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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3.04.19 09:34

편무 언약

YC
조회 수 13290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lZvO7UmsjGU


창세기 157-8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묻기를 어떻게 내가 이 땅이 나의 땅이 될런지 알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볼 말씀은 18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518절을 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말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이것이 하나님과 아브람과 맺은 언약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약을 맺는 다는 것은 이제 정식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공식적 관계가 형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구두로써의 약속이었다면 이제는 의식을 통한 약속의 확약입니다. 왜 이 언약적 체결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아브람의 요구 때문입니다. 7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이곳에 오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내게 주실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바로 언약입니다.

        아브람의 요구에 창세기 159-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 염소와 삼년된 수 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왜 이 짐승들을 준비하라고 했는지 말하지 않지만 아브람은 그 의미를 알고 이 짐승들을 준비합니다. 아브람은 이 짐승들을 잡아 둘로 쪼개 양쪽에 벌려 놓습니다. 그러나 새는 쪼개지 않고 양쪽에 한 마리씩 놓습니다. 짐승을 쪼개 벌려 놓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언약 식을 하려는 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히브리어의 언약이라는 단어는 베리트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자르다 쪼개다 라는 의미입니다. 왜 히브리어가 언약이라는 말이 자르다 쪼개다 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언약식이 자르고 쪼개는 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과 하나님이 지금 행하려는 언약 의식은 성경에만 등장하는 독특한 의식이 아닙니다. 당시의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언약 의식을 치를 때 모두 이렇게 합니다.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갭니다. 그리고 언약의 당사자가 그 사이를 지나갑니다. 그렇게 함으로 언약이 체결되는 것입니다. 이 언약 의식에 짐승을 둘로 갈라 놓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만약 둘 중에 어느 누구라도 약속을 어기면 그 사람은 갈라진 짐승처럼 그런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언약을 어긴 사람이 담당하게 될 저주가 바로 짐승이 둘로 찣겨진 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아브람과 하나님이 맺으시는 언약이 일반적이지 않은 것은 그 언약 식이 당시의 언약 식과 좀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대부분의 언약 의식은 쌍무언약입니다. 쌍무 언약이라는 것은 한 쪽의 일방적인 언약 의식의 거행이 아니라 언약의 당사자가 함께 그 언약 의식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쪼개어 벌려 놓은 짐승 사이로 언약 당사자들이 함께 걸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언약 의식에서는 다릅니다. 본문을 보면 창세기 1517절을 보면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고 합니다. 연기 나는 풀무라고 표현되었는데 당시에는 불을 피우는 항아리 입니다. 즉 연기가 나는 항아리에 타는 횃불이 있습니다. 이것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 갑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것을 편무 언약이라고 합니다. 한 편에서의 일방적인 언약이라고 합니다. 고대 근동에 언약 조약식을 보면 가끔 이런 편무 언약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특이한 것인가 하면 편무 언약은 늘 강자에게 약자가 취하는 일방적인 언약에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즉 왕에게 신하가 당신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며 스스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며 언약을 맹세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언약 의식은 약자인 아브람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나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자임에도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백성을 위해 스스로 그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결심이 바로 이 언약 의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을 저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너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 자신이 이 찢겨진 짐승과 같이 되리라 하는 그 저주에 스스로를 놓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 언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자기 저주 입니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자기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람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아브람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을 주실지 안 주실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언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필고 이 일을 이루시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 하나님이 구약의 아브람만 사랑하셨습니까 아브람 만을 위해서만 일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더 한 사랑을 하시고 계십니다. 로마서 832절을 보면 바울은 말합니다. 자기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면 더 아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이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끝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기 저주는 구약에 한 군데 더 등장합니다. 우리는 비가 온 뒤에 하늘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보면서 그냥 와 무지개다 라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무지개가 비온 뒤의 수증기가 햇빛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913절을 보면 여기서 무지개가 하나님과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라고 합니다. 무엇에 대한 증거입니까?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하는 것에 대한 증거라고 합니다. 어떻게 무지개가 하나님께 물로 세상을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증거로 기억으로 작동하는 것일까요? 히브리어의 무지개라는 단어가 케도쉬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의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활입니다. 여러분 무지개가 활이라면 어디를 향해 겨누어진 활입니까? 하늘을 향해 겨누어진 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는 물로 심판 하지 않겠다는 자기 저주를 거신 것입니다. 활을 자신을 향해 겨누심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용서하고 참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 베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무관심 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지도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께서 탄식하셨듯이 말입니다. 누가복음 73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를 드십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놀이를 하는데 결혼식과 장례식 놀이를 합니다. 결혼식 놀이라 피리를 불면 상대편 아이들이 춤을 추어야 하는데 안줍니다. 그리고 장례식 놀이로 애곡을 하는데도 상대편 아이들은 울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말씀에 아무런 반응하지 않는 세대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것에 반응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판단하며 비웃어 버리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감동을 하지만 정작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 감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포츠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며 기뻐하지만 하나님을 향하여는 무덤덤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의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까?

바울은 고린도후서 514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는 것입니다. 강권한다는 것은 함께 붙잡으며, 지배한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바르게 들은 자들이 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며, 행하게 되는가 하면 바로 사로잡혀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배력의 통치 방식이 무엇인가 하면 위협이나, 두렵게 함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라는 점이 특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사랑에 감복하며, 그분의 사랑에 사로잡혀 예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지옥에 가지 않은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까가 주된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기다려지고 사모됩니다. 그분을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그분을 배웁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신앙 생활은 그것 자체가 은혜요 행복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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