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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3.11.08 12:11

전에와 이제 베드로전서 2장 10절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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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U76g18jaxx8


베드로전서 210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하여 그들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시간 때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전에는 이라는 시간 때입니다. 또 다른 시간 때는 이제는 이라는 시간 때입니다. 즉 과거의 어느 한 때와 지금에 대하여 전혀 다른 무엇인가 변화가 있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누리고 얻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이며, 또한 긍휼을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나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있는 사람을 돕다 라는 뜻입니다. 즉 쉽게 말하면 도움을 받으며, 고통에서 건져내며, 필요한 것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한 분과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들인데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 긍휼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것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백성이 됨과 긍휼을 얻음을 생각할 때에 전에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생각할 때에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는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냥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성경은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21절을 보면 전에 악한 행실로 머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너희와 같은 너희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이 전에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멀리 떠나 있었던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떠나 있다는 라는 단어는 수동형으로 떠나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떨어져 있었는가 하면 바로 그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원수 라는 단어는 대적으로 여기다, 적대적으로 대하다 라는 의미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려는 적대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받게 되는 놀라운 것은 관계의 큰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큰 관계의 변화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첫째가 악한 행실로 인한 관계 회복의 불가능성입니다. 악한 행실이 왜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미워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성품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말은 그분은 구별 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죄와 분리가 되신 분이시며, 본성적으로 악을 멸하려 하시는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바국 113절을 보면 하나님 눈은 정결하셔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또한 그분의 눈은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패역은 반역하는 악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된 자들을 또한 악인의 행위에 대하여 견디지 못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분이 죄악을 배척하시는 것이 마치 인간의 몸이 독을 토해 내는 것과 같이 격정적으로 표현한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구토는 아마 인간의 모든 반응 중에서 가장 격렬한 반응일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가나안 족속의 비도덕적이고도 우상 숭배적인 삶들이 너무나 역겨웠기 때문에 토하여 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레위기 1825-28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주민을 토하여 내듯이 너희도 그 땅을 더럽히면 토하여 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땅이 주민을 토하여 낸다는 것은 땅 자체가 어떠한 능동적 힘을 가지고 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토하여 내는 것을 상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사하신 것으로 그 땅을 하사 하신다는 것은 그 땅이 바로 하나님의 것이며, 그분이 주인이시라는 것으로, 그분이 거기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소유물 가운데서, 그리고 자신이 계신 그곳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아낼 수가 없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시편 9510절을 보면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십 년 동안의 행적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인데 그 세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지낸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이 근심하였다고 하는 것은 걱정하였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의 의미는 역겨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악들로 인하여 역겨워하셨다는 것입니다.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더러움을 느끼고, 매스꺼우며, 도무지 참아 낼 수 없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하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번째 문제는 우리의 불법과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가지시는 적대감과 그분의 성품에 의한 공의에 대한 문제 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가지는 원수로 대하는 상태 또한 문제인 것입니다. 비록 이 문제가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좋게 여기지 않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않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이지만 문제는 이것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문제도 어쩌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과 노략과 싸움이 끊임 없이 자행된 이유가 바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마음도 그러한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은 적대감을 거두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여전히 하나님의 복음을 들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으며, 나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종교라 하며, 그들의 가르침이라 외면하며, 거짓이라, 다 쓸데 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 스스로에게는 어떠한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 지위에 올라 버림 받은 자가 아니며, 홀로 두려움 가운데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보호받으며, 돌봄을 받는 자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긍휼 바로 사랑하심을 입어 모든 도우심을 받는 자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8절을 보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구토를 일으키는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존재로 변화되게 하셨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셨습니까? 단번에 즉 한번 만에 다시 반복함이 없이 한번에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대한 값을 즉 죄책을 대신 갚으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지불해야 할 죄값을 그가 지불하심으로 우리의 죄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히브리서 910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거룩함은 누구에게 속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입니다. 즉 그의 백성은 그분의 성품을 받아 거룩함 즉 의로하심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골로새서 122절을 보면 전에는 아니라 이제는 입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누구와 화목하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원수됨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신 것입니다. 바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맛보신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리에서 그분의 백성의 자리로 그분의 긍휼을 받지 못하던 자리에서 그분의 긍휼을 받는 자리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만큼 복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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