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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pddFpV0-nYw


우리는 왜 우리의 인격을 바꾸고 변화시키기 위해 훈련하며 노력해야 되는 것일까요?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살면 안되나요? 편하게 살던 대로 살지 뭐 하러 힘들게 잘 바뀌지도 않는 성품을 바꾸려고 수고해야 되고 애써야 되나요?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답을 가지고 계십니까? 왜 우리가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바꾸어야 하는가는 것은 우리 주변을 보면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간의 갈등과 다툼, 시기, 분노, 질투, 탐욕, 미움 등 이런 모든 것이 우리의 내면 즉 우리의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18-20절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 즉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합니다. 그것들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며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죄로 오염된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을 통하여 입술로 나오는 말로 내 자신이 더러워지게 되며 둘째는 나를 더럽게 하는 것으로 타인을 더럽게 하며, 상처과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7-39절을 보면 이 말씀은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계명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며 둘째도 그와 같다고 하는데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둘째로 나오는 이웃 사랑은 같은 동급의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변하지 않은 기질과 성품 속에서 나오는 악한 행위나 말이나 생각으로 인하여 우리의 이웃을 상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변하지 않은 내가 문제이며, 바뀌지 않는 나의 모난 성품과 왜곡되고 비뚤어진 나의 인격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내가 바뀌어야 됨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부패한 속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온전해 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구원의 보증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부패한 인격과 성품이 변화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예수 믿으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에 의해 순종하며 살 때에 우리의 부패한 심령은 조금씩 회복되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베드로는 바로 이런 자기 중심적 성향의 사람입니다. 이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아 주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원하고 늘 행복을 추구하며 호기심이 많고 행동주의자들입니다. 반면에 이들의 단점은 말을 많이 함으로 인하여 타인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내나 고통은 피하려 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훈련이 안되며 그 결과 일의 끝맺음을 못합니다. 이들이 가진 호기심은 즉흥적이고 깊은 사고의 결여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성경에 베드로의 처음 등장을 우리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에 그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58절을 보면 우리는 이 본문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고 그 결과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어 놀라서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베드로의 말에서 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만 그 의미는 다른 성경을 본문을 좀더 참고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42절을 보면 본문에서 이미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형제 안드레의 소개로 말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아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눅5:8절 사건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이미 앞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라고 해서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두번째의 만남에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떠나소서 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저 평가 하고 무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남을 평가합니다. 예수님을 스스로 평가해 보니 볼품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잣대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그의 사고가 틀렸음이 수많은 고기 잡음을 통하여 들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늘 자신의 절제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말과 행동 그리고 타인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항상 문제를 달고 다녔습니다. 누가복음 933절을 보면 본문은 변화산에서 일어나 사건입니다. 그가 얼마나 생각 없이 말하는 자인지를 증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막 던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급한 성격과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마가복음인데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증언으로 기록된 복음서 입니다. 베드로전서 513절을 보면 베드로가 마가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영적인 아들인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듣게된 복음을 마가는 기록하였는데 그의 기질적 특성을 고스란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의 급한 성격과 표현력이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짧으며 곧 이라는 단어가 62회 사용되고 즉시라는 단어가 6회 사용되어 다른 복음서와 월등히 사용빈도 높습니다. 이런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과장 된 표현과 급한 그의 성격이 사건을 갑자기 일어난 사건으로 돌발적인 것처럼 또한 빠른 전개되는 것처럼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베드로가 마태복음 1616절을 보면 여기서는 그가 엄청난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고백이요 교회가 세워지는 기초가 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고 하자 마태복음 1622-23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간하여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기 위하여 지배하며 그를 붙들고 말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주동사는 꾸짖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다 입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자기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더 낫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예수님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의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는 말은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당신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은 베드로의 자기 생각입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에 예수님을 지배하려는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그 자체가 사단이 주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금방 최고의 칭찬을 받고 금방 최악의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사교형이 조심할 점이 이것입니다.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다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는 행동의 사람이기에 바다 위를 걷는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지만 그것도 금방 물에 빠져버림으로 쉽게 넘어지고 쉽게 쓰러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주님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너희가 나를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태복음 2633절에서 모두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빼고 다른 모든 제자를 싸잡아 비난하며 자신을 높이고자 하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여실히 그의 성격과 기질이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또한 그의 호기심의 기질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는 자리까지 가게 합니다. 그는 궁금해서 못견디는 성격일 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자 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고백과 결심과는 무관하게 예수님을 버립니다.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그는 더욱 심하게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의 세번의 부인 가운데 마지막은 저주의 매세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감정적인 자리에 있게 되면 이렇게 변합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신앙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삶에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 오면 쉽게 믿음을 포기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훈련되어야 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기분이 좋고 모든 일이 잘되면 예수 밖에 없다고 하다가 삶의 위기가 닥치면 예수고 뭐고 없다는 식의 신앙은 믿음이 없는 신앙이며 어린아이 같은 신앙입니다. 성숙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훈련되어야 든든하게 섭니다.

성경에는 너무나 많은 베드로의 실수와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예수님은 이런 실수투성이 문제투성이의 베드로를 옆에 끼고 다실까요? 이유는 예수님만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론해 본다면 그렇게 안 하면 항상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불안한 사람, 잠시라도 그냥 두면 어디 가서 사고 사고칠 것이 뻔하기에 옆에 끼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사교형은 훈련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매여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이들은 즉흥적인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를 옆에 두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기질이 가진 장점을 아십니다. 이 기질이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면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약하고 감정적이며 조절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모습임에도 모든 것을 베드로에게 부탁하십니다. 누가복음 2231-32절을 보면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 부탁하십니다. 사단이 밀 까부르듯이 제자 모두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까부른 다는 것은 채질한다는 것입니다. 걸러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누구를 위해 기도하시는가 하면 바로 베드로입니다. 누가 목적어 입니까? 두번이나 베드로입니다.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형제를 굳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베드로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그가 돌이키면 더 이상 그들의 말은 헛되거나 의미 없거나 생각 없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혀가 성령에 붙잡히면 사람을 감동시키며 변화시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삼천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온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말하자 사람들이 놀랍니다. 그를 범인으로 알았다고 그의 지혜와 지식에 놀랍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도행전 410-12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쉽고 간단하며 확신 있게 복음을 설명합니까. 이 말에 비난할 것을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확신하였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비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한 지속적인 훈련과 성령을 통한 능력으로 인하여 초대 교회의 수장이 되었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교형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행동하기에 앞서 깊은 사고를 해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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