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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QoL-b0WWQ1o


우리는 종종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하나님이신 그분에게 있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복음서에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보인 그분의 마음을 표현한 단어들이 상당히 격정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누가복음 1250절을 보면 여기서 주님은 답답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압박감 혹은 고통을 당함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압박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둘째는 요한복음 12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이 괴로우니 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는 동요되어서 라는 의미로 평정심을 잃어 버릴 정도가 되셨으며 주님은 이미 아버지께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라고 생각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 외의 표현들을 보면 마태복음 26:37절에서 고민하고 라는 단어는 낙담이 조금 섞여 있을 수도 있는 혐오스러운 반감이며 슬퍼하사 라는 단어는 슬픔에 사로잡혀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정신적 고통, 또는 고민을 가리킵니다. 마가복음 14:33절에서는 심히 놀라며 슬퍼하사 라는 단어로 마음을 표현하시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움츠러들고, 마음이 큰 고통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시며 감정의 큰 고통 가운데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케 하는 것인데 우리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큰 지를 상상 할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통에 대하여 주님은 요한복음 1811절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잔이 의미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임은 더욱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청원을 하심으로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잔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왜 주님께서는 이 잔을 마시지 않고 지나가시기를 기도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난의 잔의 의미는 십자가를 지실 때에 당하게 되실 육체적 고통으로 채찍과 십자가에 달리심과 자기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부인하고, 버린다는 정신적 괴로움과 자기 대적들의 모욕과 학대, 이런 것들이 고난의 잔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수치와 멸시를 피하기 위하여 멈칫하시거나 또는 이 잔이 지나가시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 잔은 성경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잔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잔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다는 영적인 고뇌이며, 그 죄 위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견뎌야 한다는 영적 고통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구약을 통하여 입증이 되는데 아버지께서 주신 이 잔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여호와의 잔으로 이 잔에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겨져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758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는데 이 잔을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악인에게 기울여 마시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잔은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진노가 가득 담긴 진노의 잔이기 때문에 진노를 그들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일한 상징이 계시록에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계시록 14:10-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담은 진노의 잔을 바벨론에게 마시게 하는데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이 고난은 멈추지고 않고 세세토록 지속되며 밤낮 쉼을 얻지 못하게 되는 고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잔에 대한 상징들을 알고 계셨으며 지금 자신 앞에 놓인 그 잔이 악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술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잔을 마시기를 머뭇거리며 두려워하며 공포와 낙심의 마음을 가지게 되셨는가를 생각할 때에 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실 때에 그는 죄인과 같이 되어야 되셨으며, 그의 무죄한 영혼은 인간의 죄에 접촉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멈칫거렸던 것입니다. 더욱 큰 고통은 죄에 대한 심판이 가져다 줄 자기 아버지로부터의 소외의 경험에 대하여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성부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죄가 그분 위에 쏟아 부어질 때에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외면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분리 되셨으며 부재를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2746절을 보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는 외침을 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에게 우리의 죄가 전가 될 때에 그분은 영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 되셨으며 버림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저항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무서운 흑암이 주님의 영혼을 삼킴에 따라서 그분의 눈이 흐려졌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의지는 여전히 하나님께 복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주님은 그의 기도에서 내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가 끝날 때에는 언제나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로 끝 맺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고난을 잔을 받으셨으며 그분께서는 자신에게 전가된 모든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죄를 짊어 지실 때에 그분은 죄로 정해지신 것입니다. 즉 죄인으로 선언 되신 것입니다. 로마서 83절을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즉 우리가 육신 안에 있으므로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으며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능과 불능의 상태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곧 우리가 지은 죄에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란 그분이 우리와 같은 죄인된 몸으로 오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인인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신 사람으로 오셨는데 이는 그분의 육신에 죄를 정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정하다는 말은 판결하다, 선언하다 라는 뜻으로 죄인으로 선언되고 판결하였다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으로 판결 되고 선언 되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죄가 그분에게 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주님은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고 버림 받은 바 된 것입니다. 죄가 전가 될 때에 성부 하나님과 분리가 되는 이유는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분리가 주는 고통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을 보면 마태복음 2530절을 보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깥 어두운 데는 어디인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바깥과 어두운데는 하나님의 부재 즉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어떠한 일반 은혜 조차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거기서 그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합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은 과거의 자기 행위를 후회하며 극도의 절망과 고통 속에 절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담아 내고 있는 것은 지옥이며, 결국 종말에 불못에 던져질 때에 당하게 되는 고통입니다.

        주님께서는 실상 지옥을 맛보신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한글 사도신경에서는 이 구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지만 영어버전에서는 분명하게 He descended into hell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후에 그의 영이 실제적으로 지옥에 갔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표현 속에서 예수님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지옥의 고통이었습니다. 이 고통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인간의 죄들이 쏟아 부어져 전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는데 그것은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것이었으며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맛보시고 경험하신 지옥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음부에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견디시고 고난을 잔을 마셨는가에 대하여 히브리서 5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경건하심으로 응답 받으셨다고 한글 성경에서는 번역하였지만 경건 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번역에서는 두려움으로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즉 두려움 가운데서 주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왜 입니까? 바로 고난을 잔을 받으시기 위하여 흠 없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할 때에 죄에 접촉 할 때 오는 고통과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며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옥을 맛보시기 때문에 그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그분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당하신 고통에서 지켜 주셨고, 그 모든 죄를 짊어 지시고 죽음에 이르도록 인도하셨으며, 결국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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