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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VjSRY0PITpE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마지막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의 특징은 깊은 사고를 하며, 매사에 분석적이고 완벽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치기준이 높으며 신중하게 일을 합니다. 신중하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깊은 사고를 합니다. 이것은 왜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이 내향적인지를 잘 나타내 줍니다. 반면에 이들의 높은 가치 기준과 분석력 그리고 완벽주의는 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합니다. 또한 비판적이며 까다롭기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늘 의문과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가 장성하였을 때에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가 애굽인을 죽이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그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 이들의 모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치게 되고 그곳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에 불이 붙어 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보려고 가까이 가려는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전체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3장과 4장에 걸쳐있는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 내용을 잘 살펴보면 모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9-10절을 보면 [ 3:9-10]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음 절을 보면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11절을 보면 [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묻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도록 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절에서 모세의 말을 보면 13절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하면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 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 임을 말씀해 주시며, 자신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실 것인지 세세하게 말씀하십니다. 통상적으로 성경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냥 예라고 대답합니다.는 것이 그러나 모세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모세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인물들과 참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나를 따르라는 말 한마디에 다 버리고 쫓습니다. 바울은 한번 만남을 통하여 그의 사고체계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런 질문하지 않고 겁에 질려 떠납니다. 모세는 좀 다릅니다. 그의 치밀하고 세밀한 성격은 모든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분석해야 하고 철저하고 완벽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하는 말씀에 내가 누구인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해 냅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데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자신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비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또 질문합니다. 내가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 하며 그들이 그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합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얼마나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벌써 애굽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며 자신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세히 세밀하고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자세하게 하나씩 설명하는 이유는 그의 성향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고 확실 하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우리에게 막무가내로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성향을 아시기에 그에 맞게 우리를 훈련하시고 인도하십니다.

        4장에 하나님의 긴 설명에 모세가 또 다시 딴지를 겁니다.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참 철저한 사람이다 라는 긍정적인 면도 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의 안에 있는 불신을 봅니다. 그의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은 끝없는 불신을 만들어 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가지 이적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이적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손을 그의 품에 넣었다 빼니 그 손에 문둥병이 들어 하얗게 됩니다. 다시 넣었다 빼라고 해서 그래도 행하니 손이 원래대로 되었습니다. 이런 기적을 보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이제 애굽 너희는 끝났어! 뭐 이런 소리는 못해도 좀 당당하고 믿을만 하구나 정말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인지 다 듣고 난 모세의 대답을 보면 출애굽기 4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 4:11-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라고 명령합니다.

        이제까지의 모세를 보면 그가 얼마나 고집 센 사람이고 마음을 열기가 힘든 사람인지 그리고 신뢰를 얻기가 힘든지를 보게 됩니다. 그 이적을 보고 하는 소리가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사람이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제게 명하신 후에도 전혀 변함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출애굽기 410절을 보면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고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세가 얼마나 불신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은 본래 말에 능치 못하다고 합니다. 10절 말씀을 원문으로 좀 살펴보면 감이라는 단어를 세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역시, 게다가, 더욱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직역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주님 나는 말을 못합니다. 더욱이 예전부터 그랬고 게다가 지금까지도 그렇고 주님이 명령하신 후에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시점을 동원하고 또한 주님이 명령하셨는데도 여전히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미 마음에 확정해 두고 있습니다.

        주님이 해도 안되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하고 무엇을 해도 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모세의 생각입니다. 앞에 보여준 이적이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것은 그가 말을 제대로 못하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뻣뻣하다 둔하다는라는 단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느리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다른 사람이 들을 때는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왜요 느리니까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석해야 하니 말이 느리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가 되거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말의 빠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자신에 대한 불신과 무능력하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누가 입을 지었느뇨? 누가 말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느냐 내가 아니냐 하나님은 자신이 그 모든 것의 주관자 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를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 말씀을 듣고 주님 정히 그러시다면 제가 힘을 다하여 주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모세는 뭐라 반응합니까? 13절입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라고 합니다. 결국에는 순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만약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몇 시간 동안의 열심 있는 설득에도 해야 될 일을 미룬 채 도와 주고 가르쳐 주고 필요한 것 다 준다는데도 나는 못해요 하고 주져 앉아 버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속이 뒤집어 질 것입니다.

        실제 13절의 모세의 말에 하나님이 화를 내십니다. 이유는 못 참아서가 아니라 모세가 완벽한 거절을 했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라고 표현되었지만 보내소서 라는 단어가 명령형입니다. 물론 앞에 청원을 뜻하는 제발 보내소서 라고는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 제발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제발 건들지 마세요. 그냥 두세요 라는 감정을 실어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좋은 말이고 다 좋은 것인데 나는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이것이 모세의 감정입니다. please라는 말은 부탁이나 청원이지만 그것을 강하게 발음하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와 마찬가지 입니다.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입니다. 의심 없이 부정적인 생각 없이 그분을 그냥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진리이며 생명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그분이 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을 때에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화내심을 인하여 모세는 애굽으로 옵니다. 그리고 바로를 만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고 신뢰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의 눈에는 부정정적인 것만 보입니다. 출애굽기 522절을 보면 바로를 만난 후에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이 심화될 때 그가 하나님께 한 말이 어찌하여 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을 더 고통스럽게 하십니까? 그리고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습니까? 이 말은 그냥 내버려 두지 왜 긁어 부스럼 만들고 그럴 능력이 없으면 잠자코 있지 왜 일만 크게 만드냐는 것이며 내가 안 온다고 할 때 그냥 두시지 왜 나를 불러서 이런 고생시키냐는 불평이자 원망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불신이 그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을 진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설명하시며 설득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지 모릅니다. 출애굽기 613절을 보면 모세의 불평에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며 설득하십니다. 하나님께 설득되셔야 합니다. 말씀을 읽으며 설득되셔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설득되셔야 합니다.

        반항과 불신과 비판에 앞서던 모세가 우리가 아는 모세가 된 것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면서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체험하면서 그는 바뀌게 됩니다. 출애굽 이후에 홍해 앞에 선 그를 보십시오. 백성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에 불러서 다 죽인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출애굽기 1413절을 보면14:13절에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기 전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속에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부정적인 것과 의심과 불신의 그늘이 사라졌습니다.

민수기 123절을 보면 12:3절은 모세가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 보다 승하다고 표합니다. 이 일은 모세가 구스 여자 즉 에디오피아 여자를 취하자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비난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표현된 말이 모세의 온유 즉 겸손입니다. 그가 얼마나 겸손한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 보다 매우 겸손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불평이 많고 비난하며 의심하며 불평하며 관계에 문제를 겪던 사람이 제일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 일도 모세는 가만이 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미리암과 아론을 불러 혼을 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께는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석과 신중함이 아니라 그분의 분석과 신중함을 신뢰함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불신과 의심의 벽을 무너뜨리십시오. 그래야 변화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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