아내의 요구로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때 문에 가정 문제가 생기자 아내의 뜻에 맡기는 가장으로서의 위험도 찾아 보기 힘들며 여전히 연약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아들 이삭을 바치는 신앙의 자리에까지 가게 됩니다. 그가 변화된 모습은 22:3절의 그의 행동입니다. 창세기 223절을 보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일어나다는 동사는 히필형으로 이 단어는 그가 그를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자신을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바치라는 어려운 문제와 두려운 일을 앞에 두고 그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음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귀에 안장을 지웁니다.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면 정상은 아닙니다. 앞뒤가 안맞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이라면 그는 하인을 불러 장작을 패게 하고 아들을 깨워 준비시키고 그리고 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안장을 지우고 두 하인과 아들을 취합니다. 그리고 장작을 쪼갭니다. 그의 마음이 지금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장작을 쪼갠다는 동사는 강조형으로 아주 장작을 박살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어떠한 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들고 피하고 싶고 덮어 놓고 모른척 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의 그런 마음이 전혀 그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그렇게 넉 나가고 흥분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만 자신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변화 앞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또한 타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3일 동안 가는 길에서도 결코 뒤로 돌아서거나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 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하나님은 그를 결코 실망시킬 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압니다. 그분은 결코 자신의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은 단순히 확신이 아니고 신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격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믿음입니다. 어떤 분은 믿져야 본전이니까? 예수를 믿는 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5050으로 확률이니까? 예수를 믿는 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마치 보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반드시 인격적 관계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셔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두려움에서 그리고 변화에 대한 회피와 무관심 그리고 반응 없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 들어난 열정은 없어도 겉으로 나타나는 뜨거움은 없어도 여러분의 내면이 뜨거워야 합니다. 내면에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열린 교회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모습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세상과의 타협 속에서 누리던 신앙에서 떠나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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