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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7gRVTz157rs


스가랴서 12 10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심령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것은 흘러 넘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럼 성령이 흘러 넘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며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하나님의 자신의 자녀들 안에 흘러 넘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성령은 은총의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은총과 은혜는 같은 말로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입장에 따라 은총이라는 말로 그리고 은혜라는 말로 해석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은혜의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쏟아 부어질 때 나타나는 것은 첫째로는 자신들이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먼저 일어나야 함은 이러한 내적 마음의 자각이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도 어떠한 요청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내적 자각이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들이 평가하며, 자신이 평가 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불꽃 같은 눈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찰 하셔서 그 안에 담고 있는 은밀한 것까지 아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 일을 경험한 모든 자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신의 비참한 현실과 상태를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 당당하던 사람들 조차도 그리고 자신 스스로 착하게 살아왔다고 믿고 있던 사람 조차도 하나님의 의와 거룩하심 앞에 서 있을 때에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6 5절을 보면 이사야가 내게 화가 있다 나는 망하게 즉 죽게 되었구나 라고 절망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모든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둘째로 은혜를 간구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죄를 가리우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 행하시는 일입니다.

        은혜의 성령이 하시는 일은 중생 뿐만 아니라 성화 즉 구원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는 과정에도 역사하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은혜의 성령은 마음에 거룩한 마음을 품게 하며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게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러한 성화되어져 가는 삶에 있어서 성령의 또 다른 사역이 주어지며 부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간구의 성령이라는 표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12 10절은 성령을 간구의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간구의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며 이미 이 성령은 오늘 그 약속하심을 받아 누리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간구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생각해 볼 때에 이 단어는 천에 쌓인 가지를 들다 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말은 마치 항복 하는 의미를 연상시키는데 천을 나무 가지에 싸서 그것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 행위의 의미는 평화를 요청하거나 또는 진노를 가라 앉혀 달라는 청원을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간구의 성령인 것은 기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평화를 요청하며 진노를 가라 앉게 해 달라는 것과 관련되어 역사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본인이 누군가와 불화하거나 진노를 일으키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간구의 영이라는 표현은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 속에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요청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도록 기도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도록 이끌어 가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로 간구의 영을 부어주심에 대하여 깨달은 것으로 우리의 적용을 삼을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구란 간이 저리도록 기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간구를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기도란 무엇인가 내가 필요한 것을 얻어 내는 강력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합시다 라고 말하거나 기도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에 일반적으로 여러분들 안에 드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이 자신의 부족한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그 일을 위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간구의 성령이란 표현에서 간구라는 단어가 항복이며 진노에 대한 화해를 요청한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내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주장하며 요구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복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항복입니다. 라는 말이 거슬리십니까? 인정이 안되십니까? 기도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도원에 갈 때가 있습니다. 언제 가는가 하면 다 끝이 났을 때입니다. 이제 완전히 망해서 두 손을 들 때에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큰 병에 든 사람들 조차도 그렇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니다가 모든 의사들이 손을 들을 때에 표현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야 자신에 대하여 항복할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완악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이 비참하지만 어찌되었든 기도는 항복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는 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은 것이며 여전히 자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첨가해서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할 수 없는 것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신뢰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믿고 살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전적인 항복이지 부분적인 항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라도 실제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공급을 끊으시면 우리가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이 그리고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이상한 논리와 비정상적인 신앙 행태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도 온전한 신앙도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간구의 성령이 부어지게 되면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을 결과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주신 간구의 성령은 마음에 하나님께 전적인 항복을 선언하도록 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하여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마치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며 고백하는 자일 뿐입니다. 여기에 아이러니 한 것은 여러분들이 자주 그리고 오랜 동안 기도의 자리에 나갈 때에 비록 항복하고 있지만 행복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자는 행복해지며, 기쁨과 위로와 삶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됩니다. 삶이 평안해 지고 싶으면 아내에게 항복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잠깐의 평안이 아니라 지속적인 평안 가운데 거하고 싶으면 하나님께 항복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둘째로 스가랴서에서 말하고 있는 간구의 성령이라는 표현은 그분이 기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간구의 성령이 부어진 자들에게 기도하도록 돕는 다는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심이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심이며 우리에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주시고 기도를 통해 은혜를 받도록 하시며,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826절 말씀을 보면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제대로 기도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며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이 우리의 기도는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주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연약함은 분명히 영적인 일에 대하여서 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며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은 많이 있지만 참으로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기도하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을 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기도와 성령과의 관계 조차 알지 못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 채 기도하거나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구의 성령은 기도에 있어서 기도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가 화려한 말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기도를 잘하는 이라고 할지라도 그 기도가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잘한다는 표현을 우리가 사용하지만 사실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기도는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거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스스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절대로 만족시킬 수 없으며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아름다운 감동적 언어를 사용해서 온갖 인간의 정서를 담아 감동적인 문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감동되지 않는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 자체는 하나님을 떠난 부패함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름답고 하나님이 들으실 만하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드려지는 기도일 때에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기뻐하시며 응답하시는 기도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간구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시길 구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들을 기도의 자리로 이끌기를 구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들을 하나님께 항복하도록 요청하십시오. 하나님과 화목의 자리에 이끌림이 있도록 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누군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기도가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기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기도의 능력이 없으며, 바로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이는 육에 속한 자이며 그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을, 내가 성령의 소욕에 따라 살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하면 내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으며, 내 마음이 거룩한 이끌림으로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지속적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나는 이 영적인 일들을 사모 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영적이며, 영성이 있다는 것은 영적인 일에 지속적인 이끌림이 마음에 있는 자입니다. 영적이며 영성이 있다는 것은 영적인 말만 하는 자가 아닙니다. 성경과 하나님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마음이 영적인 일에 이끌리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에 마음이 이끌리어 개인적인 경건한 삶과 골방에서 전혀 기도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우선이며 그 일을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영적이며 영성이 있는 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의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마음에 은혜의 성령이 그리고 간구의 성령이 충만이 부어져 영성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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