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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y3zUVKBmbxs


시편 8947절을 보면 시인이 쏟아 내고 있는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내용들을 두 개의 단어로 나타나고 있는데 첫째는 얼마나 짧은지 라는 말과 두번째로는 허무하게 라는 말입니다. 이 두 단어는 그의 마음이 낙심과 절망의 상태이며, 소망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말들입니다. 첫째로 얼마나 짧은지 라는 단어의 의미는 짧은 시간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담아 내고 있는 뜻은 덧없다는 의미로 더하여 지는 것이 없는 상태로 보람이나 쓸모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이 그런가 하면 나의 때 즉 나의 인생이 너무나 짧아 무엇하나 더해질 것이 없는 쓸모 없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사용된 단어는 허무하게 라는 말입니다. 무익하게 라는 의미입니다. 앞의 얼마나 짧은지 라는 단어가 덧없다는 의미로 시간적인 의미 속에서 너무나 인생이 빨리 지나가는 것에서 더해질 것이 없는 쓸모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면 허무하게 라는 의미는 인생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질 만큼의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헛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인은 마치 비관주의자처럼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막 인생이라는 것이 주는 즐거움에 맛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 말에 동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낙천주의자들 또한 그럴 것입니다.

        시편 8947절의 고백은 배경이 있습니다. 그 배경이 바로 48절 말씀인데 시편 8948절을 보면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질 수 있는가 라는 두 개의 질문 때문입니다. 이 두 개의 질문은 모든 인간이 결국에는 처하게 될 운명으로 바로 죽음입니다. 시인이 인간의 삶을 볼 때에 아름다운 시절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지 못하였다는 것도 아닙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이 없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 서니 얼마나 짧은지 즉 죽음이 주는 두려움이나 또는 공포에 비교할 때에 덧없는 것으로 그리고 보람이나 쓸모 없는 것이 되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킵니다. 살아 있을 때의 즐거움도 기쁨도 죽음 앞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죽음은 두려움을 주고 슬픔을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당한 모든 일들은 인간을 이렇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시편 8947절에서 시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시편 8947절을 보면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라고 합니다. 주께서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창조하다 라는 단어는 무에서 유를 존재하게 할 때에 하나님 만이 하시는 만들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장 구조를 보면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라는 말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앞의 말에 대한 보충입니다. 즉 나의 때가 얼마나 짦은지 라고 말하면서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신 때문입니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마치 시인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문제로 돌리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가장 먼저 앞에 오는 단어가 기억하소서 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나오는 단어가 나를 입니다. 때라고 번역한 것은 인생입니다. 즉 시인은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나의 무엇을 나의 인생을 기억하소서 라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기억해 달라는 것은 나의 인생이 덧없음을 기억해 주소서 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의탁하며 자신의 인생을 맡아 주시기를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음에서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셨다고 말합니까? 이 말은 자신의 인생 즉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삶이 마치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만이 자신의 도움이시며, 죽음의 권세에서 자신을 지켜 주실 수 있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덧없는 인생이나 허무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나의 인생, 나의 영혼을 기억해 달라고 청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시인은 앞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898절을 보면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라고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그분이 스스로 계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전쟁에서 모든 적을 섬멸하며, 승리하실 뿐만 아니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주와 같은 능력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하나님은 성실하심으로 둘러진 분이십니다. 성실함이란 충성됨이며, 확고부동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구에게 그러하십니까? 자신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시편 8911절을 보면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며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세상의 주인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앞서 하면서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마치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분이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 돕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8946절을 보면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겠습니까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고 계시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하여 이해하게 되는 것은 47절에서 시인이 허무하게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실제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인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인생이 되며, 어찌 그리 허무한 인생이 되는가에 대한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마치 자신의 인생이 대단한 것처럼,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기며 삽니다. 그러나 그에게 죽음이 닥치는 순간 그가 가진 어떤 것으로도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죽음으로 허무해지는 구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인생은 누구도 아름답지 않고, 누구도 빛나지 않습니다. 비통함과 슬픔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범죄함으로 인생에 더하여진 것입니다. 시인이 죽음 앞에선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비통해 하면서도 그가 소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의 인생, 나의 영혼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인생과 영혼은 무엇이 달라지기에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까?

        왜 시인이 하나님께 청원하는가 하면 그에게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신 일들 그가 이루신 일들 만이 그의 영혼을 죽음에 삼키운바 되어 허무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127절을 보면 하나님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하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 비밀이 무엇입니까? 이 비밀은 바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이 비밀이 주는 것은 영광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왜 비밀이며, 왜 이것이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입니까? 히브리서 29절을 보면 우리가 예수를 보니 어떠한 예수를 봅니까?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즉 낮아지신 것은 죽음의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후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이십니다. 즉 부활과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를 보니 그분이 이렇게 행하심 즉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의 은혜의 방편인 것입니다.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왜 하나님의 비밀인가 하면 또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을 주시는가 하면 바로 그분이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친히 죽음을 맛보심으로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몸이 되신 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시편 8948절에서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겠는가? 누가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인간 스스로는 아무도 그렇게 할 자가 없지만 하나님의 비밀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며, 십자가에서 우리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고 주기를 무서워 함으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지 않도록 놓아 주심으로 우리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으며, 우리의 영혼이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 받은 자임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억하신 바 된 우리의 인생은 결코 덧없지 않으며, 허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며, 그분이 함께 하시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이 땅 이후의 삶에도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생은 마침이 없으며, 끝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영원한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고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복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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